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UC리버사이드에 설립되나…안창호 선생 '독립운동 중심지'
리버사이드대학, 관심·적극 지원
지난 1999년 서울 강남구와 자매결연을 맺기도 한 리버사이드는 도산이 1904년부터 10년 넘게 살며 각지에 흩어져 있던 한인들을 결집시킨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도산은 직업소개소를 만들어 샌프란시스코에서 인삼을 팔던 한인들을 리버사이드 오렌지농장으로 불러들였다.
오렌지농사의 성공으로 당시 리버사이드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으로 발돋움했으며 이에 대한 한인들의 기여가 컸다.
리버사이드에 살던 한인들은 노동자에 불과했지만 나름대로 부를 축적하고 상당액의 자금을 독립운동 단체들에게 기부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재미동포연구소가 이 곳에 들어서게 된 가장 큰 이유는 UC리버사이드가 연구소 유치에 가장 적극적이라는데 있다.
UC리버사이드는 장태한 교수를 비롯 13명의 교수를 배정해 소수민족학과를 따로 개설할 정도로 각 인종별 문화와 역사 연구에 관심이 많다.
또한 UC리버사이드는 한국정부의 지원금에 상응하는 재원을 1대1 매칭펀드 형식으로 지원하기로 해 UCLA 등 기존 한국학 연구소로 이름난 타 대학을 대신해 연구소 유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번 연구소 설립에 큰 역할을 한 장 교수는 미주한인의 정체성 찾기에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SATII에 한국어가 포함되도록 노력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 1995년 김영삼 정부로부터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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