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오픈 샤핑센터 '마당' 최영숙 대표 '10년 정성···100년 보고 지었다'
우리 멋·맛 넘쳐나는 타운 랜드마크 될 것
'반' 프랜차이즈 통해 한식 세계화에도 앞장
"개발비로 땅값 빼고도 3400만불 들어가"
- 마당의 완공이 늦어지면서 불경기가 닥쳤다. 테넌트 모집이 힘들 것 같은데.
"이미 80%는 찼다. 일부 업소는 내부 공사에 들어갔다.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으니 트래픽은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장사는 걱정 안 한다. 잘 해놓으면 결국 돈은 따라온다."
- 하지만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갔다.
"개발 프로젝트 발표하고 10년이 걸렸다. 앞으로 50 100년을 보고 짓고 꾸몄는데 그 정도 시간은 들여야하지 않겠나. '반'에만 450만달러 마당 전체로는 땅값을 제외하고도 개발비로 3400만달러가 들어갔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 있다. 가치다. 마당은 내게 있어 자식이다. 열달 배아파 아이를 낳듯 지난 10년간 가슴 아프다 이제 세상에 내놓는다. 완공해 그랜드 오픈하고 나면 끝이 아니다.
애 낳고 나서가 더 설레고 애달프다. 이제는 자식 키우듯 마당이 크는 거 보면서 잘 자라길 바란 뿐이다. 자식을 포기하는 부모가 있나. 나도 중간에 포기란 없었다. 앞으로의 걱정도 없다.
경험해보니 하이(high) 아니면 로우(low)더라. 개인적이건 비즈니스 때문이건 누군가를 대접해야 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꼭 있다. 업스케일로 만들어 놓았지만 그래서 불경기에 더욱 부담스럽겠지만 분명 수요는 있다."
- 토질 오염, 투자 분쟁, 공사 지연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2002년 11월 샤핑몰 개발을 공식 발표했고 2004년 12월 공사를 시작했다. 토지 오염 문제로 공사가 지연되더니 당초 2006년 가을 오픈 예정에서 2007년 하반기 2008년 2009년까지 왔다.
조닝 변경부터 지금까지 10년이 걸렸다. 처음부터 멀리 보고 시작한 것이기에 급할 것 없다.
내가 이루지 못하면 다음 대가 이어 한다는 각오였다. 시작할 때부터 주위에서 왜 총대를 메느냐 걱정도 많이 들었다. 돈보다는 사명감으로 시작했다. 그래서 떠도는 말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자신한다. 부러워 그러는 거라 받아들인다.
물론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 어려움이라는 것은 온갖 말들로 상처받기 보다는 하나라도 더 마음에 드는 하나라도 제대로 된 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온 것이었다.
마당이 다 되면 내게는 떳떳하게 보여줄게 있다. 지나온 과정보다 그 다음이 더욱 중요하다. 제대로 만들었으니 잘 운영해야한다. 말들을 듣고 신경쓰기에는 할일이 많다."
- 우래옥이라는 음식점으로 크게 성공했는데 굳이 샤핑몰 개발에 나선 이유는.
"미국에서 30년을 넘게 살았다. 한인 커뮤니티 한인 상권 모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우리를 대표하는 우리가 내세울게 없다.
경제적으로 성공했지만 한국사람으로서 창피했다. 한인 1.5세 2세들이 타인종 친구들을 타운에 데리고 와 '여기가 코리아타운이야' 할 만한 코리아를 알릴 만한 공간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식과 한국문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시작했다. 타운에도 뭔가 랜드마크가 필요하지 않은가. 한국 전통의 맛과 멋이 느껴지는 곳에서 풍성한 볼거리 즐길거리가 있는 곳이라면 한국사람으로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내 나이 내년이면 환갑이다. 돈 벌자고 시작한게 아니다. 한인 커뮤니티에 환원하고픈 마음도 컸다. 미국에서 살다보니 아이덴티티가 참 중요하더라. 한국인의 뿌리를 확인하고 스스로 자부심을 갖으면 스스로 빛도 발하더라. 아이들에게도 항상 하는 말이다. 마당은 그런 의미다."
- 우래옥은 주류에서 더 유명하다. 처음부터 그랬나.
"그렇다. 76년 미국에 와 우래옥을 운영했는데 그 때 일식 중식 레스토랑은 이미 자리잡고 있었다. 우연히 할리우드의 미스터 차우에 갔는데 음식도 맛있었지만 놀라운 것은 잘생긴 웨이터에 잘생긴 손님들이었다. 우리에게 중식이란 자장면이 고작이었지 않나.
그 중국음식을 베벌리힐스 돈많고 잘생긴 애들이 우아하게 즐기고 있다는게 충격이었다.
