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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가작 "길동이 엄마"

이화선

남극에 겨울이 시작되었다. 하나 둘 모여든 황제펭귄들이 광활한 설원 위에서 꼬리를 문 행진을 시작한다.

길눈이 어두운 선두의 오락가락에 대오가 흩어질 만도 한데 펭귄들은 용케도 제 자리를 찾아 어기적어기적 느린 걸음을 옮긴다. 억만년 전의 선조들이 새겨준 기억 하나로 찾아가는 그 곳. 두 달 여 행진 끝에 찾아낸 후미진 빙판 위에서 그들은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무릅쓴 채 짝짓기를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것이다.

스무 번도 넘게 보았던 비디오를 또 다시 보고 있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길동이 엄마가 재가를 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엄마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코웃음부터 쳤다.

전화선을 타고 오는 목소리에 양 미간을 힘껏 모으고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리는 엄마의 새치름한 표정이 함께 따라왔다. '세상에!' 평상시엔 수다하지 않던 엄마가 줄줄이 사탕처럼 그칠 줄 모르고 말을 쏟아내는 통에 나는 단 한 마디만 거들었다. 정말이지 '세상에!'이다.

길동이 엄마는 30년 전 우리 집 가사를 거들어주던 도우미 아줌마였다. 수년씩 남의 집에서 기거를 하며 일을 돌보던 식모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자 도움이 필요한 쪽이나 시간당 일이 필요한 쪽 이쪽저쪽 사정을 주물러 나온 것이 파출부라는 신종 직업이었다.

그러니까 길동이 엄마는 그 직업이 막 붐을 타던 시절에 두 팔을 걷고 일을 시작한 초창기 멤버쯤 되는 셈이었다.

유달리 깔끔한 성격으로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하던 엄마는 제 입맛에 맞게 몇 년씩 이르고 가르쳤던 자야언니가 갑자기 떠나버리자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위로는 대학 졸업반의 언니부터 아래로 중학교에 다니는 남동생까지 줄줄이 다섯 아이들의 삼시 세 때 끼니를 대주는 일만 생각해도 앞이 깜깜해졌다. 도와줄 사람을 들여야 하겠는데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집에 데리고 있을 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자야언니만 해도 동향 친지가 '믿어보라. 아니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라는 확답을 서너 번 받은 연후에야 인연을 맺었지만 이제 생판 모르는 사람을 집안에 들여야 할 판이었다.

타고난 약골에 한 번도 혼자서 도맡아본 적이 없던 큰살림을 부둥켜안고 엄마는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밤마다 진동하는 파스 냄새에 엄마의 앓는 소리가 담을 타고 넘어갈 즈음 이웃 산동네에서 구세주 한 분이 왔다.

대문을 사정없이 두드리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담벼락에 번듯하게 달린 초인종을 두고 자동차 하나가 들락날락 거릴 만큼 커다란 철제 대문을 두드리는 이는 흔치 않았다. 숨넘어가게 덜컹이는 대문의 빗장을 서둘러 풀고 문을 활짝 밀어열자 나의 코 밑에 한 꼬맹이가 서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꼬맹이 아줌마였다. 돌돌 말아 올린 머리에 쪽을 쪄 백금 비녀를 꽂았는데 두상이 하도 조막만하다보니 무쇠 젓가락 한 짝이 그의 머리 한 가운데를 무지막지하게 관통하고 있는 듯 요상한 모양새였다.

어린 계집아이들이 흔히 입던 만화 그림이 그려진 스웨터는 가슴께로 치올린 고쟁이에 가려 신데렐라의 머리가 중간에서 댕강 잘라져 있었다. 의아하게 바라보던 나를 빤히 쳐다보며 그가 말했다.

"나가 길동이 엄마여!"

양손을 뒷짐 지우고 길동이 엄마는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집안엘 들어왔다. 마치 집수리를 할 때 견적을 내는 수리공처럼 집 전체를 꼼꼼히 들여다보더니 오전 내내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던 엄마를 향해 혀부터 찼다.

펭귄들은 어기적어기적 걸음을 옮긴다
그들은 추위와 배고픔을 무릅쓴 채
짝짓기를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것이다


"쯧쯧 이 큰 살림을 워찌 혼자서 다 했다요? 아줌씨 손가락이 남아나질 안았겄소."

아픈 엄마가 안쓰럽다는 위로인지 되도 않는 체력으로 괜한 짓을 했다는 핀잔인지 길동이 엄마는 당최 애매한 말투로 엄마에게 첫 인사를 건네었다.

"한 시간에 오백 원! 반나절은 네 시간 온 나절은 여덟 시간. 공일은 절디로 안돼지라. 더도 덜도 안 되이 두 말은 하지 마시오."

엉거주춤 반쯤 일어나 뭐라고 한 마디 건네려던 엄마는 연이어 날아오는 쐐기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길동이 엄마는 주인집 허락을 기다릴 양이 아닌 듯했다. 자기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부엌엘 들어서더니 양동이를 끌어다가 키 큰 싱크대 앞에 세워 놓고 까치발로 올라섰다.

