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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김영옥 연구소'

박용필/고문

때로는 한 편의 영화가 세상 사람들의 편견을 바로 잡아주기도 한다. '끝장 내자'(Go for Broke!)가 그런 경우다. 아시아계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만들어 이 영화를 인종간의 화합에 기여한 고전으로 꼽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주류사회가 동양계를 '소수계의 모델 커뮤니티'로 인정하는 데 큰 몫을 했다는 평가도 나올 정도다.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 갓 임관한 백인 소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첫 장면은 미시시피의 캠프 셸비 훈련소. 연병장에 모인 신병들을 보는 순간 장교는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이럴 수가. 전원이 일본계 2세 이른바 '니세이'들이 아닌가. 중서부의 전형적인 백인마을에서 자란 소위는 동양계를 생전 처음 본 것이다. 일본을 상대로 싸워야 할 병사들이 일본계라니…. 적개심과 인종적 우월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저주의 굿판까지 벌인다.

얼마 후 신참 소위는 일본계 병사들과 함께 유럽전선으로 떠난다. 혈전을 거듭하며 점차 '니세이'들과 형제애를 느끼게 되는 주인공. 동료 장교들이 일본계 병사들을 '잽'(Jap)이라고 비아냥대면 주먹다짐도 불사할 만큼 '니세이'화 돼 간다. 심지어 타부대 전출을 명령받자 이를 거부 직속 상관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

그가 속한 부대가 바로 '442 기동연대'다. 미군 전사에 길이 남을 전투는 '잃어버린 대대'(Lost Battalion) 구출작전. 텍사스 방위군 부대가 독일군에 완전 포위돼 상황을 알 길이 없자 '니세이'들이 백인 병사들을 구해낸 것이다. 사상자가 전체 병력의 절반이나 될 정도로 처절한 전투를 벌였다.

군인으로선 최고의 영예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은 부대원만도 21명이나 된다. 그래서 영화는 그 당시 일본계 병사들의 희생과 충성심에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영화 제목은 442부대의 구호 'Go for Broke'를 옮겨 논 것이다. 원래 놀음판에서 비롯된 영어로 한 번에 판돈을 몽땅 걸고 지면 그걸로 끝장이란 뜻. 휴식시간 중 병사들이 주사위를 굴리며 이 말을 하는 걸 듣고는 부대 지휘관이 캐치프레이즈로 삼았다는 것이다. 도박판에서처럼 전장에서도 '끝장 내자'라고 할까.

요즘은 김영옥 대령 덕분에 한인들 사이에서도 이 구호가 친숙해졌다. 442 부대원으로 참전해 혁혁한 공을 세운 우리의 이민 선배다. 일본계 커뮤니티에선 영웅으로까지 불려 3년 전 하와이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은 442 부대장으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며칠 전 UC 리버사이드 대학 캠퍼스에 그의 이름을 딴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가 오픈해 늦게나마 그가 아시아계 커뮤니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하다.

442부대에 근무하면서 청년장교 김영옥은 부대장으로부터 전출 종용을 받았다. 한.일 간 깊게 패인 감정의 골을 알고 있어 이같은 호의를 베푼 것. 뜻밖에 김영옥은 상관의 배려를 사양하며 이런 말을 했다. "전투에서 한국계.일본계.백인이 따로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미합중국의 군인으로서 함께 싸울 뿐입니다."

'김영옥 연구소'가 그의 유지를 받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한인 이민사만 취급할 게 아니라 시야를 더욱 넓혀 아시아 이민이 미국사회에 끼친 영향 등을 집중 연구해 보자는 것이다.

442부대의 구호처럼 이민 연구에 관한 한 '끝장'을 내는 연구소. 그런 싱크탱크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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