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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7] '각서 안 쓰면 또 워싱턴 갈 거요'

존슨 대통령과 담판 끝에 '브라운 각서' 작성
상당한 실리 얻어내 한국 경제발전의 디딤돌

이동원 장관과 존슨 대통령 간에 오간 두 시간의 대화는 한국군 파월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른바 '브라운 각서'에 담길 내용도 백악관에서 타결된 셈이며 한국 정부가 계산한 경제적 실리도 사실상 큰 줄기에서 합의를 보게 되는 것이다.

60년대를 관통하는 한국경제사에서 분명한 획을 긋고 있는 국군 파월 내용은 89년 2월부터 집중 인터뷰 여섯 차례 수시 인터뷰 십수 차례를 통해 채록한 이 장관의 증언과 공개된 외교문서를 근거로 하고 있지만 외교문서에 나오지 않는 비사들은 대화록을 통해 재구성했다.

이 장관은 존슨 대통령이 '월남에서 미군이 상당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미국이 믿는 친구인 한국이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을 듣고 특유의 배짱과 익살스러운 논리를 펼치며 편하게 대화를 이끌었다고 했다.



"각하 미국이 한국의 혈맹이고 친구고 한국이 가장 의지하는 형님인데 그런 미국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알면서 도와드리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우리 국민은 보은과 의리를 소중히 하고 박정희 대통령께서도 우리의 방위선이 위협 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미군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면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미군을 도울 수 있도록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셔야 가능하겠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미국이 어떻게 도와주면 한국이 우리를 도울 수 있다는 거요."

여기서 이 장관은 두 가지 조건을 꺼낸다. 브라운 대사를 통해 미국에 전달하려 했던 핵심이었다.

"각하 대한민국이 미국을 돕기 위해 파병을 하는데 파병으로 인해 대한민국 안보가 위태롭게 돼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월남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맹방인 한국이 안보의 위협을 받는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요."

"감사합니다 각하.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파병에 따른 한국군의 전력 약화를 막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한국군을 현대화해야만 되는데 브라운 대사께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제 말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건 우리 대사가 잘못이오. 내가 도와드리겠소."

대사를 옆에 앉혀두고 그렇게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이냐고 했을 때 이 장관은 정색을 하면서 '외교 교섭은 실리추구가 목적이다. 체면도 없고 인정사정이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어렵더라도 결정권자를 만나려고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외교를 잘한다고 하는 게 무슨 소린지 아느냐. 가증스러울 정도로 억지를 부리고 뻔뻔스러운 짓을 예사로 하면서도 시침을 딱 떼고 자기들 주장을 고집하기 때문'이라면서 크게 웃었다.

물론 브라운 대사는 어금니를 짓누르며 붉은 반점이 돋을 정도로 화난 표정이었지만 존슨 대통령이 자신에게 확인하지 않는 한 끼어들지 못하게 돼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장병들 대우 문제입니다. 한국군이 생명을 걸고 미군을 도우려고 하는데 그러자면 미군이 한국군을 형제처럼 아우처럼 대접을 해줘야 용기백배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당연한 것이오. 누가 대접을 하지 않겠다고 했소?"

"여러 가지 재정 지원에 있어서 브라운 대사가 차등 대우를 하겠다고 하니까 제가 생각할 때 이건 각하께서 모르고 계시는 사항이 아닌가 싶어 각하를 뵈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건 우리 대사가 또 잘못한 거요. 같은 전장에서 함께 싸우는데 차등대우를 한다면 한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쾌하게 생각하겠지요. 내가 지시를 하지요."

이것으로 협상은 끝났다. 이 장관은 '두 시간 동안 만났는데 장병들에 대한 처우문제와 한국군 현대화 문제가 30분도 걸리지 않고 해결됐다'면서 나머지는 월남전쟁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 묻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국회가 들끓고 국민의 우려가 증폭되는 국가적인 최대의 이슈였지만 상대에 따라 의외로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이 국제외교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미 전쟁을 하고 있는데 존슨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무엇이 궁금했다는 겁니까?

"그게 사실은 존슨 대통령의 불행입니다. 역사적으로 월남전에서 미국은 무엇이었느냐를 평가할 때 중요한 의문의 포인트가 되기도 하는데 미국의 개입이 세계 정치사에서 어떤 문제점을 남기고 어떤 영향을 미치겠느냐 하는 걸 존슨 대통령은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던 겁니다. 나는 그렇게 봐요. 존슨이 나한테 월남전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고요.

이건 굉장한 시사점이 있는 거요. 그때까지 존슨은 확실하게 국제외교를 통한 지지를 확보하지도 파악하지도 않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솔직하게 그대로 얘기했어요.

미국은 어렵다. 그러자 왜 어렵다고 보느냐면서 심각하게 물어요. 각하 월맹도 동양인데 동양 사람들은 호랑이를 무서워합니다.

그런데 미국이 호랑이인 줄 알고 처음에는 겁을 먹었는데 싸우고 보니까 미국은 종이호랑이다 이건 무섭지 않다 오래 시간을 끌면 언젠가는 종이호랑이가 터질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 각하께서는 두 개의 적과 동시에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월맹과 미국 내부의 반전 세력이지요. 각하께서 월맹을 이기려면 나는 종이호랑이가 아니고 진짜 호랑이라는 걸 보여주셔야 하는데 그걸 보여주기에는 의회부터 강한 저항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렵다는 겁니다 하니까 존슨 대통령이 굉장히 심각하게 들어요."〈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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