그리고는 지난밤부터 수북이 쌓인 그릇들 속에 두 손부터 쑥 밀어 넣었다. 양철 설거지통이 요란하게 덜거덕거렸다. 설거지를 마치자 냉장고 안을 샅샅이 닦아내고 저녁 찬으로 쓸 야채며 생선을 꺼내 뚝딱뚝딱 손질을 마치기까지 이러니 저러니 물어오는 일도 불평을 하는 일도 없었다. 입술마저 옹 다물고 있어 오히려 궁금한 쪽은 엄마였다.

"저녁 반찬은 뭐라 카드노?" 엄마가 작은 소리로 내게 물어왔다.



길동이 엄마는 이 방 저 방을 쉬지 않고 들락거렸다. 예의 허리를 한 번 편다거나 숨 한 번 돌리는 일 없이 오로지 일감이 있는 곳을 향해 돌진 또 돌진하는 다부진 병사와 같았다. 저녁 식탁이 마련되고 하늘 서편에 노을이 살짝 걸릴 때쯤 길동이 엄마는 깨끗이 빨은 행주를 싱크대위에 휙 던지며 말했다.

"나는 이제 가야겄소. 울 아그 길동이 밥 해줘야 하니께. 일은 시방 다 했응께 한 이틀 있다 올라요. 아 글고 삯은 한 주일마다 주시오. 까묵지 말고 꼭 주시오."

엉덩이께로 내려간 고쟁이를 가슴까지 끌어올리더니 철 대문을 요란스레 여닫고 길동이 엄마가 돌아갔다.

"뭐 저런 여편네가 다 있노!" 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엄마는 눈을 흘기며 한 소리를 했다.

몸이 안 좋은 탓이라고는 했지만 길동이 엄마가 집안을 누비던 내내 한 마디도 거들지 못하던 엄마가 의아하긴 했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대로 꼼꼼히 살펴보면 자기의 성에 차지 않는 일이 수두룩할 것이라며 엄마는 분기탱천해 있었다. 그런 엄마를 안방에 두고 식구들은 길동이 엄마가 차려놓은 맛깔스러운 밥상 앞에서 분주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이틀 후에 또 다시 철제 대문이 덜컹거렸다. 문을 열자 코 아래는 잘려나가고 두 눈만 남은 신데렐라가 턱 하니 버티고 있었다. 인사를 할 사이도 없이 '나여 길동이 엄마!' 라고 외치며 그가 집안으로 쑥 들어왔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그를 쳐다보던 엄마가 미간을 찌푸렸다.

"초인종 있는 거 안 보입니꺼? 와 대문을 동네 시끄럽게 두들기는 교? 체신머리 없게시리."

"뭔 체신 말이여? 초인종이 있음 뭐하요. 내 키가 요로코롬 작은 디 손에 닿기나 하간디여? 토깽이처럼 깡총거려도 손까락 끝자락에도 못 미쳐여. 아줌씨가 내 초인종을 따로 맹글어 주던가 아니믄 내가 오는 시간에 문을 열어놓든가 양 단간에 결정을 하시오."

순간 엄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이 양반이 누구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능교. 아지매 명색이 내가 주인인데 말뽄새가 그라면 우얍니꺼. 지금까지 일 하믄서 그것도 몬 배웠어예?"

지난 번에도 그랬지만 길동이 엄마의 바로 그 '하시오' 체가 엄마의 기분을 사정없이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진작 알고 있었다.

본인이 누누이 말하기를 뼈대 있는 집안의 자손으로 아랫사람을 가르치기만 하지 본 때 없는 치에게 하대를 받으며 살 수는 없다는 자존심이 늘 가슴에 품은 은장도처럼 날이 서 있던 엄마였다.

지금껏 남편과 자식을 비롯해 이웃들까지 엄마의 말끝을 연이어 잡아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자분자분한 말씨에 단정한 몸가짐 게다가 왠지 살짝 건드리기만 하여도 화들짝 눈 꼬리가 올라가는 말간 낯을 한 엄마를 앞에다 두고 실없는 소리나 험한 소리를 건네는 사람은 정말이지 흔치 않았다.

"아줌씨는 지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다요 지 일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다요? 나는 본시 이래밖에 말 못하요. 배운 게 있다믄 이리 살겄시유? 근디 말씀만 하시오. 일을 잘 못하믄 하시라도 나갈텡게.

아니 지금이라두 오라는 데는 많은디 한 번 일 하자구 한 약조를 워찌 쉬 깨겠스라. 보아하니 아줌씨 근력으론 하루 이틀 만에 픽 쓰러질 것이구 새 사람 구할 때 꺼정 내 있어줄라요. 그닝께 언제든 말씸만 하시오."

