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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의 현대건설 60년 영육-35] '대사도···왕 회장도 다 울었어요'

대한민국 운명걸린 10억불짜리 공사…낙찰 낭보에 박대통령 즉시 축하전문

홍순길 건설관은 외교관 신분이면서도 현대건설에 입찰 자격을 얻어주기 위해 독사라는 별명을 가진 발주처 만서리 차관의 비위를 맞추느라 별 '더러운 짓'을 다 했다며 담아두고 있던 분기를 털어놨다.

"대통령의 특명이 아니면 외교관으로서 절대 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짓을 한 겁니다. 자존심 다 버렸어요. 국가가 위기에 처했고 건설업체가 입찰을 해야겠다고 환갑이 넘은 양반이 그 무더운 열사의 땅까지 와서 교통편도 마땅찮은 데도 불구하고 뛰어다니고 그런 저런 생각이 떠오르니까 정말 몇 번씩 구역질을 하면서도 차관 비위를 맞추면서 포기를 못하고 헤쳐나간 겁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장관이 수차 얘기하면 차관이 장관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모른 척하고서 들어줄 것 아닙니까? 거긴 아니더란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서광이 보인 건 언제쯤입니까?



"그게 몇 달은 걸렸을 거예요. 수없이 찾아다녔으니까요. 경우에 따라선 유 대사님을 모시고 장관을 같이 만나기도 했고. 장관도 계속해서 대사와 건설관이 통사정을 하니까 독사 같은 차관이지만 작심하고 그 친구를 부른 것 같아요. '입찰자격을 주는 건 공사를 주는 게 아니잖느냐 한 번 줘보는 게 좋겠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것도 좋은 아이디어죠.

그렇다고 장관이 말수가 많은 사람은 아니에요. 자기자랑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하여간 그랬는데 하루는 뱀처럼 쌀쌀하던 차관이 우리 집으로 전화를 했더라고요. '내일 좀 올라오시오.' 기분이 이상해요. 그래서 만사 제치고 가니까 종이 한 장을 탁 던져주는데 거기에 입찰초청 대상자 10개사가 있고 한국 현대건설이 맨 끝에 10번째 들어 있잖아요. 이건 정말 감격적인 순간입니다."

-차관이 입찰 초청장을 현대 측에 주지 않고 건설관님에게 전달했다는 건 외교적인 노력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좌우간 받았으면 됐지 뭐. 잘은 모르지만 현대도 나름대로는 노력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사우디라는 나라는 로비에 강한 왕족들이 많고 에이전트들의 힘이 큽니다.

어쨌든 즉각 대사님에게 보고를 했어요. 유 대사님도 깜짝 놀라시죠. 그때까지 대사님도 얘기를 안 해서 그렇지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니셨는데 모르겠습니까? 현대는 불가능하다 그랬으니까요.

하여간 대사관이 온통 축제 같고 마치 공사를 따낸 것처럼 흥분하고 그랬습니다 하하. 당장 현대에 연락을 했는데 직원들도 되리라고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요. 오진영 과장이라고 얼굴이 하얗고 아주 예쁘장하게 생긴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만날 우리 대사관에 쫓아다녔어요.

그 사람 보고 '입찰자격서 받아가시오' 그랬더니 깜짝 기절을 했어요. 진짜 기절했습니다. 얼마나 시달리고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그랬겠어요. 그런 정도였다고요. 그때부터 이제 입찰 전쟁이 시작되는 겁니다."

-입찰 내막에 대해서나 그 후에 특별히 정 회장님 얘기가 기억나는 건 없습니까?

"입찰에 대해서는 대부분 현대가 쭉 했고 우린 아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답사나 견적도 전갑원씨 김광명씨 같은 중역들이 나와서 전부 현대 독자적으로 했으니까요.

정 회장님은 입찰 마지막 단계 때 다시 대사님하고 우리 집에 왔는데 '수고 했습니다' 딱 한마디만 합디다. 그러고는 아직 발표는커녕 입찰 마감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뭐라고 합디까.