그들에게 자장면은 그냥 자장면이 아니었다. 신비한 나라의 새로운 음식이었다. 맛있고 멋있었던 그 때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식은 ‘와이 낫(why not)?’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식으로 도전해보자 싶었다. 70년대 한인 상권에도 한식당이 드물었던 때 한식을 주류에 소개했다. 그때도 타인종 및 주류 고객이 대부분이었다. 80% 이상이었다.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 왜 우래옥의 음식점 이름을 마당 샤핑몰에서 반으로 바꿨나.
“본격적인 주류 진출을 위해 프랜차이즈를 계획했다. 하지만 프렌차이즈를 위한 체계화된 한식 조리법이 없었다.
모두가 눈대중이고 감이었다. 레서피는 커녕 정해진 요리법이나 양도 두리뭉실, 카타고리 구분도 모호했다. 프랑스 요리 컨설턴트와 준비를 시작했다.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표준화, 계량화 작업이다. 20년이 걸렸다.
시범적으로 2005년 뉴욕에 오픈한 반 1호점에는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이제 완료됐다. 시작만 하면 된다. 성공할 자신도 있다. 하지만 이번엔 상표등록 때문에 이름에 문제가 생겼다. 또 우래옥은 타인종이 발음하기 어렵기도 했다.
그참에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반으로 바꾼 것이다. ‘반’은 한자어 ‘밥반(飯)’을 뜻한다. 반. 발음하기도 쉽고 어필하기도 좋다. 브랜드화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뉴욕 1호점에 이어 마당 2호점은 프랜차이즈의 플래그십이다. 미 전역에 반이 들어서는게 목표다. 반은 새로운 도약이다. 주류에 한식의 진정성을 알리겠다.”
- 앞으로 계획은.
“지금까지는 오로지 마당에 몰두했다.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후에는 본격적으로 ‘반’의 프랜차이즈에 나설 것이다. 앞서 얘기했듯 마당은 잘 키워야겠지. 반은 또다른 내 자식이다.
가족 비즈니스였던 맘&팝 스토어 우래옥이 이만큼 성장했다. 자식이 크게 성공할 가능성이 보인다. 반은 한식과 주류 고객의 니즈를 접목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변화가 공존한다.
식당 한쪽에는 ‘반 마켓’이라는 미니 코너를 마련해 반이라는 이름으로 냉면육수와 천연 양념 및 소스,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레디 투 잇 진공포장을 선보일 예정이다. 반에서 먹는 것과 같은 음식을 사갈 수 있게 된다.
햇반이 나와 밥은 안해도 되지만 반찬은 여전히 만들어야 한다. 반 마켓 제품은 즉석밥과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즉석반찬이라 보면 된다.
뉴욕 반에서 이미 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 LA쪽에도 피코와 라시에네가에 센트럴 키친를 두고 있다. 가동만 하면 된다. 반은 외식업 프랜차이즈 브랜드이면서 제품 브랜드가 될 것이다. 한식이 뜨고 있다. 앞으로 미전역, 전세계에서 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한식의 세계화의 프론트에 반이 있을 것이다.”
■마당은…
LA한인타운 웨스턴 선상 윌셔와 6가 사이 전 우래옥 자리(621 S. Western Ave)에 들어서는 샤핑몰. 부지 6만5000스퀘어피트에 지하1층 지상3층 12만 스퀘어피트 규모로 40개 업소가 들어설 예정이다.
옆 7층 건물은 480대를 수용하는 주차장이다. 음식점 '반' 민속주점 '마루에' 영화관 CGV를 비롯해 스쿨푸드 이태리 레스토랑 겸 와인바 비니비니 케잌하우스 노래방 전통찻집 커피샵 등 40개 업소가 들어선다.
최영숙 대표가 2년 넘게 한국을 돌아다니며 골랐다는 벽화 단청 십이지신상 해태상 천하대장군 등이 한국의 멋과 정취를 보여준다.
■최영숙 대표는…
1976년 이민왔다. 먼저 미국에 와 74년부터 지금의 용수산 자리에서 우래옥을 시작한 시어머니(고 이춘봉씨)를 도와 우래옥 운영에 뛰어들었다. 1984년 우래옥을 마당이 들어서는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난 20년동안 우래옥을 성공시켰다.
90년 베벌리힐스에, 99년 뉴욕 소호에 우래옥 지점을 냈고 2005년에는 뉴욕에 반을 오픈했다. 2007년 우래옥 프랜차이즈를 위해 베벌리힐스 분점을 조카 지나 한씨에게 매각했다.
상표등록 문제 및 브랜드화를 위해 이름을 우래옥에서 반으로 바꿨다. 남편 최헌태씨와 사이에 딸 둘을 두고 있다.
글=이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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