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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레이디 권양숙'

박용필/객원 논설위원

미국의 영부인은 호칭이 제각각이었다. 건국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부인 마사는 '레이디 워싱턴.' 그냥 '미세스 워싱턴'이라 부르기가 민망했던지 '레이디'란 타이틀을 붙였다. 유럽의 귀족 부인을 연상케해 워싱턴 부부는 이를 마뜩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품성이 현모양처 스타일인 마사는 워싱턴의 대통령 출마를 극구 말렸다. 그래서 취임식 참석을 거부하기까지 했던 것. 임기를 끝내고 마운트 버논으로 낙향해서는 아예 '레이디'란 존칭을 못쓰게 할 정도로 겸손했다.

호칭이 '퍼스트 레이디'로 격상(?)된 것은 1850년대 무렵. 어느 전직 대통령 부인의 장례 추모사에서 처음 쓰여졌다.

그러나 '미세스 프레지던트'를 고집한 영부인도 있다. 얼핏 '여성 대통령'으로 들릴 수도 있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부인 메리가 바로 장본인이다. 백악관 직원들에게 자신을 '퍼스트 레이디' 대신 '미세스 프레지던트'로 부르라며 호통을 쳤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권력을 탐했기 때문에 이런 호칭을 쓰게 한 것일까. 그런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메리 링컨이 탐한 건 다름아닌 돈.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도 멀리 뉴욕으로 원정 샤핑을 가 최고급 드레스 등 고가품 사재기에 열을 올렸다.

아버지와 남편 아들은 전쟁터에서 죽어가고 있는데도 사치에 빠져있는 대통령의 부인. 국민들의 눈에 영부인이 곱게 비칠리 없었다. 막내 아들이 괴질로 숨졌을 때도 애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엄마가 심하게 매질해 죽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미세스 프레지던트'는 씀씀이가 워낙 커 나중엔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링컨 몰래 빌려 쓴 돈이 무려 2만7000 달러. 지금의 가치로 따지면 수백만 달러는 족히 넘을 것이다.

때로는 남편한테 귀동냥으로 들은 고급 정보를 기업에 팔아 넘겨 빚 갚는데 썼다. 믿기지는 않지만 군사기밀을 남부군에 제공했다는 의혹도 제기돼 의회가 조사를 벌이는 소동이 일어난 적도 있었다.

이처럼 백악관 안방마님 시절 돈에 눈이 멀었던 메리 링컨.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국민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미국 역사엔 부인의 등쌀에 못이겨 대통령이 된 사람도 있다. 한국의 어느 전직 대통령의 말처럼 '깜'도 안 됐지만 운좋게 백악관을 차지한 인물은 워런 하딩. 그의 아내 플로렌스는 비공식 타이틀이 '다치스'(Duchess) 곧 공작 부인이다. 꽤나 우아하게 살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딩이 재임했던 1920년대는 금주령 시대. 헌법조항이어서 어느 누구나 술을 마시면 중형으로 처벌되는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하딩 부부는 측근들과 함께 몰래 칵테일 파티를 즐겼다. "그놈의 헌법 때문에 맘 놓고 마실 수도 없네"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그러면서도 자신들을 '그저 소박한 사람들'(Just Plain Folks)이라고 치켜 세웠으니 국정이 문란해 질 수 밖에.

하딩은 뇌졸중으로 사망해 그의 대통령 재임기간은 2년 남짓. 그러나 주변인사들의 부정과 뇌물정치로 가장 부패한 정권이란 꼬리표가 붙게 됐다. 플로렌스는 남편이 숨지자 즉시 관련서류를 모두 불태워 없앴다. 백악관의 정경유착 스캔들이 드러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한국도 지난 정권시절 '퍼스트 패밀리'의 비리가 터져나와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그는 '미세스 프레지던트'였을까 아니면 '공작부인'이었을까. 워싱턴 부인처럼 '레이디 권양숙'으로 남아있었으면 존경을 받았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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