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노인들 약 남용 갈수록 심각, 하루 10여개 복용 '다반사'
약 소화 위해 소화제까지 먹기도
87세 김모 할아버지는 하루에 무려 20여 개의 약을 복용하고 있다. 위장, 피부, 천식, 신경통, 혈압, 전립선, 관절염, 콜레스테롤, 항우울제, 치매예방, 당뇨, 수면제, 진통제, 항생제 등등. 한 종류의 약도 몇 가지를 먹는다.
요즘엔 2개씩 먹던 전립선 약도 3개로 늘렸다. 관절염과 당뇨약도 2가지다. ‘약을 잘 소화하기 위해’ 소화제도 함께 복용한다. 여기에 비타민 등 몇가지 건강보조식품이 추가된다. “나만 그런가. 한국 노인네들은 다 그래.”
한인 노인들의 약 남용이 심각한 수준이다.
노인들은 1주일에 평균 60개에 달하는 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8개 꼴이다.
본지가 지난 달 20일부터 25일까지 LA지역 노인데이케어센터·노인아파트·노인교육센터 등 3곳에서 65세 이상 노인 100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들은 1주일에 평균 57개의 약을 복용했다. 1일 기준 8.1개를 먹는 셈이다.
설문은 하루 1개 이상 약을 먹고 있는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하루에 복용하는 약이 1~9개는 71명, 10~19개는 26명 그리고 20개 이상은 3명이었다. 최다 복용자는 하루 25개였으며, 응답자의 20%는 자신이 어떤 약을 복용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 같은 한인 노인들의 약 선호는 ‘닥터샤핑’이라는 기이한 현상마저 낳고 있다. 따로 주치의가 없는 메디케어 노인들은 약효가 있다고 소문난 약 이름을 적어와 의사에게 처방을 주문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병원을 계속 옮겨 다니는 것이다.
실제로 설문조사에서도 약 처방을 잘해주는 의사를 찾아 병원을 옮겼다는 응답자가 43%나 됐으며, 이들은 1일 평균 10.4개의 약을 복용하고 있어 전체 평균치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의사들은 웬만하면 약을 처방해주는 일이 빈번하다. 일부 의사는 노인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약 제공을 남발, 결국 노인들의 약 남용을 부추기는데 한몫을 한다는 비판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내과의는 “약을 요구하시길래 완곡히 거절했더니 ‘다시는 안온다’고 화를 내고 가셨다”며 “사실 메디케어 노인들은 병원의 주요한 수입원으로, 일부 의사는 약을 남발하면서 노인들의 발길을 붙잡아 ‘성공’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베벌리양로센터의 홍은정 디렉터는 “고령의 노인들은 인지력이 떨어져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먹는 일이 허다하다”며 “의사가 처방해 주니까 무조건 믿고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인트바나바 최병태 사회복지사는 “제도적으로 아무때나 편하게 약을 구입할 수 있는 메디케어 노인들 사이에서는 ‘약 유행’도 있다”며 “특정 약이나 약을 잘 주는 병원이 소문나면 자신의 증상과는 무관하게 ‘약 행렬’이 생긴다”고 말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보통 노인이 되면 약에 의존하기 마련이지만 물리적으로 많은 양을 먹거나, 한 증상에 3~5가지 약을 먹으면 간장과 신장에 무리를 줘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승우 기자 gowest@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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