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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신인문학상] 논픽션 가작 "장미꽃 눈물"

윤종범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아 먼지만 잔뜩 끼어 있을 천장의 선풍기를 쳐다보는 것으로 잠을 쉽게 잘 수만 있다면 나는 굳이 감기약을 찾아 나설 이유가 없다. 정말이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 침대에 누워 천장의 선풍기만 하염없이 쳐다보다 찾는 것이 감기약이다.

잠 못 이루는 사람을 위해 수면제가 버젓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굳이 감기약을 찾는 이유는 안경을 코 끝에 걸친 늙은 약사 때문이었다.

그로서리 스토어를 들른 김에 스토어 안에 있는 약국을 찾았었다. 잠이 오지 않는 날이 여름철 우기처럼 구질구질하게 연속되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누가봐도 내 몸에는 부족한 잠으로 피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수면제보다 감기약을 먹어 보세요. 감기약이 몸에 덜 해로울테니까요."

어떤 수면제가 좋은 것이냐고 내가 물었을 때 은퇴가 멀지 않을 것 같았던 할아버지 약사는 그렇게 대답했었다. 그의 코 끝에 안경이 떨어질락말락 아슬하게 걸쳐져 있어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그의 안경을 쳐다 보아야 했다.

그때부터였다. 밤에 침대에 누워 돌아가지 않는 천장의 선풍기를 쳐다보는 시간이 마냥 길어질 때면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감기약을 찾아 나섰다.

그날 밤도 그랬다.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간 것은 순전히 감기약 때문이었다. 물론 내 얼굴엔 콧물도 없었고 기침도 나오지 않았다. 잠 못 이루며 천장만 열심히 쳐다보다 일어난 내 몸은 철근을 박아 놓은 듯 무겁기만 할 뿐이었다.

밤의 어둠 속에 묻혀 있어야 할 거실은 웬일인지 환히 밝아 있었다. 십 년 전 이사올 때 장만해서 이젠 여기저기 주름이 많이 잡힌 검정 가죽 소파에 아내가 무심히 앉아 있었다. 아내의 얼굴이 어두워 보인 것은 소파의 어두운 검정색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램프의 밝은 불빛 아래에 환히 드러나는 아내의 모습이 마치 그림자가 드리운 듯 어두워 보였다. 아내가 앉아 있는 가죽 소파가 내려 앉을 듯 무거워도 보였다. 초점없는 시선을 허공으로 던지는 아내의 눈두덩이가 이젠 꽤 많이 부어 있었다.

그렇게 아내의 눈두덩이가 붓기 시작한 게 벌써 닷새째다. 겨울이 네 번 지나가는 세월 동안 치러낸 두 번의 투석 경험으로 보면 아내의 부은 눈두덩이가 주는 경고가 심상치 않았다.

굳이 부어 오른 눈두덩이가 아니더라도 몇일 전 부터 부쩍 말 수가 줄어 든 아내만 봐도 아내의 몸에서 일어나는 심상치 않은 변화를 나는 진작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아내 옆으로 다가가도 아내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할 뿐 굳게 다문 아내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게 4년 전이었을 것이다. 아니 딸이 고등학교로 입학하던 해니까 4년 전이 틀림없다. 꼭두새벽에 아내가 자고 있던 나를 정신없이 흔들어 깨웠다. 겨우 떠진 흐릿한 내 눈 앞으로 아내는 자신의 얼굴을 쑥 내밀었다. 그 순간 나는 잠이 확 달아나며 벌떡 일어나 앉아야 했다.

아내의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던 것이다. 삼겹살로 배불리 포식한 전날 저녁만 해도 멀쩡했던 아내의 얼굴이었는데 꿈적도 하지 않고 눈만 껌벅이며 나를 쳐다보는 아내의 얼굴이 밤새 보름달로 변해 있었다.

아내의 얼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밤새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으려고 눈을 부비며 거울을 들여다 보던 아내가 황급히 나에게로 달려온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아내의 얼굴을 보고 내가 그렇게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하물며 평소 자신의 얼굴은 간데없고 딴 사람 얼굴이 거울에 비쳐진 아내는 오죽했을까.