도리어 선심은 자기가 쓰고 있다는 길동이 엄마의 대답에 엄마는 곧 제 분에 넘어갈 것만 같았다. 그런 엄마를 세워두고 길동이 엄마가 천연덕스럽게 부엌으로 들어가 버리자 엄마는 득달같이 안방으로 들어가 수화기를 들어 몇몇 번호를 돌리더니 집안이 떠나가게 큰 소리로 외쳤다. "사람 하나 빨리 구해 주이소!"

사람은 오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오겠다던 이는 갑작스레 다리가 삐었다 하고 지금은 일이 많아 시간을 내기 어렵다 하고 이래저래 길동이 엄마의 손을 빌어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간 지 달포가 지나고 있었다.

약속을 쉬 깰 수 없다던 길동이 엄마는 그 말처럼 철석같이 약속을 지키며 제 시간에 꼬박꼬박 철제 대문을 두드렸고 빈틈없이 집안일을 마감지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본때를 보이겠노라 벼르던 엄마는 길동이 엄마의 현란한 말솜씨 앞에 매번 입만 벌린 채 속수무책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간 수없이 많은 사람을 거느려본 엄마가 이쯤에서 길동이 엄마의 버르장머리 고치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수시로 시간 내에 끝을 내기 어려운 부탁을 하거나 아리송한 지침을 주어놓고 결과물에 대해 타박을 놓기 일쑤였다.

김치 담기만 해도 그렇다. '젓갈은 쬐매 고춧가루는 마이'처럼 당최 양을 가늠하기 어려운 표현을 써 놓고 길동이 엄마가 김치를 담아내는 족족 면박을 주었다. 서너 번 말없이 당하고만 있던 길동이 엄마는 어디서 구했는지 크기가 다른 양푼을 여럿 구해와 엄마에게 내밀었다.

"쬐매가 요놈이여 조놈이여? 마이라면 요 양푼이여 저 양푼이여?" 이를 때마다 정확한 양을 표시해 놓으라고 엄마의 턱 밑에 던져놓고 돌아가 버렸다.

엄마는 늘어놓은 양푼들을 채웠다 비웠다 하느라 그날 밤을 꼴딱 새우고 말았다. 장독 밑바닥에 구멍을 내놓고 물로 독을 가득 채어보라고 다그치는 팥쥐 엄마처럼 엄마는 꾀를 내는 일에 몰두했지만 문제는 그 구멍이 너무 컸다는 데에 있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알아내지 못할 것이라 싶어도 길동이 엄마는 귀신같이 구멍을 찾아내어 엄마에게 당찬 항의를 퍼부었다. 아니 엔간히 작은 구멍도 면밀하게 찾아낼 만큼 길동이 엄마는 침착하였고 여유가 있었다. 그러니 날이 지날수록 버르장머리 고치기는 엄마에게 고스란히 화살이 돌아가곤 했다.

엄마가 몹시도 바빴던 어느 날이었다. 저녁 찬거리가 떨어져 시장엘 가야 했는데 여간해서 짬을 낼 수가 없었다. 아직도 남이 미덥지 않아 손에 현금을 줘 본 적이 없었지만 종이에 살 것과 대략 가늠이 되는 값을 또박또박 적어 길동이 엄마에게 장을 보라 일렀다.

"아지매 어디 딴 데 기웃거리지 말고 후딱 댕겨오이소."

종이가 건네지고 한참이 지났지만 길동이 엄마는 왜인지 움직이지 않았다. 종이를 거꾸로 들다가 옆으로 들다가 손으로 문지르다가 뚫어지게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뭐 하능교. 후딱 댕겨오라카이."

"근디 아줌씨! 이거 뭐라고 써놓았시요?" 갑자기 엄마의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시골의 양가집 규수로 자라 신식 학교라곤 담 밖에서만 뱅뱅 돌았을 뿐 운문을 제대로 뗀 적이 없었던 엄마였다.

누군가가 '이름을 쓰시오' 라고만 하여도 글자 한 자 쓰느라 달달 떨리는 가슴을 움켜쥐어야만 했다. 창피를 당하는 일만큼은 죽도록 싫어 아이들 어깨 너머로 한글을 깨우치긴 하였지만 쓸 때마다 철자가 아리송한 게 늘 마음에 걸렸다. 이 치 앞에서마저 창피를 당하게 되는구나 뒷목에서 땀이 비실비실 묻어 나왔다. 그때 길동이 엄마가 말했다.

"나는 글자를 몬 읽는디. 우짰꼬나. 그냥 말로 일러주시오."

순간 엄마는 목구멍을 꽉 막고 있던 그 무엇이 명치 아래로 살살 기분 좋게 내려가고 있음을 느꼈다.

"글짜를 몬 읽는다꼬예? 하모 먹고 살기 힘든데 우예 핵교꺼정 보내줬겠능교. 그라고 보믄 아지매 같은 사람들이 젤로 불쌍하다 아닌교. 쯧쯧." 엄마는 일일이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낭랑하게 찬거리를 읽었다.

"시금치 한 단 고등어자반 한 손…."

