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표한 구제안 명암, 금융 회생에 '도덕적 잣대' 는 곤란
금융 특권층 혐오감 보다는 우선 경기침체 탈피가 급해
은행과 투자자들은 금융공학으로 탄생한 기발한 상품들의 리스크를 오판하고 과도하게 투자했다가 모든 리스크에 의해 상처를 입고는 이제 그 리스크를 피하려 한다. 그 결과는 너무나 역설적이다.
금융사들이 리스크를 최소화하려고 경제 살리기에 필요한 대출을 거부면서 더 넓은 경제에 리스크를 증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악순환의 시작
이것이 악순환을 일으킨다. 그 과정은 이렇다. 경제가 약해지면 더 많은 대출금과 채권의 부도가 빈번해진다.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의 다이앤 바자는 영세업체가 발행한 ‘고수익·고위험’ 회사채의 부도율이 2009년엔 거의 14%에 이르리라고 전망한다. 2년 전만 해도 1%에 불과했다.
손실이 늘어나면서 투자자들과 채권자들이 더욱 리스크를 회피한다. 그들은 자본을 보존하기 위해 투자를 더욱 축소한다. 그 결과는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개도국으로 들어가는 자금흐름이 크게 줄었다. 국제금융연합회(IIF)에 따르면 2009년에는 그 흐름이 2007년 수준에서 82%가 줄어들 전망이다.
브라질·인도·멕시코 등 개도국 기업들은 2009년 상반기 만기 도래 부채가 1000억 달러에 이른다. IIF는 이 부채 대부분이 연장되지 않으리라고 본다. 신용 결핍은 성장 둔화와 침체를 가져오고 그것이 세계적인 불황을 심화한다. 그래서 세계 경제는 신용과잉에서 신용부족으로 급선회했다. 놀랍게도 은행이 주된 문제가 아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미국 전체의 은행 신용이 9조9500억 달러였다. 1년 전보다 8% 늘어났다. 기업 대부, 소비자 대부, 부동산 대부 모두 증가했다. 10월에 비해선 4.7% 떨어졌지만 소비자들이 적게 대출하고 은행이 대부 기준을 강화하는 불황기치고는 하락폭이 크지 않다.
◇증권시장의 붕괴
실질적인 붕괴는 증권 시장에서 일어났다. 1980년대 이래 부채의 다수(주택모기지, 자동차 담보 대출, 신용카드 부채)가 ‘증권화’된 채권으로 연금 펀드, 뮤추얼 펀드, 은행 등에 팔렸다. 이 부분에서 신용 흐름이 사실상 중단됐다고 신용조사업체 톰슨 파이낸셜이 지적했다.
2007년 미국의 증권화된 자동차 담보 대출은 730억 달러였다(2008년엔 360억 달러). 2007년 미국 의 증권화된 상업용 부동산 모기지는 2460억 달러였다(2008년엔 160억 달러).
주택 모기지, 소비자 대출 등 다른 증권화 채권도 크게 줄어들었다. 이전의 느슨한 모기지 대출을 감안하면 일부 축소는 불가피하고 또 바람직했다.
그러나 주택 ‘거품’에 대한 합당한 반응으로 시작된 것이 광범위한 증권화 대출에 대한 거부로 변한 게 문제다. 채권자들은 겁을 잔뜩 집어먹고 ‘안전한’ 미국 국채에 몰렸다. 이런 채권은 금리가 낮기 때문에(1년짜리는 0.5%, 10년짜리는 3%) 아주 편리한 리스크 회피 수단이 된다.
증권화의 후퇴가 남긴 공백은 어떻게든 채워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용 흐름이 계속 빈사 상태로 남는다.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증권화가 자발적으로 되살아난다. 투자자들이 다시 모기지 등의 채권을 매입하는 형태다. 둘째, 금융사들이 증권화를 대체한다. 셋째, 정부가 민간 대출을 떠안는다. 지금까지는 셋째가 주를 이뤘다.
◇경기침체 탈출의 열쇠
지난해 9월 연방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인수한 것은 이제 그들이 신규 모기지 전체의 약 4분의 3을 제공한다는 의미다(2007년엔 약 절반). 재무부와 FRB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모기지, 학자금 대출, 중소기업 대출, 심지어 외국 정부에도 자금을 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부자 역할을 영구히 확장하면 실용적인 면과 철학적인 면에서 문제가 생긴다. 대부 결정이 정치화되고, 정부 부채가 늘어나며,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 위험이 있다.
전임자 부시 대통령이 제안한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TARP)는 민간 신용 시스템 복구에 초점을 맞췄다.
시나리오는 이랬다. 재무부가 은행의 부실채권을 어느 정도 사들인다. 그래서 힘을 얻은 은행들이 대출을 늘리고 증권화 부문에서 생긴 손실의 일부를 상쇄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부시의 정책이 실패했다.
재무부가 노선을 바꿨기 때문이다. 은행들의 부실 채권에 가격을 매기기가 너무 어렵다고 판단해 직접 자금을 수혈했다. 불행히도 은행들은 대출을 계속 꺼린다. 장부에 부실 채권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이제 오바마 정부는 대출을 되살리기 위한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진짜 어려운 문제다. 오바마 제안은 치열한 논쟁을 불러올 것이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 비용이 너무 높거나 낮지 않나? 지원을 받는 은행들에 어떤 조건을 부과해야 하나? 그러나 그 논의가 월스트리트와 은행들이 구제 받을 자격이 있느냐를 따지는 도덕적 논쟁으로 변질돼선 안 된다.
그들을 동네북으로 만드는 것이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만족감을 줄지 모른다. 그러나 요점에서 벗어난 얘기다. 금융 부문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경제는 침체를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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