투석튜브에 이별을 고한 아내의 얼굴에
2년만에 다시 보름달 현상이 나타났다

하루만 더 기다려보자는 아내의 말을 무 자르듯 싹둑 자르며 아내를 급히 차에 태웠다. 제일 먼저 떠 오른 병원이 집에서 몇 블럭 떨어져 있지 않은 응급처치 병원(Urgent Care Center)이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병원으로 달리는 차는 분명 날았다.
병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 서는 우리를 보고 마치 기다리고 있은 듯 의사가 지체없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내의 얼굴을 들여다 보던 의사는 우리에게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우리 등을 밖으로 떠 밀었다.
"빨리 종합병원으로 가 보세요."
의사는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고 나는 앞이 캄캄했다. 의사에게서 '응급조치 요망의 환자'라는 쪽지를 건네 받은 나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했다. 차량이 드문 이른 새벽이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정신없이 달리는 내 차가 도로를 채운 차량들 사이에서 박고 받치느라 온전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종합병원은 멀리 있었다.
달려도 달려도 종합병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달린 이십 분은 내가 매일 출근하는 학교까지의 짧은 이십분이 절대로 아니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 바퀴가 제자리에서만 헛도는 듯 병원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종합병원 응급실의 환자 대기실로 들어 선 것은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의 붉은 기운이 종합병원의 네온사인 불빛을 조금씩 갉아 먹고 있을 때였다. 환자 대기실은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로 이미 새벽의 적막이 깨어져 있었다.
병원의 직원에게 보험카드를 내밀고 집 주소와 전호번호까지 다 밝힌 다음 대기실의 빈 의자를 찾아 앉았다. 대기실에 켜놓은 TV는 화면이 끊임없이 변하며 뭔가를 지껄이고 있었지만 내 눈은 건성이었고 내 귀는 꽉 막힌 듯 아무 소리도 들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초조한 마음으로 둘 곳없는 내 눈을 계속 TV에 붙이고 있을 때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한 나이팅게일이 우리에게 다가와 아내의 손을 잡으며 응급실로 인도했다. 그때 비로소 나에게서 안도의 숨이 길게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온통 병원 로고 투성인 가운으로 바꿔 입은 아내에게 의사가 찿아오고 아내의 손을 잡아 끌었던 나이팅게일이 여러가지 검사로 몇 번 다녀간 뒤 아내는 일반 병실로 옮겨질 수 있었다.
병실에 달랑 하나 뿐인 의자에 앉아 아내의 손 등에 꽂힌 튜브 속으로 방울 방울 떨어지는 투명한 링겔액을 쳐다보며 새벽부터 놀랐던 나의 가슴을 조용히 쓸어 내렸다.
아내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종합병원까지 달려 오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던 아내의 가슴에도 폭풍이 한바탕 휘몰고 지나 갔으리라. 아내도 자신의 가슴을 진정시키는 시간이 절대로 필요했던 것이다.
"신장에 이상이 생겼군요."
아내의 손등에 주사바늘을 꽂아 채취해 간 혈액검사의 결과를 보면서 의사는 아내의 보름달 얼굴의 주범이 신장이라 했다. 의사는 손가락으로 아내의 부은 다리를 손가락으로 눌러 보았다.
아내의 다리에는 이내 분화구가 생겼다. 눌린 부위가 올라 오지 않고 움푹 파인 채 그대로 머물러 있었기 때문인데 내가 보기에는 상당히 심각해 보였다. 그러나 혈액검사의 수치는 아직 투석기준을 넘지 않고 있었다.
투석은 말만 들어도 섬뜩하다. 먼저 약으로 신장의 기능이 회복되는지 지켜보자던 의사의 처방에 따라 병실로 배달된 약을 앞에 놓고 아내가 매번 정성스레 십자가 성호를 그은 것도 투석은 피하고 싶은 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병원에서 흘러간 일주일은 참으로 길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듯 했다. 화살처럼 흐르던 시간이 마치 병원이라는 큰 웅덩이 속에 갇혀 버린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긴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얼굴은 여전히 보름달이었고 약을 앞에 놓고 성호를 긋는 아내의 정성은 계속되고 있었건만 아내의 다리는 여전히 분화구를 만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투석을 해야겠습니다."
매일 조금씩 올라가던 혈액검사 수치는 결국 누구도 원하지 않는 투석 기준을 넘고 말았다. 의사는 당장 투석 절차를 밟겠다는 말을 남기고 병실을 나갔다.
의사가 빠져 나간 병실은 일순간 적막감에 젖어 들었다. 아내에게 무슨 말을 해야겠는데 내 얼굴에서 입이 사라진 걸까 나에게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의사가 사라진 곳으로 아무 말 없이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던 아내가 벽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담요를 조용히 뒤집어 썼다. 그리고 아내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했다. 아내의 등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담요 위로 아내의 등을 쓰다듬는 내 손에 감당하기 힘든 아내의 실망이 잔잔히 전해져 왔다.