길동이 엄마가 글씨를 읽지 못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엄마는 지난 날 그로부터 받은 불쾌감이 거의 상쇄가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엄마는 누가 뭐래도 대갓집 마나님이었고 길동이 엄마는 누가 뭐래도 그 대갓집의 일을 해주는 일개 파출부임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었다. 엄마는 한층 더 너그러워졌고 그런 엄마를 쳐다보며 길동이 엄마는 가끔 '이 양반이 뭘 잘 못 먹었구나'

심드렁한 표정을 짓곤 했다. 급기야 엄마의 호기심은 길동이 엄마의 일거수 일투족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끔 몇 시라예?"

시계 앞에 선 길동이 엄마가 고개를 모로 꼬고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으며 대답했다.

"두시 하고도 삼십분이 넘고 있지라."

"오늘이 며칠이라예?"

일 달력에 바싹 붙어 그 역시 손가락으로 세어나갔다.

"삼월 초닷새라는구만유."

"우째 그래 잘 아능교." 그때마다 엄마는 어린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띠며 말했다.

글자라는 기호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길동이 엄마가 세상 돌아가는 이치나 셈이 어두울 것이라는 억측은 엄마만이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오히려 길동이 엄마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차질 없이 일을 처리해 나갔다.

한동안 조용한가 싶더니 어느 날 엄마와 길동이 엄마 간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매 주마다 받는 주급의 액수가 맞지 아니 하다고 길동이 엄마가 따졌다. 엄마는 꼬박꼬박 가계부에다 적고 있으니 틀릴 리가 없다고 맞섰다. 한참 승강이가 오고 간 후에 엄마는 가계부를 들고 나와 길동이 엄마의 눈앞에 들이대었다.

"자 여기 보소. 내가 아지매 몇 시에 오고 몇 시에 갔는동 다 적어놓았다 아입니꺼? 이래도 우길라요?" 보여준다고는 했지만 엄마는 길동이 엄마가 자세히 보려고 얼굴을 들이밀자 가계부를 탁 닫아버렸다.

"뭐 보믄 알아예? 몬 읽는다믄서." 엄마의 얼굴에서 득의양양한 미소가 번졌다.

"아줌씨가 쓴 거를 나가 어찌 알간디유. 헌디 나가 쓴 거를 보믄 다 알아뿐지라." 엄마보다 더 득의에 찬 미소를 던지며 길동이 엄마는 고쟁이 속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아주 꼬질꼬질하고 도톰한 수첩 하나를 꺼내어 한 장씩 들추었다.

"여그 보시오. 5월 25일부텀 30일꺼정 두 온나절에 한 반나절을 왔다라고 적혀 있잖여?" 깨알처럼 써놓은 것은 끝도 없는 막대 표시였다. 하루면 막대 하나 열흘이면 막대 열개 삼십 날이면 막대 삼십 개.

그리고 반일은 세모 하루 종일은 동그라미를 그려놓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잘 알아볼 수 있게 만든 길동이 엄마만의 장부였다. 과연 손가락으로 짚어 나가는 곳에 꼭 눌러 쓴 표기가 있었고 바로 그제 하루 종일을 반일로 잘못 기입한 쪽이 다름 아닌 엄마라는 것도 밝혀졌다.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확실했다. 얼굴이 벌게진 엄마를 앞에 두고 길동이 엄마는 연신 싱글거렸다.

"암만 지가 아줌씨 글씨를 워찌 알갔시유? 모르지라. 긍디 너무 쏙 끓이지 마시오. 사람이 저 잘났다 저 잘 났다 해도 워떠케 몽짱 다 잘 났겠시유. 쪼께 실수도 하는 기 사람 아니겄소?"

이쯤에서 백기를 들었으면 좋으련만 엄마가 또 한 마디를 거들었다.

"그기 우리 집 껀지 우예 압니꺼? 우리 집이라꼬 써 놓지도 몬 하믄서."

"하이고 퍼렁색 수기 책이잖유. 이 집은 대문 색깔이랑 똑같이 퍼렁 색이라니께. 누렁색 뻘겅색 분홍색. 나가 색깔은 다 알지라. 암만!"

노기등등하던 엄마의 기세가 나날이 무디어 가면서 일견 두 사람도 별 탈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엄마가 '우리 집안은.. 우리 가문은..' 하면서 으스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 판검사님 집에 저게 있당께요. 음매, 좋은 거"
"판사면 판사고 검사면 검사지, 판검사가 뭐꼬. 무식하그로!"


집집마다 저 마다의 풍습과 예절이 다른 것이 마땅하거늘 엄마는 늘 우리의 것이 다른 이의 것보다 낫다고 여겨야만 직성이 풀렸다. 남의 것을 좋은 마음으로 눈 여겨 보지 않으니 어떻게 시대가 급변하고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 가는지 영 따라 잡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리곤 곧 죽어도 따라 잡지 못하는 자기의 한계를 감히 보통 사람은 넘보기 어려운 뼈대 있는 집안의 소신쯤으로 상치시켜 버렸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자기와 동급인 사람 한 둘에 아랫사람 열 명 누가 뭐래도 본인은 거느리고 사는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서 나름 평온한 세월을 보내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 평온도 길동이 엄마로 하여 곧잘 위태로워지곤 했다.

