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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워낭소리, 현대인이여 '잠깐 쉬었다 가소'

마흔 살 먹은 소·할아버지·할머니…모두가 느릿느릿
액션·스타도 없이 200만 관객 돌파 '이번엔 미국에서'

'워낭소리'에서는 모든 게 느리다. 여덟 살 때 침을 잘못 맞아 왼쪽 다리를 못쓰는 팔순의 최원균 할아버지는 느리다 못해 한 걸음 떼는 것도 힘겹다.

평균수명 15년을 3배 가까이 살고 있는 마흔 살 소도 걸음을 되새김질 하듯 느릿느릿 간다. 오죽하면 허리 굽은 이삼순 할머니가 답답해 우마차에서 내리겠는가.

카메라 워크도 느릿느릿 편집도 느릿느릿. 영화를 만든 회사마저 '스튜디오 느림보'다.

심지어 영화의 두 주인공은 말도 별로 하지 않는다. 마흔살 먹은 소야 말 할 턱이 없고 최 할아버지도 (거의) 말이 없다. 침묵하니 바람이나 비 소리가 들린다. 할머니의 신세타령과 고물 라디오에 나오는 쉰 목소리의 노래마저 없었다면 정말 '침묵의 소리'가 되었을 것이다.

현기증 나는 속도감과 귀를 찢는 사운드의 시대에 이 느릿느릿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한국에서 흥행 1위를 질주 300만 관객 돌파를 향하고 있다. 한국 영화사에는 다큐멘터리가 (거의) 없다. '워낭소리'는 작은 기적이다.

그 기적은 느린 걸음에서 나온다. 속도의 시대. 속도에 현기증을 느끼거나 속도를 따라가느라 헉헉 대거나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거나 너무 빨리 달리느라 옛날을 잊은 사람들 '워낭소리'의 느린 걸음에서 잠시 쉬어가지 않았을까.

이야기는 단출하다. 최 할아버지와 소는 30년 지기다. 할머니는 농약 치자고 이앙기 사자고 사료 먹이자고 투덜투덜 바가지를 입에 달고 살는데 할아버지는 '안돼!' 한 마디로 끝이다. 농약 치면 농약 묻은 꼴을 먹은 소가 죽으니까.

소와 할아버지의 우정엔 딱 한 번 위기가 온다. 추석 때 모여든 자식들의 성화에 할아버지가 소를 팔러간다. 소가 운다. 할아버지는 진심이었을까?

아닌 것 같다. 죽어도 500만원을 받아야 된다며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리는 걸 보면 애초에 팔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사람들한테 "술 취해 잠들었는데 소가 집까지 데려고 갔다"고 자랑까지 한다. 이 대목에서 할아버지가 가장 길게 말한다. "저 소 없었으면 난 죽었어. 우린 같은 날 죽을 거야. 소가 먼저 죽으면 내가 상주해야지."

소는 목숨이 1년도 남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머리도 발도 아프다. "아파!" 비명처럼 내뱉는다. 둘은 느릿느릿 황혼을 향해 걸어간다. 비틀비틀 꾸부정하지만 당당하게.

이들은 곧 헤어질 것이지만 헤어지는 것은 소와 할아버지 만은 아니다. '워낭소리'는 농경문화의 황혼에서 뿌리는 한 잔의 이별주다. 이젠 산골마을의 논에도 기계가 땅을 파고 모를 심고 가을걷이한다. 농사는 남겠지만 농경문화는 사라지고 있다.
이충렬 감독은 우리를 키운 소와 아버지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라고 쓴다. 헌사가 끝난 여백에는 더 많은 말들을 적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키운 농경문화에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세요. 이제 가면 다시 오지 않을 테니까. 지금이 아니면 한 줄기 눈물로 작별할 수도 없을 테니까.'
'워낭소리'엔 현란한 테크닉도 액션도 스타도 없다. 하지만 사람이 있다. 목숨과 목숨의 관계가 있다. 감독은 소와 할아버지의 관계 속에 농경문화가 있다고 본다. 아침보다 더 빛나는 황혼 속으로 농경문화는 코뚜레를 풀고 워낭을 떼고 떠난다. 영화는 끝나고 홀로 남겨진 듯 갑자기 외로움이 몰려온다.
한인타운 유일, 한인을 위한 문화공간
Mpark 4


▷문의: (213)384-7080
▷주소: 3240 Wilshire blvd., 3rd Fl. LA, CA90010
안유회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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