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뷰 - 문명과 바다] '대항해 시대' 난쟁이<아시아>는 어떻게 거인<유럽> 삼켰나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때 중국이 애써 보여주려 했던 게 15세기 초 명나라 시절 정화(鄭和)가 이끌었던 대원정의 이미지였다.문명과 바다
주경철 지음, 산처럼
2만8000여명을 나눠 실은 300척 보물선단의 위용…. 당시 중국 문물의 세계 전파는 평화적인 성격이었다는 강조인데 그건 사실이 맞다. 하지만 3년 뒤인 1424년 명나라는 돌연 원양항해 일체를 금지시켰다.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른다. 느닷없이 쇄국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중국은 2500톤 규모의 선박 건조 자체를 금지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2500톤은 당시 유럽 배들의 10배 규모이고 18세기말 영국 해군의 가장 큰 전함의 3배다. '중국이라는 거인'이 잠시 쉴 무렵 '유럽 난쟁이들'의 약진이 시작됐다.
작은 나라 포르투칼.스페인이 한강 유람선(280톤)만한 배들을 인도양에 띄웠다. 그걸 15~18세기 대항해 시대의 개막이라고 하지만 출발은 우스웠다. 규모도 그렇지만 내용면에서 거의 해적 노릇이었다.
기존의 상업 네트워크를 빼앗거나 통행료를 챙기는 수준이었다. 후발주자 네덜란드.영국은 달랐다. 그들은 동인도회사 등 상관(商館) 설치에 바빴다. 유럽.아시아 혹은 아시아 각국 사이의 무역에 끼어 '낙전 수입'을 노린 것이다.
교실에서 배웠던 세계사와는 뉘앙스가 좀 다를 것이다. 조금 강하게 표현했지만 서울대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의 새 책 '문명과 바다'의 서술이 그렇다. 이 책은 지난 해 호평을 받았던 책 '대항해 시대'(서울대 출판부)의 축약판이다.
한국 학자가 쓰는 세계사 서술의 새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게 '대항해 시대'다. 서구 중심주의의 시선을 접고 균형 잡힌 비교사의 시도인데 이번 책은 훨씬 경쾌하다.
원고량을 절반 정도 솎아내고 컬러 도판을 집어넣어 교양서로 탈바꿈시켰다. 정보량을 줄이고 문장도 편안해졌지만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경계는 여전하다.
대항해시대가 끝난 19세기 초 중국.인도의 GDP 총생산은 전 세계의 50%. 2001년 현재 각국이 차지하는 비중(중국 12% 인도 5%)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인데 이는 식민지 수탈의 결과라는 암시를 책 서두에서 드러낸다.
대항해 시대 말에도 세계의 무게중심은 아시아가 쥐고 있었다. 지난 100~200년 주도권을 내줬을 뿐 지금은 권토중래 즉 '리오리엔트'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시각이 내내 유지되지만 영 궁금한 게 있다. 난쟁이가 거인을 어떻게 삼켰을까?
방대한 식민제국 건설은 본래 난쟁이의 꿈이 아니었다. 동인도회사 등 상관이 대륙의 등짝에 붙은 채 고혈을 빠는 것이 난쟁이들의 우선적인 관심이다. 1750년을 기점으로 확 바뀌었다. 해안 지역에 거점을 차렸던 상관들은 차츰 쐐기로 변해 내륙의 넓은 영토로 파고들어갔다.
정치적 이익을 확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항해 시대 직후 펼쳐진 19세기 식민지시대란 유럽이 아시아를 삼켰다기 보다는 아시아가 스스로 무너졌다는 게 이 책의 관점이다.
지금까지 역사서의 대부분은 육지 중심이었는데 이 책은 바다에 액센트를 찍는다. 막 열린 근대 해양세계의 리얼한 모습도 이 책이 아니면 접할 수 없는 정보다.
말도 아니게 폭력적인 선상의 기율과 최악의 먹을거리 태평양을 건너다가 절반 내지 3분의 2 정도의 선원이 죽는 것은 다반사이던 시절에 관한 묘사는 이 책이 풍속사. 생활사로도 괜찮음을 보여준다.
축약본이라는 형태는 다소 낯설다. 거의 유례없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밀도와 양에서 압도적인 전작(前作)이냐 읽어 내리기에 편안한 신작이냐? 독자들의 호불호가 다소 엇갈릴 전망이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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