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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론] 국유화, 마지막 대안

조동호/퀸즈칼리지교수

쉬쉬하고 입밖에 내기 꺼리던 단어가 마침내 누구나 말하는 화제로 되었다. 부실은행 국유화 불가피론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18일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은행 의장은 “남은 대안 중 국유화가 그래도 가장 덜 나쁜 대안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융권의 “빠르고 반듯한 재편을 위해서는 일부 은행의 일시 국유화 조치가 필요할 지 모른다”며 “100년에 한 차례씩은 이런 일을 치르는 법”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소속 린시 그레이엄 사우스 캐롤라이나 상원의원도 막대한 공적 자금투입에도 도통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금융권에 또 돈을 퍼부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만약 국유화가 유효한 방안이라면 해야 한다”며 금기의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지금은 말을 가지고 이념 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라며 “일본의 실수를 되풀이해선 안된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거대금융기관 상당수가 사실상 파산 상태(insolvent)란 게 사심없는 경제학자들의 지적이다. 사망선고만 안했을 뿐 시체나 다름없다는 거다. 총 1조 달러가 넘는 공적자금도 별 효능이 없었다. 마냥 기다릴 수 있는 오바마 대통령 스스로도 부족함을 인정한 경기부양책이 그나마 효과를 내려면 금융정상화는 필수조건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선 현실을 직시하는 게 문제해결의 시작이다. 문제 은행들이 일단 장부를 열어 자산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살릴 수 있는 것은 살려 재출발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이들 경제학자들의 한결 같은 처방이다. 이런 일은 금융위기를 불러온 기존 경영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독립성 있고 실질적 대주주인 정부가 할 일이다.

그러나 영구 국유화가 아니라 일단 정부가 부실은행을 정리 개편해 다시 민영화하는 한시적 정부관리라도 반발이 만만치 않을 터이다. 우선 오바마 정권 내부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금융계 경영진들과 주주들이 경영실책과 거기에 따른 당연한 손실을 보너스 지급중단이나 1달러 연봉 등 면피용 미봉책을 넘어 온전히 수용할리 없다. 경제난이 깊은데도 놀라울 정도로 현실감이 희박한 공화당 의원들의 원리주의적 반발도 여전할 것이다. 국유화를 유럽의 멍청이짓으로 보아온 인식의 벽도 여전하다.

그러나 정치나 이념 이전에 새로운 현실이 새로운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른바 최신 금융기법으로 천문학적 수익을 올리던 시절은 분명히 갔다. 적어도 앞으로 수십년 동안 그런 수지맞던 시절은 다시올 성 싶지 않다. 끝없이 커질 것 같던 자산 가치의 거품이 꺼지고 더불어 크고 작은 숱한 아메리칸 드림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빚잔치로 흥청거리던 거리는 폐가가 즐비하고 달콤한 꿈은 환멸과 분노와 불안으로 바뀌었다.

지난 시대를 사람들은 흔히 자유방임 자본주의 시대, 신자유주의 시대라고들 부른다. 그러나 시장의 자율성 운운은 실제로는 천하의 지배자(the rulers of the universe)인 금융 카르텔이 정부와 의회의 힘을 빌어 아무 규제 없이 사리사욕을 채우자는 것이었을 뿐 시장의 슬기로운 최적 자원 배분을 통해 전체 경제를 향상시키자는 것은 아니었음이 이제 드러났다.

그들은 월스트리트만이 아니라 워싱턴도 지배했다. 골드만삭스와 재부무, 연방준비은행, 금융거래위원회, 국회는 문자 그대로 한 식구였다. 길게 보는 역사가들은 이 시대를 제2의 강도-귀족 시대(the Second Age of Robber-Barron)라고 부른다.

제1의 강도-귀족 시대를 청산하는 것은 역시 대공황 시기의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였다. 그는 재선 취임연설에서 “아메리카 문명의 높은 권좌에서 환전상들을 쫒아내자”고 일갈했다. 부실은행 한시적 정부관리의 목표는 금융부문을 살리되, 경제 전반의 윤활유라는 그 본연의 기능을 책임있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도록 개편하는 동시에 민주주의를 금권정치로부터 자유케 하는 것이다. 오마바에게 찾아온 변화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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