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
채수호/자영업
미국에서 자그마한 자영업을 하고 있는 제가 감히 높은 분께 글을 올린다는 것이 주제넘은 일인줄 압니다만 신문에서 노 전대통령에 관한 기사를 읽고 너무나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에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이제까지 제 마음 속에 그려진 당신의 인상은 ‘깨끗함·당당함·소박함·서민적임·약자의 편에 서는 분’ 등 한마디로 참신한 지도자의 이미지였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당신을 대통령으로 뽑았고 탄핵의 거센 바람까지도 막아주었지요.
5·6공 청문회 때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혼쭐 내주던 ‘노무현 의원’의 모습은 아직도 제 기억속에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그때 청문회장에서 당신이 던진 날카로운 질문과 촌철살인의 정확한 지적은 국민들의 마음속을 후련하게 해주었으며 그 일로 청문회 스타 라는 별명까지 얻으셨었지요. 그때 보여주신 눈부신 활약상이 후일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근 연이어 신문에 나는 당신과 그 주변에 대한 불미스러운 기사는 제가 이제까지 생각했던 ‘인간 노무현’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어서 심히 혼란스럽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청렴결백을 강조하시던 당신이 아닙니까? 뇌물을 받는 공무원은 패가망신을 시키겠다던 분이 기업인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니요. 그것도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 경내에서 말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혐의가 믿기지 않아 사실무근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만 날이 갈수록 드러나는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어떤 형태로든 불법적인 돈거래가 이루어졌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노 전대통령께서는 엊그제 홈페이지에 직접 올리신 사과문에서 ‘저의 집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입니다.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해명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부인이 한 일이라 자신은 모른다는 말씀인데 바로 그 뒤에 나오는 ‘미처 갚지 못한 빚을 갚는데 사용했다’ 라는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돈의 용처를 알고 있는데 돈거래 사실을 모르셨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님, 언필칭 청렴결백을 주장하시던 노 전대통령님이 뇌물을 받은 것도 실망스럽지만 사실이 밝혀지자 ‘집사람이 한 일이라 나는 모른다’ 하고 부인 탓을 하는 것은 비겁한 일 아닙니까.
설령 권양숙 여사가 혼자 한 일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한 가정의 남자라면 집안 단속을 못한 것에 대해서 남자답게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전대통령님, 당신이 기업인으로부터 받은 달러화에는 워싱턴·링컨·프랭클린 등 역대 미국 대통령과 선각자들의 사진이 들어있습니다. 그만큼 대통령은 국가의 리더로서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자리입니다.
화폐 뿐 아니라 ‘러쉬모어’ 산의 암벽에는 워싱턴·링컨·제퍼슨·루즈벨트 등 대통령들의 거대한 얼굴모습이 조각돼 있습니다. 훌륭한 대통령의 업적을 자손 대대로 수수만년 기리자는 뜻이 담겨있겠지요.
불행하게도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기 보다는 망명지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든가 부하에게 총살당하거나 교도소에 수감되는 등 불명예스럽게 권좌에서 물러난 분들이 많습니다.
청문회 스타였던 당신이 청문회 증인석에 서게 된다면 이 얼마나 서글픈 역사의 아이러니입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님, 솔직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구차하게 변명 하시지 말고 깨끗하게 책임을 지십시오. 이것만이 당신을 믿었던 국민들을 더이상 실망시키지 않고 진심으로 그들에게 사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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