다행인 것은 투석을 시작하고 하루가 다르게 보름달을 벗어나기 시작하는 자신의 얼굴과 몸을 보면서 아내의 얼굴이 많이 밝아졌다는 사실이다. 하루 하루 붓기가 확연히 가라앉으면서 보름달은 점차 초생달로 변해갔고 높기만 하던 혈액 검사의 수치들도 정상으로 되돌아 오고 있었다. "진작 투석할 걸." 며칠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말을 아내는 이제 농담조로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내가 가슴에 달았던 투석 튜브와 이별을 고한 것은 투석을 시작한지 한달만의 일이었다. 투석 튜브와 이별 뒤에 남은 것은 아내의 가슴에 선명히 드러나는 수술 자국이었다.
지난 추억을 되새기 듯 나는 그 수술 자국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보았다. 마음이 아프거나 슬픈 감정은 일어나지 않았다. 힘든 투석을 잘 견뎌낸 아내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내의 얼굴이 다시 보름달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2년의 세월이 흐른 후였다. 따지고 보면 재발의 원인에는 먹는 것에 조심하지 않은 우리의 잘못도 있었다.
아내와 나는 아내의 신장병이 결코 재발하지 않을 완치로 생각했었다. 2년 전 우리를 휩쓸고 지나간 태풍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줄 알았다. 역사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영원히 사라진 태풍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짭잘하고 달착지근한 양념이 들어간 음식이 있는 식당을 찾아가는 데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한식을 먹을까 양식을 먹을까로 고민하던 시간에 아내의 신장을 걱정하던 마음은 별로 없었다.
경험은 똑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일까. 예상치 않게 다시 찾아온 아내의 보름달 얼굴에 적잖게 당황은 하였지만 병원을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처음처럼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차창을 통해 내 눈에 들어오는 바깥 세상이 어두워 보이긴 했어도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암흑같은 세상은 아니었다. 이번에도 치료가 잘 되리라는 희망이 검댕이 숯 같았을 세상을 조금이나마 밝혀 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내의 입으로 들어가기 전 십자가 성호를 그었던 약이 두번째는 없었다. 2년전에 아무 효과가 없었던 약이 두번째라고 특별히 괴력을 발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사는 곧장 아내를 수술실로 데려갔고 수술실에서 아내의 가슴은 투석 튜브와 재회하는 아픔을 가져야 했다.
투석이 시작되면 누구도 투석을 언제 그만 두어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의사조차도. 그러나 다행이었다. 두번째 투석도 첫번째처럼 거의 정확히 한 달 만에 끝이 났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2년 전처럼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언제고 또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보름달의 불안감을 완치로 생각했던 처음처럼 우리의 머리에서 싹 지워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내의 가슴이 또 다시 투석 튜브와 아쉬움없는 이별을 고하고 병원을 나설 때 아내의 얼굴은 기쁨 대신 결의에 가득차 있었다. 다시는 투석 튜브를 몸에 달지 않으리라는 아내의 비장함이 집으로 달리는 차 안에 가득했다.
그리고 아내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에 아예 발길을 뚝 끊는 것으로 시작해서 몇 십년 만에 간신히 임신에 성공한 임신부 못지 않은 아내였다. 아니 천신만고 끝에 들어선 아기가 어찌될까 밤낮으로 신경쓰는 임신부의 모습이 바로 아내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환영받지 못할 보름달은 또 다시 아내의 몸을 찾아왔다. 또 2년 만이었다. 한 달 주기로 하늘을 찾는 보름달이 아내의 몸을 찾는 데는 마치 2년마다인 것처럼 누가 무슨 수를 쓰든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주기가 있는 것처럼 그렇게 보름달이 또 다시 2년만에 아내를 찾아온 것이다.
내가 곁에 다가가도 아무 말없이 거실의 소파에 앉아 있는 아내의 얼굴에 보름달기가 다시 비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공들인 아내의 노력이 별 것 아니라는 듯 지난 며칠간 조금씩 부어 오르는 자신의 몸을 보면서 아내는 잠을 이룰 수 없었으리라. 어쩌면 그런 노력을 외면한 자신의 몸에 아내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잠이 오지 않아 내가 찾아 나선 감기약이 거실의 소파에 앉아 있는 아내의 불면까지도 해결해 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아내는 매일 복용하는 신장약 외에 어떤 약도 입으로 가져 가질 않았다. 비타민도 예외일 순 없었다. 하물며 감기약은.
"몸이 더 붓기 전에 투석하자."
