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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단체-Then&Now (2)] 한인의류협회, 4·29폭동때 똘똘 뭉쳐 한인상권 보호

'키머니 분쟁'땐 앞장서서 건물주에 대항
아르헨·브라질·한국과 '섬유 네트워크'도

1977년 한인의류업체 탑스타일과 이본오브캘리포니아가 다운타운에 처음 입성한 이래 30년 넘게 남미 및 주류 시장에서 벌어들인 자본이 한인상권 성장의 밑거름이 됐기 때문이다. LA한인의류업계의 성장과 함께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한인의류협회(이하 의류협)다.

현재 800여개의 회원사가 등록돼 있는 의류협은 각종 정보제공 골프대회 등을 통한 회원사들간의 친목도모 비즈니스 사고시 공동 대처 등 다양한 업무를 통해 한인의류업계의 성장을 20년간 '묵묵히' 도와왔다.올해 5월1일이면 의류협 설립 20주년을 맞는다.

70년대말 한인의류상권이 태동하며 82년 매직패션(사장 이경용) 라칼러스(사장 정홍섭) 엠파이어(사장 표경만) 등 20여개 업체가 모여 친목모임을 가진 것이 의류협의 첫 걸음이었다.

1989년 김인 초대회장을 주축으로 모임이 형성돼 발족한 것이 현 한인의류협회의 전신인 한인의류도매인협회였다. 당시만 해도 제조업체보다는 중간도매업체가 주를 이뤘기 때문. 당시 한인의류업체 수는 120여개. 1993년 협회 명칭을 '한인의류협회'로 변경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업계의 대변인=지난 20년간 의류협은 한인의류업계의 이익을 대변해왔다.

1992년(회장 안영복) 4.29폭동이 일어났을 때 협회를 중심으로 폭동 소요대책을 마련하고 회원사들이 협력해 당시 의류상권을 보호했다.

의류협회는 폭동을 겪고 다음해인 93년(회장 김인호)에는 자체 방범 실시를 시작했고 94년(회장 주영기)에는 사설 방범업체 베스트 시큐리티를 선정해 다운타운의 치안을 맡겼다.

1996년(회장 잔 서)부터는 연방노동청과 함께 노동법 세미나를 주최 지금도 매년 2~3회씩 세미나를 개최해 회원사들의 피해를 방지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다운타운 의류상권의 주요 고객들이었던 남미 특히 멕시코의 페소화 가치가 폭락하며 남미 바이어들의 발걸음이 줄기 시작했다.

이같은 흐름에 맞춰 의류협회는 98년(회장 한계환) 99년(회장 강용대) 2년에 걸쳐 주류 패션쇼 및 트레이드쇼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현재 한인의류업계에도 잘 알려져 있는 라스베이거스 매직쇼도 이때부터 한인의류업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며 LA다운타운 의류상권에서 키머니 분쟁이 불거졌다.

이에 따라 2000년(회장 신남호)에는 일부 회원사들이 키머니 요구에 대해 건물주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협회에서 공동대처하기도 했다. 결국 건물주가 키머니 요구를 철회했다.

이후 주류 정치인들을 만나 꾸준하게 키머니와 하청업체들의 노동법 위반 벌금이 원청업체인 의류업체에 부과되는 AB633법의 부당함을 적극 홍보하기도 했다.

2005년(회장 최대호)에는 한국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리는 '제4차 한상대회 섬유 특화전'에 협회차원에서 참석 미국의 LA 아르헨티나 브라질 한국의 의류 및 섬유업계 관계자들간 네트워크를 확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지금도 매년 10월 의류협은 한상대회에 참가 세계 한인의류업계 관계자들과 네트워크를 쌓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중국이 WTO에 가입하며 중국과의 무역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노동집약적인 의류업계의 특성 때문에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으로 진출하는 한인의류업체들도 빠르게 늘어갔다.

의류협회는 2007년(회장 명원식)부터 해외 방문 프로그램을 도입해 회원사들이 해외 의류 설비를 직접 두눈으로 견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2007년 5월에는 15개 회원사들과 함께 중국 광주 상해 항주를 방문 의류제조업체 시설을 방문했으며 2008년 3월에는 12개 회원사들이 북한 개성공단을 둘러봤다.

▷커뮤니티 봉사=지난 20년간 한인의류협회의 역할은 단순히 회원사들의 이익 대변만이 아니었다. 커뮤니티 등 각종 봉사 활동에 회원사들과 함께 참여함으로써 한인의류업계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1994년(회장 주영기) 노스리지 지진 당시 의류협회는 회원사들과 함께 피해지역에 의류 100상자 정도를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2004년에는 북한 평안북도에서 열차충돌로 인해 발생한 대규모 폭발사고인 용천역 참사 피해를 돕기 위해 회원사들이 성금을 걷어 1만5000달러의 성금을 지원했다.

2005년에는 주류사회에서 주최한 '사랑의 옷짓기' 행사에 털실을 대량 기부하기도 했다. 이 행사를 통해 노인아파트에 살고 있는 노인들이 직접 짠 털실로 옷 목도리 등을 미혼모들의 자녀나 고아원에 전달했다.

한편 2008년부터 경제가 급속도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한인의류업계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류협회는 올 한해 보다 발빠른 정보와 해외 방문 프로그램을 통해 활로 모색을 돕는다는 계획이다.

윤천욱 현 회장은 "젊은 의류인을 대거 영입해 경험과 패기가 조화를 이루는 단체로 거듭나 한인의류업계의 이익을 대변하겠다"고 말했다.

서기원 기자 kiwons@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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