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칼럼] '낙타' 를 닮은 김 추기경
이경민/경제부 기자
대단한 힘이 아닐 수 없다. 진정한 '수퍼스타'의 위력이라고나 할까. 세상을 떠나서도 대중에게 끝없는 사랑을 받으며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위대한 일이다. 물론 금전적 수익만으로 그 사람의 영향력과 위대함을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여기 또 한 명의 수퍼스타가 있다. 지난 월요일 선종하신 고 김수환 추기경. 평생을 낮고 가난하게 사셨던 그 분 이야기를 몇 천만 달러 '돈' 운운하며 시작했다는 것이 퍽 불경스럽다.
하지만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 세상 그 무엇보다 값진 많은 것을 남겨신 그 분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수퍼스타가 아니었을까 싶다.
한국시간으로 20일 장례 미사가 거행될 때까지 그 분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명동 성당을 찾았던 인파가 총 38만7420여명. 5~6시간을 추위 속에 떨며 기다려야 했지만 새치기와 짜증 한 번 없이 경건하고도 평화로운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한다.
많은 한국의 언론들이 말했듯 그것은 '기적' 그 자체였다.
남가주에서도 그랬다. 평생 고인을 먼 발치에서조차 본 적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각 성당마다 쉼 없는 연도 소리가 울려퍼졌다.
한국 장례 일정에 맞춰 20여명의 사제단과 1000여명의 한인 가톨릭 신자들이 참례한 추모 미사도 거행됐다. 많은 이들이 연신 눈물을 훔치며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를 되새겼다.
성당 밖 한인 사회 곳곳에서도 그 분의 선종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수퍼스타의 진정한 힘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가톨릭이란 종교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연일 관련 기사들이 보도되며 가톨릭 성직 제도와 전례 등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도가 확연히 높아졌다.
김수환 추기경을 본받은 장기 기증 서약자가 늘어났고 존엄사에 대한 인식도 좋아졌다. 종교의 경계를 넘어선 거룩한 화합의 장이 펼쳐졌다. 그 어느 단체가 수백.수천억을 들여서도 해내지 못한 일들이다.
그 뿐인가. 사람들 마음 속엔 돈으로 환산조차 할 수 없는 가치들이 싹텄다. 김 추기경의 선종을 통해 그 분께서 살아오신 가난한 삶 용감한 삶 겸손한 삶을 흠모하며 '나 또한 그렇게 살아보자' 결심한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 모든 것이야말로 김수환 추기경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가장 큰 마지막 선물'이라는 한 신자 분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누군가는 김수환 추기경이 낙타를 닮았다 했다. 행인들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고 끝없는 사막을 걷다 죽어서는 그 가죽까지 사람에게 내어주는 선한 눈의 낙타.
시대의 짐을 의연히 지고 걸어가시며 마지막 가시는 길엔 두 눈까지 내어 주신 모습이 과연 '사막의 수퍼스타'인 낙타를 많이도 닮았다.
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이 시대의 수퍼스타. 참 아름답게 사셨고 참 곱게 가셨다. 진정으로 값진 삶을 사셨고 그만큼 값진 죽음을 보여주셨다. 마치 서른 세 해의 짧았던 삶을 가장 값지게 살고 값지게 바치셨던 나자렛 마을 출신 그 어느 분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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