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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의 현대건설 60년 영욕-37] 3000여 근로자 폭동 '사우디가 발칵'

협상 시도하던 임원들 줄줄이 폭행 당해
현지 비밀경찰 실탄장전 발포 직전까지

현대건설로서는 최초이면서 최대의 노사분규라 할 수 있는 77년의 이른바 3.13 대폭동 사건은 현대의 사령탑만 놀라게 한 것이 아니었다. 사우디를 발칵 뒤집어 놓았고 우리 정부에도 비상이 걸릴 정도였다.

데모라는 단어 자체가 없는 사우디에서 근로자들이 집단행동에 들어가고 차량과 기물이 불타고 파괴됐을 뿐 아니라 수습하러 현장에 긴급 투입된 중역(박규직 당시 상무)이 피투성이가 되어 실려 나가는가 하면 협상을 시도하려던 중역(전갑원 당시 상무)이 돌진하는 대형 덤프트럭과 부딪혀 피투성이가 되고 실신했다.

분노한 근로자들이 짓밟는 현장을 목격한 사우디 비밀경찰(보안군)은 실탄을 장전하고 3000명이 넘는 시위 근로자를 전부 현장에서 즉결처리 하겠다며 강경하게 진압하려는 상황까지 갔던 것이다.

주베일 산업항을 수주했을 때만 해도 현대는 세계적인 건설사들의 부러움을 샀던 업체였고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스타로 떠오른 기업이었다.

결과론이지만 76년 6월부터 79년 12월까지 42개월로 되어 있는 공사기간을 10개월이나 단축하면서 79년 2월 완공했을 때는 세계적인 건설사들이 세 번이나 놀랐다면서 감탄했다.

빠른 공사수행 기상천외한 아이디어 한국인의 근면성 이것은 유럽 어느 나라 업체에서도 볼 수 없는 감동적인 광경이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소장을 맡았던 김용재 이사는 사우디라는 지역적 특수성과 문화적 차이의 어려움에도 유럽 업체들의 텃세 발주처와 감독청의 끊임없는 불신 기술적인 미경험 등 온갖 불리한 환경과 조건들을 모두 극복하면서 완벽한 공사를 했다는 것에 자부심까지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 공사 준비에 들어간 후 9개월 본 공사에 돌입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상상도 경험도 하지 못했던 엄청난 소요사태가 일어날 줄은 누구도 예상 못한 것이다.

"그날이 일요일입니다."

사건이 터지고 유양수 대사가 현장으로부터 긴급 전화를 받으면서 사태 파악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진 후였다.

더구나 촌각을 다투는 긴급한 현장을 멀리 두고서도 열악한 통신 사정은 사태 파악도 긴급한 지시도 내릴 수 없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면 휴일인데도 대사가 대사관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북한에서도 주변 곳곳에 나와 있었어요. 그 당시는 우리와 이북이 상당히 긴장돼 있을 때 아닙니까. 그 친구들이 공작을 하려는 위험도 있기 때문에 휴일이라도 한국의 휴일하고는 같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늘 긴장상태로 지내는데 그날은 특별히 기분 좋은 일이 있었어요. 현대건설이 사우디 동부 '라스알가르' 부두공사를 2억6000만 달러에 수주했고 동아건설이 서해안 '알카디마' 부두공사를 1억 7000만 달러에 수주해 한꺼번에 국내 업체가 두 공사를 같은 날 차지해 대통령의 축전을 받을 만큼 기분이 좋았던 거죠.

그래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보통은 한숨을 자야 건강 유지를 하지만 산보를 겸해서 사무실로 나갔어요. 대사관저하고 사무실까지 거리가 한 400m 됩니다. 조금 있으니까 통신사가 급히 찾아요. 그때가 오후 4시쯤 됐을 겁니다. 알코바에 있는 현대건설 사무실에서 뭔가 다급한 전화가 왔으니 받아보라는 겁니다.

받으니까 감이 워낙 좋지 않고 '대사님입니까? 큰일났습니다! 주베일인데 난동이 벌어져서 사상자까지 나고 있습니다. 빨리 와 주셔야겠습니다!' 누군냐고 물어도 손으로 전화기를 가리고 있는지 다급히 와 달라는 소리만 하고 금방 끊어져 버려요. 전화 사정이 참 어렵고 속을 뒤집어 놔요. 직감적으로 이거 뭔가 잘못됐구나.

근데 더 이상 알아볼 방법이 있어야지요. 주베일 공사 현장과 알코바 현대사무소는 100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거기도 전화가 안 되고 대사관에서 알코바까지는 1300km나 떨어져 있는데 암만 걸어도 역시 전화가 안 돼요."

다른 비상수단을 가동해야 해다. 대사관에 파견 나와 있던 노무관 건설관 중앙정보부 파견관을 비상소집 했지만 그들도 사건이 발생할 만한 징조나 원인 같은 것을 사전에 입수한 게 없었다.

'라스타누라'에 있는 대림산업과 동아건설에 연락을 취해도 허사였다. 급기야 리야드에 있는 COE(미 육군지중해공병단) 본부에 정보 확인을 요청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인근의 SNEP(해상육상기지 확장공사) 현장의 근로자들까지 산업항 근로자들과 합세해 전원이 소요사태에 가담했고 사태가 심각해 COE도 비상상태에 돌입했으며 사령관 그레이 대령까지 현장으로 이미 날아갔다는 것이다.

"대사인 나만 뒤늦게 알았고 꼼짝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COE 본부의 얘기를 들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려요. 폭동이 일어난 현장하고 10km 지점에 미 공병단 군사시설 공사현장이 있는데 그 SNEP도 현대가 수주해 함께 공사를 하고 있었단 말이죠.

사우디의 모든 군사시설은 미국과 사우디가 군사원조협정을 맺어 전부 COE에서 발주하고 전담하기 때문에 거긴 거기대로 강력한 진압권이 있다고요.

그런데도 SNEP 근로자들까지 가담해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다니까 어떻게 되겠어요. 정말 큰일 났구나 싶고 당혹스러운 건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때부터 제정신이 아니에요. 전 직원을 비상소집하고 혹시 동요할지 모르니까 사우디 22개 공사장 근로자들한테는 소요사태 소식이 전해지지 않도록 차단 조치를 취하고 우리 정부에도 긴급 타전을 하라고 지시했어요.

그렇지만 정말 눈 앞이 깜깜해지고 모처럼 진출해 중동에 대한 우리 꿈이 있는데 하루아침에 다 무너지는 것 같고 말이지요.

그러니 당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이 어떻게 해서라도 더 이상 사건이 확대되지 않도록 빨리 수습해야겠고 외교적인 사건으로 확대가 안 되게 해야겠다 그런 생각부터 들어요.

사우디 국법대로라면 전원 추방이거나 전원 구속이거나 최악의 경우 현장 발포도 가능하단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닙니까. 피가 말라요."〈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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