"우리 집안에선 이래 안 해요. 못 배운 사람들이 그래 하지." 엄마와 달리 찝찔한 조선간장 대신 달짝지근한 양조간장으로 조물조물 무쳐낸 길동이 엄마의 시금치 무침만 해도 그렇다. 거기에 참기름과 깨소금을 담뿍 넣어 반지르르하게 담아내면 보기만 하여도 침이 꼴깍 넘어가거늘 배우고 안 배운 것이 시금치 무침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몇 번의 통박을 당하고 길동이 엄마가 점잖게 말했다.

"아줌씨 나가 댕기는 집이 모다 한 벼슬 하는 집 아니요? 아줌씨도 잘 알겄구만이라. 쩌 언덕배기에 담이 무작스레 커다란 집들 말이랑께요. 하나는 판검사 집이구 하나는 의사 큰 회사 사장 아 그라고 선교산가 하는 미국 사람도 있슴시라. 모다 요로코롬 먹는당께요. 아줌씨처럼 구닥다리로는 안 먹지라. 그닝께 나가 맹글어주믄 그냥 드셔보시소."



확실히 길동이 엄마는 엄마보다 한 수 위였다. 언젠가 십년 전에 사서 가보처럼 모시고 있던 미제 냉장고에 살짝 상처가 났을 때 그것을 두고 한 달 내내 길동이 엄마의 손놀림을 탓하자 길동이 엄마는 최신 전자제품들이나 가전제품들이 텔레비전에서 보일라치면 엄마부터 불러 앉혔다.

"저거 쫌 보시쇼. 우리 판검사님 집에 저게 있당께요. 음매 좋은 거" "이거는 우리 의사 선상 집에 두 대나 있는디. 아무나 못 가지지 암만" 하면서 슬슬 약을 올리기도 하였다. 이래저래 족보나 재산 명예에 이르기까지 말을 꺼내어놓고 본전도 못 찾는 일이 잦아질수록 엄마의 어깨가 점점 쪼그라들어 길동이 엄마보다 훤칠하게 잘 생긴 용모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판사면 판사고 검사면 검사지 판검사가 뭐꼬. 무식하그로. 그라고 지가 판검사가? 어데서 으스대쌌노!"

아무리 벼슬하는 집 문턱을 넘어 다닌다 하여도 길동이 엄마는 일개 일 거드는 사람일 뿐 어디 감히 그 댁 식구인 냥 행세를 하느냐고 엄마는 틈만 나면 분을 내었다. 행색이 그렇게 구질해서야 누가 부엌 일선에 두겠느냐는 말처럼 길동이 엄마는 진짜 찬모가 아니라 바깥마당에서 허드렛일만 하는 보조 찬모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밥 삼년이면 염불도 외운다고 가사를 처리 하는 그의 솜씨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시간 안에 반드시 끝을 내는 수행 능력을 넘어 침착하고 세심하고 고급스러운 그 무엇이 있었다. 거기에 몇 달이 지나도 돌보고 있는 집의 일일랑 여간해서 떠벌리지 않는 무거운 입도 대갓집의 사람들과 영 무관하지 않게 여겨지는 부분이었다.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이 당장 없어서라는 건 엄마의 핑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엄마가 자존심을 긁혀가면서도 길동이 엄마를 쉬 내치지 못하는 이면엔 어쩌면 저 언덕배기의 대갓집 살림살이가 우리 집 안방에도 묻어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눈만 뜨면 '뼈대'를 들먹이긴 하였지만 실상 그 뼈대가 우리 집 목조건물의 대들보의 무게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엄마도 적이 모르지 않는 눈치였다. 우리는 서울 시내에 집 한 칸 작은 사업체 하나밖에 지니지 못한 소시민 가정일 뿐이었다.



백날 집안에서 호령을 하여도 긴한 일이 일어날 때 줄이 닿는 관공서 직원 하나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무력한 소시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일개 찬모인 길동이 엄마가 아주 가끔 들려주는 언덕배기 대갓집과의 인연은 엄마 역시 다다르고 싶은 욕망의 주소지가 되고도 남았다. 그런데 꿈에 그리던 그 인연은 아주 참담하게 이루어졌다.

어느 초겨울 저녁이었다. 막내인 남동생 종식이가 하루 종일 감감 무소식이라 애를 태우고 있던 차에 경찰서에서 대뜸 전화가 걸려 왔다.

댁의 아이가 불량배들과 패싸움을 했으니 와서 벌을 받을 지 말지 결정을 하라는 전화였다. 이제나 지제나 하였지만 막상 듣고 보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소식이었다.

혼비백산한 엄마는 맨발에 슬리퍼만 끼우고 득달같이 달려갔다. 스무 명쯤은 족히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들이 터지고 멍이든 얼굴을 씰룩 거리며 경찰서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고 과연 그 가운데 종식이가 무릎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앉아 있었다.

