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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의 현대건설 60년 영욕-39] 박대통령 폭동소식 듣고 진노

'주동자들이 몇놈이야! 원인은 뭐야!'
김재규 정보부장 불려가 크게 혼쭐

박정희 대통령의 진노는 하늘을 찌를 것 같았다. 사태의 심각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 즉각 김재규 정보부장이 호출되고 마침 그는 현대건설이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수주할 때 건설부 장관이었기 때문에 더 혼쭐이 나는 것이다.

"주동자들이 몇 놈이야! 그런 놈들을 신원 분석도 하지 않고 내보냈다는 것이야? 폭동 원인이 뭐야! 정부가 총동원되다시피 해서 그토록 중동시장을 어렵게 확보해 놓고 과실도 따보기 전에 허물겠다는 건가! 사우디에 누가 나가 있어! 원만히 수습하지 못하면 각오하시오!"

유양수 대사가 본부로부터 긴급 훈령을 받고 사후에 전하는 회고는 이보다 더 심한 내용까지 담고 있었다. 핫라인을 통해 날아온 김재규 중정부장의 목소리는 살기를 느낄 정도라고도 했다. 더구나 이무렵에는 건국 후 박 대통령이 처음으로 중동 방문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 어른이 중동을 방문한다는 계획까지 추진하고 있었다고요. 생각을 해보세요 70년대에 국가원수의 중동지역 방문이라는 건 정말 특별한 외교 현안이 없으면 스케줄을 잡지 않습니다.

2차 오일쇼크 때도 엄청난 국가적 위기 아니었어요? 그때도 최규하 총리가 나갔잖아요. 더구나 이건 내가 직접 박 대통령한테 들은 얘기인데 박 대통령이 68년인가 해외 나가신 후 일절 움직이지 않았다고요.

그래서 한번은 해외에 나가시자고 했더니 단번에 '우리가 해외를 도와줄 입장이 될 때까지 난 안 나가!' 딱 잘라 끊었어요. 그랬는데 중동 방문을 추진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속된 말로 조르다시피 하기도 했지만 '이젠 근 10만 근로자들이 나가 있는데 각하께서 격려를 해주셔야 합니다' 부탁을 드렸더니 이 어른이 중동에서 뭔가 큰 것을 얻어야 겠다는 강력한 뜻이 있었어요.

그건 어떻게든지 중동을 지원해서 국가적으로 큰 경제적 이득을 얻어야겠다 뿐만 아니라 중동 진출을 확대하면서 이북과 외교적인 밸런스를 뒤집어야겠다 그런 의욕을 갖고 계신거예요. 정상외교라는 게 그런 겁니다. '나가지!' 그러시더라고요. 대단한 각오를 하신 겁니다.

그래가지고 예정대로라면 주베일 산업항 공사 완공이 79년 12월까지로 돼 있었지만 정주영 회장이 그 전에 반드시 끝낸다고 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완공에 맞춰 79년 12월 8일부터 3박 4일로 사우디를 방문하고 그 후 쿠웨이트를 방문한다는 스케줄까지 나왔어요.

그게 너무 안타깝게 10.26사건으로 무산됐지만 어쨌든 대규모 폭동사건이 터졌으니 박 대통령 심정이 어땠겠어요.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은 비상대책반까지 만들어 24시간 근무했던 것도 그때가 처음일 겁니다."

정보부장만 호출을 당한 게 아니었다. 정주영 회장도 불려가 호되게 당했다고 했다.

정회장은 주베일 현장에서 현대건설 지휘본부가 있는 '알코바'까지 110km밖에 되지 않는데도 극심한 소요 사태가 일어날 때까지 뭣 했느냐고 혼나고 심지어 알코바에서 현대건설 본사로 위성전화가 되고 있었다는 걸 박 대통령이 알고 있더라면서 그것 때문에 더 혼이 났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워낙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손바닥 보듯이 보고 있더라는 얘기였다.

"우리 대사관보다도 더 좋은 여건에서 수시로 보고를 받는 위성전화까지 설치해놓고 있었으면서 그런 일이 일어날 때까지 정 회장은 뭣 하고 있었다는 거요! 아 이렇게 호통을 치시는데 내가 빠져나갈 구멍이 있어? 숨도 크게 못 쉬고 그저 죄송하다고 최대한 신속히 수습하겠다고 그런 말씀밖에.

그러면서 속으로 빨리 현장 가라는 말씀만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당장 날아가라고 당장! 이러시잖아. 얼른 나오는 거지 재떨이 안 날아온 것만도 많이 봐주신 거야 하하항. 야… 그렇게 화를 내시는 건 첨이었던 것 같아."

- 현지 대사관에서는 전화 때문에 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업무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위성전화가 현대에 설치돼 있었다니 너무 뜻밖인데 그게 사우디 보안 당국에 걸리지 않았습니까?

"그걸 전갑원이가 한 짓이야 하하항. 그게 원칙은 배에 설치를 하는 거래요. 그것도 주베일 항에 띄워놓은 배에 설치를 해서 본사하고 공사에 필요한 긴급사항이 있을 때 인공위성을 통해 연결하는 걸로 돼있었는데 그쪽(사우디)도 위성을 연결해주는 본부 담당이 있을거 아니에요?

그 친구를 구워삶아서 제한적으로 하겠다 해놓고는 전갑원이가 지휘본부 설계를 하면서 배에 설치할 장비를 숨겨가지고 지휘본부 숙소 안에 다 삭 해놓은 거야. 서류상은 배에 있는걸로 해놓고 실제 장비는 싹 돌린 거지. 그걸 우리 정보부가 어떻게 알았는지 박 대통령이 알아가지고 내가 혼이 났잖아 하하항."

현장 상황은 아비규환. 200대가 넘는 트럭이 담을 치듯 외부인사 출입을 차단시켰고 일부 차량은 불길이 치솟았다. 불을 보면 흥분의 정도는 더 심해진다. 모든 근로자가 모여 중역 나오라 외치고 대사 오라고 소리쳤다.

이미 저만큼 외곽은 사우디 비밀경찰이 기관총을 걸어놓고 포위하고 있었다. 근로자들은 쏠 테면 쏘라는 듯이 자기들끼리 뭉쳐 있었지만 그럴수록 공포감은 더했고 떨고 있는 근로자들도 분명 많았다.

더구나 3월의 밤은 매우 춥다. 기름을 쏟아 부어 모닥불을 피워 놔도 추워서 모피를 둘러싸고 있기도 했다. 우는 근로자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양수 대사가 미 군용기로 활주로에 도착한 것이 새벽 2시30분. 해군사령관 시장 서장 COE사령관 비밀경찰 사령관 주베일 지역사령관 방위군 사령관 정보국장까지 3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고 한국 정부를 대신하는 대사가 도착했으니 즉각 작전에 들어가겠다는 것이 그들의 강경한 입장 표명이었다.〈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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