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커뮤니티서 배운다 -6] 글레데일 아르메니안 커뮤니티, 높은 정치관심 ‘파워 업’
중앙일보·중앙방송 공동 기획
80년대부터 교육환경 찾아 '탈 LA' 급증
교회만도 10여개…'문화·전통' 유지 노력
하지만 글렌데일 아르메니안 커뮤니티는 비즈니스가 밀집되어 있기 보다는 시 전체에 골고루 퍼져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아르메니안 커뮤니티의 한인회격인 ‘아르메니안 내셔날 커미티(ANC)’의 아다시스 카자키엔 디렉터는 “글렌데일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구석 구석 아르메니안 식당, 그로서리 스토어 등을 발견할 수 있다”며 “또한 글렌데일시로부터 지정된 구역도 없다”고 밝혔다.
글렌데일의 아르메니안 커뮤니티는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특히 최근에도 신규 이민자들의 유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카자키엔 디렉터의 설명이다.
아르메니안 커뮤니티의 이민사는 다른 소수 민족에 비해 빠르게 시작됐다. 1800년대 말 터키 제국의 폭정을 피해 미국을 비롯 이란 이스라엘 남아프리카 등으로 떠난 이민자들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후 두번의 큰 변화가 있었다.
1970년대 이란 회교혁명이 발생하면서 이란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안들의 1차 대규모 유입이 있었고 1990년대 소련이 붕괴되면서 2차 대규모 유입이 이루어졌다.
▷ 거주와 비즈니스 결합=글렌데일 아르메니안 커뮤니티의 특징은 '거주'가 기반이 된다. 아르메니안이 운영하는 비즈니스가 번창하기 보다는 거주 인구 위주로 커뮤니티가 형성됐다.
아르메니안 이민자들이 글렌데일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 당시만해도 글렌데일에는 아르메니안이 운영하는 그로서리 스토어는 2개였을 정도로 커뮤니티 발전이 미약했다.
하지만 이민자들이 경제적인 안정을 찾으며 글렌데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카자키엔 디렉터는 "아르메니안들도 한인들 못지 않게 교육열이 높다"며 "따라서 교육 환경이 LA보다 좋은 글렌데일로 이주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렌데일 남쪽의 아파트 밀집 지역에는 주로 중산층이나 저소득층이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북쪽의 싱글홈이 몰려 있는 지역에는 이민온지 오래됐거나 재정적으로 성공한 아르메니안들이 몰려있다.
또한 글렌데일에 아르메니안 이민자들의 유입이 늘어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교회다.
글렌데일에는 성메리 그리스정교 교회 등 아르메니안들을 위한 그리스정교 교회 10여개가 들어서 있다.
카자키엔 디렉터는 "아르메니안은 로마가 기독교를 믿기 이전에 이미 기독교를 믿기 시작한 민족"이라며 "아르메니안 이민자들에게 있어 교회는 큰 의미를 차지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글렌데일에 아르메니안 인구가 늘어나면서 곳곳에 아르메니안 식당 그로서리 스토어 카페트 가게 등 스몰 비즈니스도 형성이 됐다.
▷ 높은 정치 관심=아르메니안 커뮤니티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정치력이다.
지난 2007년 글렌데일 시의원 선거에서 밥 요세피엔 아라 나자리엔 라피 마노우키엔 등 3명의 아르메니안이 시의원으로 선출됐다. 글렌데일 시의원 5자리 중 3자리를 아르메니안이 차지한 것.
현재 글렌데일 시의회에는 밥 요세피엔 아라 나자리엔 의원이 남아있다.
하지만 오는 4월 글렌데일 시선거를 앞두고 3자리의 시의원을 위해 12명의 후보가 경합을 벌이고 있다. 이중 7명이 아르메니안이다.
통상 이같은 선거가 있으면 전체 투표자 중 절반 이상이 아르메니안들일 정도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다.
카자키엔 디렉터는 "아르메니안 커뮤니티가 정치력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며 "아르메니안 유권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시정부에서 커뮤니티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라고 강조했다.
▷ 뿌리의식 잊지 말자=긴 이민사와 글렌데일시에서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아르메니안 커뮤니티 역시 다른 커뮤니티와 마찬가지로 당면 과제가 있다.
바로 아르메니안의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고 알리는 것. 현재 아르메니안 커뮤니티는 글렌데일에 아르메니안 문화를 알릴 기념비 또는 공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미국정부에 터키제국이 약 1세기전 자행한 '아르메니안 대학살'을 알리는 것도 아르메니안 이민자들의 주요 과제다.
이를 위해 LA의 '리틀 아르메니아'에서는 매년 4월 24일 '아르메니안 대학살'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개최하고 있다.
이같은 과제 해결에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아르메니안 커뮤니티의 정치력이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치력이야 말로 커뮤니티 성장을 위한 큰 지원군이죠."
'유권자 절반이 아르메니안'…ANC 아다시스 카자키엔 디렉터
ANC의 아다시스 카자키엔 디렉터(사진)가 강조했다.
최근 글렌데일시에서 1999년 아르메니안 라피 마노우키안 후보가 시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빠르게 아르메니안 커뮤니티의 정치력이 신장되고 있다.
단순히 아르메니안계 시의원이 선출된 것이 아니다. 이들 아르메니안계 정치인들이 선출되는데는 커뮤니티 차원의 펀드레이징 캠페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높은 투표율이 뒷받침됐다.
오는 4월 글렌데일 시선거에서도 전체 등록된 유권자 2만~2만4000명 중 절반인 1만~1만1000명이 아르메니안일 정도로 투표 참여율이 높다는 것.
그는 "한인들과 마찬가지로 아르메니안 부모들은 자식들이 변호사나 의사 등 전문직종 종사자가 되길 바라지만 정작 자녀들이 정치에 뛰어들기 원하는 부모가 많지 않다"며 "하지만 이는 개인의 성공을 위해 좋을지는 몰라도 커뮤니티 성장을 위한 정치적인 힘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할리우드 '리틀 아르메니아'는…70년대 초반 초기 이민자 정착지
글렌데일에 앞서 아르메니안 커뮤니티가 형성된 곳이 바로 할리우드다. 지난 2000년 LA시는 남-북으로 산타모니카 불러바드와 할리우드 불러바드, 동-서로 버몬트 애비뉴와 101프리웨이를 ‘리틀 아르메니아’로 지정했다.
하지만 이 구역은 타이타운과도 일부 겹쳐져 있으며 ‘리틀 아르메니아’ 사인이 없다면 무심코 지나칠 정도로 아르메니안의 특색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리틀 아르메니아는 1970년대초 아르메니안 이민자들이 LA에 정착하면서 형성됐다. 당시 저렴한 렌트비로 아르메니안 이민자들이 크게 유입되며 아르메니안 커뮤니티가 번창했다.
지금도 일부 아르메니안 이민자들이 카페트 가게, 식당 등 스몰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다.
서기원 기자 kiwons@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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