내가 아내 곁으로 다가가도 아내는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그런 아내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말하는 내 목소리가 약간 명령조이긴 해도 힘이 하나도 들어 가지 않은 것이 차라리 애원에 가까웠다. 나에게서도 이젠 멀리 달아난 잠은 감기약이 아니라 초강력 수면제를 입으로 털어 넣는다 해도 결코 돌아 오지 않을 것이다.
멀리 달아난 잠이 오히려 고마웠다. 거실에서는 부어 오른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잠 못 이루는 아내 침대에서는 다리 쩍 벌리고 코 골며 자고 있는 남편. 결코 아름다운 그림이 될 수 없으리라.
"그렇게 하도록 해 응?"
나의 목소리는 이젠 아예 100퍼센트 애원이었지만 아내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대답없는 아내의 처진 어깨를 내려다보며 나는 슬펐다. 희망을 포기한 사람의 어깨가 그렇게 축 처지는 것이라면 아내는 이미 희망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잖아. 투석을 하는 수 밖에. 아내의 축 처진 어깨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밤의 긴 어둠이 지나고 밝아 온 아침에 아내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 보였다.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야겠어."
투석을 하는 것으로 마음을 정한 탓일까 아내의 목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그동안 혈액검사로 아내의 몸을 죽 지켜보던 의사도 투석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듯 아내와 통화를 끝내자마자 지체없이 그 날 오후로 수술 스케줄을 잡았다.
그날 해가 지기 전 수술실을 나서는 아내의 가슴에 낯익은 투석 튜브가 다시 부착되어 있었다. 세번 째였다. 제발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침대에 실려 입원실로 옮겨지는 아내를 보며 이번에는 내가 십자가 성호를 그었다.
그게 어디 나만의 심정이었을까. 침대에 실려가는 아내에게도 엄마의 손을 놓지 않고 침대를 따라가는 딸에게도 네 번은 분명 존재하지 않는 숫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약 냄새 자욱한 병원에서 우리 가족이 다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않았었다. 도리어 그 반대였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우리 가족 세 사람은 부둥켜안고 환호하는 기쁨을 누렸었다. 아 그 기쁨은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한 삼개월 전이었다.
내셔널 고등학교 오케스트라(National High School Honors Orchstra) 선발은 2년마다 열리는 행사다. 내셔널이라는 오케스트라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전 주를 포함하는 전국적인 행사다.
이 오케스트라에 각 고등학교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서 고등학교 3학년과 4학년만 지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고등학교 4년 동안 이 오케스트라에 지원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 뿐이라는 것이다. 단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기회를 놓칠 고등학교 오케스트라 단원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단원은 겨우120명. 수천명이 넘을 지원자를 생각하면 그 오케스트라에 선발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 것인지 쉽게 짐작이 간다. 어쩌면 낙타가 바늘 구멍 통과하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고 할 수 있을까.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분에 합격을 알리는 두툼한 편지 봉투를 뜯고 난 딸이 소리를 지르며 기뻐 날뛴 것도 그래서 무리는 결코 아니었다. 딸은 인디언이 춤추듯 발까지 두두둥 바닥을 굴렀다.
어디 그게 딸만의 기쁨이었을까. 딸의 기쁨 속에 아내와 나의 기쁨도 서슴없이 끼어들었다. 서로 껴안은 우리는 환희의 결정체였다. 기쁨이 사방에서 뿜어나오는 하나의 덩어리였다.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고 손을 하늘로 높이 뻗어 올렸다.
"빨리 비행기 표부터 구입하자."
지체없이 인터넷을 뒤져 비행기표를 알아보는 아내의 마음은 벌써 행사가 열리는 뉴멕시코 주의 알버커키(Albuquerque)를 향해 날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아내의 몸은 보름달이 전혀 오지 않을 가늘고 연약하기만 했던 초생달이었다.
오케스트라의 리허설 준비로 나보다 나흘 먼저 알바커키로 떠나는 딸의 아픈 마음을 나는 어렴풋이 헤아릴 수 있었다. 연주회 날 딸은 관람석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보겠지만 엄마의 모습은 딸의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공항으로 가는 차에 올라 타기 전 딸은 엄마를 꼭 껴안았다. 바닥에 내려 놓은 바이올린을 집어 들어 딸의 어깨에 걸어주는 아내도 마음이 아팠으리라. 아내의 몸이 낫는다 해도 두 번 다시 찾아 오지 않을 연주회였으니 아쉬운 마음도 더 해졌을 것이다.
"엄마가 못 가서 미안해. 대신 집에서 열심히 응원해 줄게."
서로 다시 한 번 껴안는 아내와 딸은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울고 있었을 것이다. 내 마음처럼. 차의 운전석에 앉아 그것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흥건히 적셔지고 있었다.