아침에 말끔하게 다려입힌 검정 교복은 단추가 다 달아나 속내의가 훤히 내다 보였고 횟가루를 뒤집어썼는지 허연 얼룩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묻어있었다. 엄마는 벌써 사색이 되어있었다. 합의를 해야 풀어준다는 둥 입건이 될 지도 모른다는 둥 생전 가까이서 들어보지도 못한 단어들이 경찰서 책상 위를 날아다닐 즈음 문을 세게 젖히며 누군가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길동아! 나 아그 길동아!"

"엄니 나 여그 있어!" 종식이 옆에 꾸부리고 있던 덩치 큰 녀석이 신나게 양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때까지 용케 두 다리로 버티고 있던 엄마가 풀썩 땅바닥으로 주저앉아 버렸다.

'내 아기 길동이' 그 말을 할 때면 길동이 엄마의 목소리에서 영락없이 축축한 물기가 묻어나왔다. 일을 하러 올 때마다 종일 먹는 것이라곤 밥 한술에 짠지 한 쪽 그것도 물을 말아 훌훌 넘기기만 하는 지라 우리 집의 저녁상이 차려질 즈음엔 길동이 엄마의 뱃가죽이 등에 붙어 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한데 그득한 밥상을 앞에 두고 한 술 뜨고 가라는 청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대신 '내 아기 길동이' 밥 먹일 생각에 곧장 문밖으로 달음질을 쳤다.

"길에서 아그를 낳았으이 길동이제."

언젠가 엄마가 이불 빨래를 함께 만지다가 왜 아들 이름이 길동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첫째 딸은 내 나이 열일곱에 낳았는디 나 혼자서 탯줄을 잘랐당께요. 첨이라 잘 안 잘라져서 고생 옴팡 했구먼. 둘째 딸 때에는 아주 깨끗이 잘랐지라. 긍디 셋째 딸은 옴마 나가 혼자 잘 낳고 있었는디 또 딸년이냐고 냄편이 들어와 뜨거운 물 양동이를 발로 차는 바람에 아그가 홀라당 덴 거여.

지끔두 몸이 오그래졌뿐졌지 뭐라. 난중에 사내 아그 몬 낳는다고 죽도록 얻어 맞고 낳은 기 바로 울 아그 길동이여." 이불 홑청 한 끝을 거머쥔 길동이 엄마가 손아귀에 힘을 주는 지 맞잡고 있던 엄마 쪽의 홑청 끝이 쑥 빠져 버렸다.

"소작 얻은 집 논일 해주고 오다가 논바닥에서 아그를 낳았어유. 잘 보이 꼬추가 달린 거여. 하이고 얼매나 좋던지 고 핏덩이랑 남은 아그들을 들쳐 업고 그 길로 도망을 쳤뿌렀지라. 내 나이 열 하나에 민메느리로 시집을 가서 죙일 논일 밭일 집일 다 해주고도 밥 한술 얻어먹기 힘들었는디.

밥풀 몇 개 주워 먹을라치믄 먹는다고 때리고 쬐매 앉아 등짝이라도 펼라 치믄 일 안 한다고 때리고 냄편이 아니라 저승사자였땅께요.

고로코롬 맞고 살아도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일을 아 글씨 길동이가 나오니까 쩌 밑에서 힘이 볼끈 솟는 거여. 대한독립만세가 따로 업드만. 밤기차를 탔는디 나는 그기 별 천지로 가는 아폴로 뭔가 하는 뱅기인 줄 알았당께요." 길동이 엄마는 옆에 놓인 사발의 물을 한 모금 물더니 이내 푸 하고 홑청에 뿜었다. 얼마나 힘 있게 뿜었는지 사방천지로 튀어 엄마의 눈에도 그의 눈에도 한참동안 물기가 가시지 않았다.

귀하게 얻어 귀하게 키운 길동이었다지만 실상은 귀하게 자라주질 않았다. 중학교를 들어서면서 온갖 못된 짓은 다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우리 엄마의 귀에도 진작 들려왔다. 종식이가 물고 온 소식이었다.

밥만 잘 먹이면 다냐 어째 아이를 그렇게 키우느냐고 핀잔을 주고도 남았을 엄마이지만 우리 쪽 사정도 여의치가 않았다. 종식이야말로 길동이 버금가게 일을 저지르고 다니던 우리 집의 유일한 골칫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이웃 학교에 다니면서 연배도 길동이랑 비슷하여 모르긴 몰라도 길동이와 노는 물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어림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날 짐작은 사실로 드러나 버렸다.

경찰서는 달려온 부모들과 아이들의 고함소리로 귀청이 떨어질 듯 소란스러웠다. 우리애는 안 그랬네 저 애가 먼저 그랬네 자기 말만 들으라고 생떼를 쓰는 통에 담당 형사는 아예 귀를 솜마개로 틀어막고 있었다.

