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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의 현대건설 60년 영욕-41] '주동자 처벌 제발 한국에 맡겨달라'

유양수 대사 구속된 5명 석방시키려 동분서주
훈방뒤 조기출국…한-사우디 가까워지는 계기

검은 황금이 분출하는 거대한 나라 사우디를 놀라게 했던 현대건설의 주베일 대 폭동사건은 사우디 비밀경찰이 겨누고 있던 총구를 스스로 거두고 근로자들이 불타던 소요 현장을 스스로 정리하면서 질서정연하게 현장으로 떠나는 순간 수습의 길로 들어섰다고 보았다.

그러나 동료 5명이 구속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근로자들은 반사적으로 속았다는 기분으로 반전되는 분위기. 유양수 대사는 다시 수습해야 할 과제를 안고 뛰어야 했다.

- 구속자가 있었다는 것을 처음에는 대사관에서도 몰랐다는데 그만큼 정보에 어둡거나 양국이 근로자 신원문제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얘기 아닙니까.

"공사를 진행하는 업체에서 모든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었지요. 그때만 해도 수천 명씩 데리고 갔으니까 개인들이 독자적으로 취업비자를 받고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런 사항까지 논의할 수 있는 건설시장이 아니었다고요. 중동 진출 초기 아닙니까. 사우디가 인력을 수입하는 그런 입장이 아니었거든요. 그리고 구속자는 없었어요."

- 구속자가 없었다니요. 사우디 정보 당국이 적발한 주동자 20명 중에 5명이 구속되지 않았습니까?

"처음 특별위원회에 구속된 거는 조사를 해야 하니까 일시 구속을 시킨 거지요. 재판을 받아서 구속된 게 아니고.

물론 그것도 잘못되면 법정에 서야 되고 중형을 받을 텐데 그걸 면하게 하려고 정신 없이 쫓아다니고 동부지구의 주지사가 왕자인데 그 사람한테 부탁을 하고 내부치안이니까 내무차관 만나서 부탁하고 황태자한테 부탁하고.

제발 이 문제는 용서해 달라 확대하지 말아 달라 관련자 문제는 한국 정부에 일임해 달라 사우디의 경제발전을 위해 이역만리까지 왔는데 사우디 법도 알지 못했지만 우발적인 사건 아니냐 전부 반성하고 곧바로 현장으로 돌아가는 걸 보지 않았느냐 정말 속 태우면서 교섭을 했어요.

정식으로 구속되면 진짜 큰일 납니다. 도둑질만 해도 사우디 율법에 따라 양손이 잘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걸 교섭하느라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은 다 만나고….

처음엔 상당히 강경하게 나왔어요. 집단 소요는 사우디 국법에서 일절 금지 돼 있고 사건이 워낙 크다 사우디가 조사를 해서 응분의 처벌을 할 수밖에 없다 이래 나왔다고요.

더구나 76년 12월 독일 회사가 터키 사람들을 고용해 일하다가 터키 사람들이 스트라이크를 일으킨 적이 있었거든요. 전부 추방당하고 벌금도 내고 그랬는데 현대는 더 엄청나다 이거죠. 할 말이 없죠. 그랬지만 결국 전부 우리한테 넘겨줬어요. 일단 구속한 사람도 내주고."

- 형을 산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까?

"없습니다. 다행히 훈방을 해줬고 다만 교섭하면서 관련자들을 한국 정부에 맡겨달라고 했기 때문에 몇 사람이 조기 출국은 했죠. 그땐 정보부에서도 나와 있었던 만큼 본부 훈령에 따라 처리를 했을 겁니다."

- 근로조건 협상은 순조로웠습니까?

"그 문제는 조건이 많아서 긴장을 좀 했는데 근로자 대표가 내놓은 조건이 20여 가지예요. 그걸 16가지로 합의를 보는데 참 어려웠습니다. 내가 근로자 입장이 돼서 해결을 하겠다고는 했지 현대는 현대대로 입장이 있지 양측이 워낙 팽팽했고 더구나 근로자들은 그동안 쌓인 불만이 있으니까 상당히 옥신각신했지만 결국 원만하게 타결이 됐어요.

보너스 600%를 달라 인간대접을 해 달라 지금 노사분규하고 똑같습니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전부 열이 올라 험악한 분위기도 나오고 그랬는데 정 회장은 열흘쯤 뒤에야 협상장에 얼굴을 보였다고요.

내가 막 화를 냈어요. 그랬더니 '다 보고 받고 있어요. 얼굴마담이 손님방에 들어가면 흥정이 깨지잖아요?'이러면서 웃잖아요 나 참. 허허. 하여간 정 회장도 될 수 있으면 모든 걸 들어주겠다는 자세로 나왔어요.

그렇게 큰 일이 벌어졌는데 어떡하든 공사는 예정대로 마무리를 잘해야 되지 않겠어요. 그때만 해도 근로자들이 참 순박했죠. 머리에 뻘건 띠를 두른 것도 아니고."

소요 사태 수습 후 보름을 넘기지 않고 모든 것이 매듭지어졌다. 그러나 중앙정보부라는 곳이 살아있었을 때니까 주동자 문제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조기 출국자가 있었다는 것이 처벌을 의미했다. 그리고 사우디 정부도 주동자들을 한국 정부가 조속히 귀국시키는 것을 확인하면서 신뢰를 가졌을 것이다. 유 대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진노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고요. 그러니 자기들이 처벌하지 않아도 적절히 처리할 거라고 믿었을 겁니다. 무엇보다 주동자를 한국에 일임한 것은 양국 사이를 가깝게 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했을 거라고요. 그건 외교적으로나 양국 국민들이 느끼게 되는 정서적인 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사우디가 아량을 베풀었다는 걸 보여준 셈 아닙니까? 실제로 사우디 국민성은 상대를 배려하는데 인색하지가 않아요. 한 가지 대표적인 걸로 얘기를 하자면 잘되든 못되든 '인샬라'라고 합니다. 신의 뜻이다 이거지요. 그래서 거절하기 거북한 일이 있어도 '인샬라' 해버린다고요.

잘 돼도 '인샬라'라고 해요. 그게 국민성이고 문화죠. 상대방이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노'라고 못합니다. 그건 상대방 인격을 정면으로 모독하고 면박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노'대신 '인샬라'라고 하는 거지요. 소요사태 후속조치도 그런 배려와 아량이 있었기 때문에 원만하게 해결됐다고 봅니다."〈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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