장미꽃 보다 아름다운 아내의 얼굴엔
땡큐대신 눈가를 적시는 눈물만이 있었다

공항 안에서 케이트 쪽으로 사라지는 딸을 쳐다보며 집으로 발길을 천천히 돌리는 내 마음은 겨울 바람에 떨어진 낙엽이 쌓여가듯 착찹하기만 했다. 이제 나흘 후면 내가 알버커키로 출발해야 한다. 투석 튜브를 가슴에 꽂은 채 큰 집에 덩그라니 홀로 남겨진 아내의 심정은 과연 어떠할까.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아내의 빈 좌석을 쳐다보는 내 심정은 또한 어떠할까.
아마도 그렇게 아내를 집에 두고 혼자 떠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요 며칠 사이 내 마음이 심란했음이 분명하리라. 그렇지 않고서는 오늘 아침 내가 아내의 생일을 깜빡했을 리가 없다.
정말 그랬다. 오늘 아침 잠에서 깨면서부터 내 마음은 정말이지 착찹했다. 감기약을 복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잠까지 설친 지난 밤이었다.
내 몸과 마음은 포크레인으로도 들 수 없을 만큼 무거웠고 알버커키로의 출발은 무거운 내 마음과는 아랑곳없이 불과 이틀 뒤로 다가와 있었고 아내의 가슴에는 여전히 투석 튜브가 부착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아내는 튜브를 가슴에 단 채 학교를 나가고 있지 않았던가. 아내는 일 주일 전부터 자신의 직장인 학교로 출근하고 있었다.
지난 한 달의 투석으로 거동이 한결 수월해진 아내가 강의 걱정을 하기 시작한 것이 일주일 전이었다. 아내가 맡고 있던 강의들은 아내가 투석을 시작하면서 임시 강사에게 맡겨지고 있었다. 임시 강사야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겠지만 그것이 아내의 강의와 똑같을 수는 없었을 것이고 또 학생들 중에는 아내의 강의를 수강하기 위해 한 학기를 기다린 학생들도 있다고 아내는 나에게 말했었다.
아내의 수업을 선택한 학생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은 것이 아내의 심정이었고 그래서 자신의 수업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진 아내가 학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교수가 강의하는 것처럼 매끈하게 진행이야 되겠어요? 그렇다고 너무 신경쓰지 말아요. 빠른 회복에만 신경 쓰세요."
아내의 수업이 무리없이 진행될리 없음은 아내도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예상하는 것과 학과장으로 부터 직접 예상했던 말을 듣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이것봐. 움직이는데 별로 불편하지 않아. 학교 나가는데 별 지장없어."
아내가 학과장과 통화를 끝낸 후였다. 가슴에 달린 튜석 튜브가 몸을 움직이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신의 몸을 앞 뒤로 약간 움직이며 아내가 학교에 나가봐야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손을 내저었다.
"말도 안돼. 그러다가 무슨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나 아내는 완고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내의 운전기사 노릇 밖에 없었다. 아내의 학교와 나의 학교 그리고 집 사이를 오고 가는 시간을 계산하면 운전기사 노릇이 나의 바쁜 업무에 사실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몸이 성치 않은 아내를 위해서라면 지구도 몇 바퀴 돌 수 있었다.
그건 내 진심이었고 그 진심을 아내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자신의 몸이 내 업무의 걸림돌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것 또한 아내의 진심이었다.
아내의 고집을 꺾을 재간이 없었던 나는 아내의 운전기사도 되지 못했다. 대신 매일 아침 아내가 차의 시동을 거는 모습을 아픈 가슴으로 쳐다 보야야 했다. 옷으로 가려진 투석 튜브의 윤곽이 아내의 가슴에서 선명히 드러날 때 그 튜브는 바늘이 되어 내 가슴을 찔러 왔다.
오늘 아침도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시작한 아내가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아내가 입은 옅은 갈색의 스웨터로 드러나는 튜브의 윤곽이 오늘따라 더 선명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파란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온통 먹구름 투성이었다.