진한 로션 냄새를 풍기며 미국 사람, 미스터 로보트가 왔다
미스타를 연발하는 길동이 엄마의 당찬 콩글리시는 막힘이 없었다


엄마는 벽을 바라보고 등을 진 종식이를 멀찍이서 노려보면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고 길동이 엄마는 덩치 큰 길동이에게 바싹 달라붙어서 아이의 항공모함 같은 등을 연신 쓸어내리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니 쉬 훈방이 될 것이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사람들이 소곤거렸다. 얼마 후 담당 형사가 사건에 대하여 설명을 해 주었다.

길동이와 종식이 외에 여섯 녀석들이 한 패가 되어 건너 동네에서 온 건달패들과 영역 싸움을 하였다는 요지였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을 했던 바였다.

문제는 영역이란 것이 아이들이 들락거리는 만화방이나 분식점 정도가 아니라 숱한 폭행 사건에 연루가 되었던 술집들을 지칭하는 것이었고 또 폭력 조직과도 연관이 있어 단순히 훈방이 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엄마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지더니 몸이 좌우로 휘청거렸다.

바로 그때 형사의 코밑에서 설명을 듣던 길동이 엄마가 사람들을 제치고 갑자기 문밖으로 내닫는 것이 보였다. 그러더니 한 십 분쯤 지났을까. 앉아서 조서를 꾸미던 담당 형사가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뜸 경례를 올려 부쳤다.

수화기에 대고 '네! 네!'라고 소리를 버럭 지르더니 곧 '오길동'을 불렀고 두 말도 없이 경찰서 밖으로 아이를 돌려보냈다. 종종 걸음으로 길동이를 따라 나가던 길동이 엄마가 몸을 돌려 넋이 나가 있는 엄마에게로 느릿느릿 다가왔다.

"나가 아줌씨 체면도 있고 해서 계속 모른 척 할라고 했는디 인사는 해야 쓰겠지라. 긍디 미안해서 워쩌까요. 우리 판검사 선상님이 길동이를 겁나 이뻐항께로. 나는 먼저 가요잉. 욕보시오." 엄마가 획 돌아서는 그의 팔을 억세게 붙들었다.

"아지매 기냥 가면 우얍니꺼. 우리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아지매가 그 판검사 양반한테 말 쫌 해주이소. 아지매 아이믄 우리 종식이 우얍니꺼. 지발예." 엄마는 작달만한 길동이 엄마의 팔에 죽자 사자 매달렸다.

"글씨… 고건 어렵겠는디. 우리 판검사 선상님이 아무나 챙겨주진 않는다고 했는디. 길동이는 하도 이뻐야 하니께. 우짠다냐."

"우리 종식이도 이쁘다 말 쫌 해주이소. 우예 꼭 쫌 도와 주이소." 길동이 엄마의 목소리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갈수록 엄마는 점점 더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길동이 엄마를 앞세우고 종식이를 빼 오던 날 이후로 엄마는 근 열흘 동안 앓아누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과 달리 끙끙 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말미에는 어금니를 앙 물은 채 주는 밥을 우걱우걱 다 밀어 넣었다. 열흘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마자 엄마가 비장하게 말했다.

"우리 집에서도 판검사 맹글어낸다! 반다시 나올 끼다!"

구겨지고 망가진 엄마의 자존심은 고스란히 우리 자식들에게 빚으로 얹혀졌다. 가정교사가 붙고 시간표가 짜이고 잠시도 쉴 틈 없이 엄마의 닦달이 이어졌다. 그것도 모자라 판검사가 되려면 영어도 유창해야 한다며 미국 사람까지 물색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아버지가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다녔던 영어 회화 학원에서 선생 하나를 모셔 오기로 했다. 말은 그렇게 하고 다녔지만 미국 사람을 그것도 주말마다 집안에 들인다는 것이 엄마에겐 엄청난 부담이었다. 우선 첫날 식사를 내놓는 것부터가 영 가늠이 되질 않았다.

한참을 고민 끝에 돈을 좀 쓰더라도 떡 부러지게 잘 차려진 양식을 내기로 결정을 하였다. 아이들의 사기도 북돋우고 우리를 우습게 아는 이웃이나 길동이 엄마에게 우리 집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도 싶었다. 양식이라곤 과일 샐러드밖에 모르는 지라 양식 잘 하는 사람을 찾다가 시내 모 호텔 주방에까지 부탁을 넣었다.

나이가 갓 삼십쯤 되어 보이는 요리사가 조수 하나를 대동하고 택시에 한 가뜩 음식을 싣고 나타났다. 짐을 받아 나르던 길동이 엄마의 두 눈이 어리둥절해졌다.

경찰서 사건 이후 엄마는 길동이 엄마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있어도 없는 듯 차분하다기 보다는 애써 무심하게 길동이 엄마를 대하고 있었다. 그날도 집에 미국 사람을 초대한다는 얘기를 숨긴 체 번듯하게 요리를 차려놓고 구경만 시켜줄 작정이었다.

