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북 리뷰] 안개처럼 살아나는 기형도 열기

20주기 맞아 삶·문학 재조명 잇따라

빈 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시인 기형도(1960~89.사진)가 스물 아홉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뜬 지 7일로 만 20년이다.

밤 공기가 아직 차가운 3월 그는 서울 종로의 한 심야극장에서 곧 출간될 첫 시집 원고 뭉치와 함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일했던 그는 몇 줄짜리 기사를 쓸 때도 안절부절 못하는 심약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당대의 평론가 김현이 제목을 붙이고 해설한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문학적 성공'을 거뒀다.

1980년대 후반 문학 청년들은 낮에는 박노해의 노동시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다가도 밤이면 그의 시를 홀로 읽으며 위로받았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70년대 김지하 80년대 황지우.이성복 등을 잇는 90년대의 문학수업 커리큘럼이 됐다. 지금까지 24만 부가 팔려 대중적인 인기마저 얻고 있다.

'입 속의…'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른바 '요절 후광 효과'는 없는 것일까. 20주기를 맞아 기형도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하는 책 출간 추모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추모 문집 '정거장에서의 충고'(문학과지성사)는 '기형도 열광 현상'의 비밀을 엿볼 단서를 준다. 김행숙.심보선 등 젊은 시인과 평론가 함돈균.이광호 등이 좌담회.기고 등을 통해 90년대 이후 시에 미친 기형도의 영향 작품 세계 등을 따진다.

함돈균은 "('입 속의…'에서) 죽음과 떠돎의 이미지 신성한 것을 향한 갈망 허무의 표지들이 보인다"고 평한다. 시인의 눈에 비친 "세계는 몰락과 폐허"이고 따라서 시인은 "죽음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이 거짓 위안에 안주할 때 '세상은 지옥 같은 곳'이라고 솔직히 선언하는 시인의 윤리적 감수성은 독자들에게 위안을 준다. 시인의 '석연치 않은' 죽음도 대중의 호기심과 상념을 자극해 기형도 현상을 재촉했다.

하지만 김행숙은 "죽음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고 해서 시인이 죽음을 예감했고 시집의 진정성이 돋보인다고 평가하는 것은 낭만적 독법 샤머니즘적인 독법"이라며 경계한다.

시인들은 시집 속의 죽음은 육체적 죽음과는 거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심보선 시인은 "기형도의 시 세계는 생명 없는 사물들이 집적된 일종의 가상 세계"라고 평했다. 이런 세계에서는 죽음마저 아름답게 그려진다. 결국 시와 시인의 삶을 분리하거나 일치시키는 것 모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추모 행사도 이어졌다. 5일 오후 7시 홍대 앞 카페 '이리'에서 '기형도 문학 콘서트-기형도 시를 읽는 밤'이 6일 오후 7시에는 광명시민회관에서 '기형도 문학의 밤-어느 푸른 저녁의 노래'가 열렸다. KBS1TV도 '낭독의 발견'은 '영원한 청년 시인 기형도를 읽다'를 13일에 방송했다.

동료 가슴 속의 기형도…

밤새워 조사 하나까지 몇 번씩 손질…입버릇처럼 "선배, 있을 때 잘해줘"

기억은 살아남은 자의 특권이자 의무다.

생전에 시집 한 권 내지 못한 채 떠난 기형도의 삶은 순전히 남은 자들의 기억이 빚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20주기 기념 문집 '정거장에서의 충고'(문학과지성사) 제2부에 동료 문인들이 기형도와 얽힌 기억을 담았다.

거기에 다른 문인들이 남긴 기억을 덧붙여 인간 기형도의 모습을 그려본다.

연세대 재학 시절인 1983년 기형도는 학보 '연세춘추'에서 제정한 '윤동주 문학상'을 받았다.

상금으로 세계문학전집과 수동 타자기를 마련한 뒤 문우 성석제(소설가)에게 "너도 상금 받으면 먼저 책하고 타자기부터 사. 눈 딱 감고"라고 충고한다.

세계문학전집과 타자기 덕일까. 기형도는 졸업도 하기 전인 1984년 10월 중앙일보 기자로 취직하고 이듬해 1월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다.

기형도는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소주 대신 콜라를 시키기도 했지만 술자리는 즐겼다.

노래를 잘 해 술자리에서 절창을 뽑곤 했다.

주변 인물들의 캐리커처를 즉석에서 그려내는 재주도 있었다. 그렇게 밤 늦도록 문인들과 어울리다가도 한밤중 신문사로 돌아가 밤이 새도록 기사를 쓰곤 했다. 조사 하나까지 몇 번에 걸쳐 손질하는 꼼꼼함은 결벽증에 가까웠다.

"유쾌한 농담과 능청스러운 엄살과 재치 넘치는 수다로 주위를 환히 밝히던 그를 뇌리에서 지울 수 없다. 좀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아 절망 절망!' 이렇게 빠르게 말하는 그의 과장된 말투와 몸짓에서 음울한 그림자는 찾을 수 없었다."(문학평론가 이영준)

선배 기자였던 문학평론가 이경철에게 "선배 나 살아 있을 때 잘해줘"라 입버릇처럼 말하던 게 요절의 예고랄 수 있을까.

89년 3월 초 부친상을 당한 이문재 시인에게 문상 온 기형도는 "형 상복이 참 잘 어울리네요"라며 웃었다.

난감했지만 이문재 시인도 따라 웃었다. 그 며칠 뒤 기형도는 돌연 유명을 달리 한다.

질투나도록 시 잘 쓰던 동료를 잃은 슬픔에 문인들은 집단최면이라도 걸린 듯 장례식장에서 패싸움을 벌인다. 요절 시인의 신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신준봉·이경희 기자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