집을 벗어난 아내의 차가 멀리 한 점으로 변하자 나도 차에 몸을 실었다. 학교로 향하는 차가 저절로 굴러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차 안에 있는지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학교로 들어가는 길목의 신호등에서 멈춰 선 차는 더 이상 움직일 줄 몰랐다. 내 머리는 추수가 끝난 듪판처럼 텅 비어 있었다. 아무 것에도 신경이 가지 않았다. 뒷차가 경고음을 길게 울리지만 않았어도 내 차는 종착지에 도착한 듯 하염없이 그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뒤차의 경고음 소리에 정신이 퍼뜩난 나는 학교 주차장 속을 향해 차를 움직였다. 늘 주차하던 자리는 지정석처럼 비어 있었다. 오늘도 평소처럼 출근 시간에 맞춰 정시 도착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 일과가 시작된 것이다. 쾅하고 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넓은 주차장 속으로 퍼져 나갔다.
그때 나는 빠져 나온 몸을 다시 차 안으로 급히 집어 넣어야 했다. 오늘 아침은 여느 때처럼 아무 변화없는 쳇바퀴 속의 아침이 되어서는 아니 되는 날이었다. 오늘이 아내의 생일임을 꽝하고 닫히는 차 문소리에 바보처럼 그제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 볼 필요도 없다. 나는 이십 년이 넘는 결혼 생활 동안 아내의 생일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미리 준비한 생일 선물은 아내가 잠에서 깨어 나기가 무섭게 아내 앞에 놓여졌고 때로는 아침을 기다리는 것이 길다 싶으면 자정의 시계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아내를 깨워 준비한 선물을 잠으로 부시시한 아내의 눈 앞으로 내 밀었다.
그러면 아내는 나에게 '땡큐'와 '아이 러브 유'를 연발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아무 것도 없었다. 생일 선물도 땡큐도 아이 러브 유도.
그나마 오늘의 해가 지기 전에 아내의 생일임을 깨달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출근 시간에 늦는 것으로 오늘 하루는 시작되어야 했다. 당장 아내에게 달려가지 않고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들여다 본 손목 시계는 다행히 아직 아내가 수업에 들어가지 않음을 알리고 있었다.
아내의 학교가 상당거리에 있긴 해도 급히 서두르지 않아도 될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아내에게 미안한 내 마음은 나를 느긋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꽃가게에 들러 장미꽃 한다발을 사 들고 나오던 나는 이십여 미터 멀리 주차된 차를 향해 전력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상처난 오래된 엘리베이터가 힘이 드는 듯 끼긱거리며 천천히 3층으로 올라갔다. 손에 든 한 다발의 빨간 장미꽃이 엘리베이터 안의 연한 전등빛 아래에서 환히 빛났다. 장미꽃을 받아들고 땡큐와 아이 러브 유를 연발할 아내를 생각하니 아내의 생일을 잠시 잊었던 나의 미안한 마음은 벌써 온데 간데 없다.
문에 또렷히 적혀 있는 아내의 이름을 보며 손잡이를 돌렸다. 투석으로 쇠약해진 아내의 모습이 예상대로 그 곳에 있었다. 컴퓨터 모니터에 눈을 붙이고 있던 아내는 나와 장미꽃을 번갈아 쳐다보며 무슨 일인지 의아한 표정이었다. 아내도 오늘이 자신의 생일임을 잊고 있었던 것일까.
"생일 축하해."
장미꽃을 받아든 아내의 얼굴이 장미꽃보다 더 아름다웠다. 장미꽃에 한참 눈길을 주던 아내의 얼굴이 서서히 나를 향했다. 땡큐가 없다. 아이 러브 유도 없다. 대신 눈가를 붉게 적시는 눈물만이 있을 뿐이었다. 아내의 눈물인지 장미꽃 눈물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늦었다. 빨리 학교로 돌아가 봐야겠어."
좀 더 오래 아내 곁에 머물지 못하고 나는 아내에게서 황급히 빠져 나오고 말았다. 늦은 출근이 핑계였다. 사실을 말하자면 아내의 눈물따라 나의 눈도 적셔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눈가가 붉어진 아내를 조금만 더 쳐다보고 있으면 나의 눈에서 한 두 방울이 아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비 오듯 흘러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호흡을 크게 하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꾹 참았던 눈물이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열리기도 전에 서둘러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는 내 눈에서 하염없이 흘러 나왔다. 다행히 아무도 없는 조용한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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