"아지매는 부엌에 들어올 필요 엄꼬 마당에서 뒤 설거지만 하믄 됩니더. 지가 유명한 호텔 요리사를 오라했다 아입니꺼."

길동이 엄마는 가타부타 말없이 알았노라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부엌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에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다.

요리는 미국 사람들이 명절 때마다 먹는다는 칠면조 요리로 정해졌다. 닭백숙 한 마리도 귀한 판에 닭 서너 마리는 족히 넘어 보이는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칠면조가 쟁반만한 접시에 올려졌다.

뭉근하게 쪄 낸 빵 조각에 기름기가 둥둥 떠다니는 허연 소스도 곁들여졌다. 빨갛게 속이 덜 익어 보이는 햄 고구마를 으깬 것 몇 개의 빵을 담은 바구니 등 생전 먹어보지 못했던 희한한 요리들로 상차림이 시작되었다.

"양식은 데커레이션이 제일로 중요하죠." 요리사가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이 작아서 옆집에서 큰 교자상을 빌렸지만 요리사가 가지고온 식탁보를 깔고 음식 몇 가지에 사람 수대로 큰 접시들 하나씩 포크니 나이프를 놓는 것만으로도 더는 틈이 없어 가운데 세워놓겠다던 꽃병은 도로 가져가 버렸다.

마침내 진한 로션 냄새를 풍기며 미국 사람 미스터 로보트가 왔다. 몸집이 땅딸막하고 피부가 가무잡잡한 로보트는 아무래도 반쯤만 미국 사람인 것 같았다.

생김새가 앞집 철물점 아저씨와 얼마나 흡사하던지 식구들의 코에서는 김빠지는 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곱게 한복까지 차려입은 엄마가 옆구리를 찔러대는 통에 입을 다물기는 하였지만 낯선 말에 낯선 음식을 앞에 두고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들처럼 허공만 바라보았다. 고작 아버지가 더듬거리는 영어로 몇 마디 할 뿐 로보트의 쏼라 거리는 소리만 상위에서 쩡쩡 거렸다.

요리는 하나같이 맨송맨송하기만 했다. 포크로 깨작거리다보니 도무지 양다리를 하늘로 치켜 벌린 칠면조가 줄어들지 않았다. 한데 사정은 로보트도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때 미스터 로보트가 말했다.

"김치?"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북이 김치를 썰어 담은 보시기를 들고 길동이 엄마가 득달같이 튀어 들어왔다.

"암만 한국에 왔으면 한국 음식을 먹어야제. 우리 미국 선교사가 그랬으라. 미스타도 잘 알아뿐졌네 오께이?"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애꿎은 칠면조를 밀어 낸 자리에 보글거리는 된장찌개가 올라오고 언제 지졌는지 빈대떡 접시가 날아왔다.

연신 웃음을 터트리는 로보트 옆에 바짝 붙어 앉아서 미스타를 연발하는 길동이 엄마의 당찬 콩글리시는 막힘이 없었다. 그 기운에 힘입어 마침내 식구들이 하나 둘씩 입을 떼기 시작했다. 유쾌하고도 소란스러운 저녁상이 무르익어 갈 무렵 방 한 귀퉁이에서 바닥에 놓인 칠면조의 살을 발라내던 엄마가 토라진 목소리로 길동이 엄마에게 소리쳤다.

"아지매! 그래 좋으면 미스타 로보뜨네 집에 가서 일 하믄 되겠네. 이제 우리 집에는 고마 오소. 그라고 이 칠면조인가 닭 할밴가 하는 거 이거 몽짱 다 아지매 가져가든지 야옹이한테 던져 주든지 하소! 맛도 지지리도 엄찌. 우째 갸도 먹을랑가 모르겠구마!"

길동이 엄마와의 인연은 그 날로 끝이 나 버렸다.

마침내 남극에도 여름이 찾아왔다. 제법 자란 아기 펭귄 한 마리가 멀어져 가는 엄마 펭귄의 뒤를 열심히 좇고 있지만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훠이훠이 제 갈 길로 걸음을 재촉한다. 망연히 서서 엄마의 등 뒤를 바라보던 아기 펭귄이 이윽고 발길을 돌린다. 옹기종기 모여든 아기 펭귄들이 바다 해빙의 바다로 하나씩 둘씩 힘차게 뛰어 들어간다. 또 다른 행진이다.

벌써 한 시간 째 영화도 끝이 나 버렸건만 엄마는 여전히 전화통에다 대고 길동이 엄마 얘기를 늘어놓았다.

"길동이 장가 가 아도 다 낳았고 이제 지 할 일 다 했다고 고마 지 갈 길로 날아간다 카더라. 시상에 체신머리도 엄찌. 나이가 환갑이 넘어가지고 새로 살믄 얼매나 산다꼬. 얼매나 남세스러운 일이고. 아 근데 길동이 어매가 누구한테 시집을 갔는지 아나? 로보뜨다 미스타 로보뜨!"

길동이 엄마와 미스터 로버트! 나는 아주 오래간만에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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