아버지가 꿈에 보였기 때문에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래요. 아버지 꿈 때문에 됐다는데 참 섭섭하기도 하고 기업 하는 사람들은 전부 자기 덕이라고 생각해야 되는 모양이구나 싶기도 하고….

근데 솔직히 나는 속으로 저건 불가능한 일이다 입찰서를 얻어냈으니까 내 임무는 다했지만 저게 되겠느냐 도저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봤어요.

아마 주베일 산업항이 어떤 거다 하는 걸 아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저게 어떤 공사인데 현대건설에 떨어지겠느냐 전부 그렇게 생각하고 정 회장이 헛고생한다고 했으니까요."

박정희 대통령을 포함한 외교적인 노력이 없었으면 입찰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은 정 회장도 인정했다. 그러면서 현대건설이 수주하지 못한다면 그동안의 외교적 노력과 대통령의 체면이 어떻게 되었겠느냐 그것까지 생각해서 열심히 뛰었다면서 정 회장은 너스레를 떨고 한껏 웃었다.

"그 양반들이 수고를 많이 했지. 그렇지만 허사가 되지 않도록 하는 건 더 힘든 일 아니에요? 그걸 내가 해줬단 말이야. 우리가 먹었으니까 하하항."

정 회장은 당시 리야드에 있는 알리아마마 호텔에 투숙하고 있으면서 전갑원 상무 김광명 이사 그리고 정문도 사장과 문인구 변호사까지 불러 협의하면서 입찰서류를 직접 챙겼다.

입찰이 있던 날 오전 10시 정각에 입찰서를 제출하고 그날 오후에 현장에서 발표를 했을 때 종합 평점에서 현대는 3위였고 입찰가는 가장 낮았다. 그때부터는 전부 다 미쳐버리는 거라고 했다.

"서울과 사우디가 동시에 난리가 난 거야. 10억 달러가 넘는다는 공사를 대한민국이 언제 구경이라도 해봤어? 그걸 현대건설이 9억4000만 달러 최저가로 낙찰을 봤으니 말이야. 유양수 대사하고 그때 사장이 조성근씨야 건설부 장관을 했지(기억의 착오로 보인다. 조성근씨는 당시 현대건설 국내담당 사장을 거쳐 현대건설 고문이었고 경제기획원 차관보 출신인 정문도씨가 현대중공업 사장으로서 산업항 입찰에 참여했다). 권기태가 그때 부사장인가?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홍 국장도 부르고 해서 컵에 물을 채워가지고 건배를 했어. 내가 술을 안 하는데 지들만 술로 하면 안 되잖아 하하항.

사우디에서는 금주니까 물을 채워서 했는데 그것도 대사관이 생기고 첨이래. 중역들은 누구 할 것 없이 그땐 전부 '거지 도사'들이야. 입찰 발표 때까지 목욕하고 머리 깎고 하면 복이 떨어진다고 면도까지 안 했으니 그 더운데 냄새는 나고 수염은 잔뜩 길고 완전히 거지 도사들이지 뭐야 하하항.

하여간 축배를 드는데 대뜸 유 대사가 통신사 빨리 부르라고 말이야. 대통령 각하 앞으로 전문을 보내야 한다는 거야. 흥분이 돼서 통신사가 달려오니까 그 자리에서 불러대고 적고 말이지. '대통령 각하 오늘 몇 월 며칠 현대가 주베일 산업항공사 계약을 했습니다.

이로써 사우디 계약 건은 얼마가 됐습니다. 대한민국 전권대사 유양수' 탁 이러면서 통신사한테 불러대니까 그때부터 통신사는 그걸 가지고 코트라로 들고 뛰는데 울어요 울어 하하항.

그랬는데 30분도 안 돼서 바로 축하전문이 들어와요. 각하지. 정말 고생했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전부 또 울어. 대사도 울고 나도 눈물이 좀 나오고. 이게 드라마야 아주 진짜 감동적인 드라마였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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