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정주영의 현대건설 60년 영욕-32] '반드시 입찰 따라' 전 국가적으로 지원

'중동시장 확보 못하면 희망이 없다'
정부차원 국운 건 절실한 프로젝트

계속되는 사우디 주재 한국대사관 홍순길 건설관의 증언.

정 회장은 은행에 가기 전부터 마치 보증서를 받아 놓기라도 한 것처럼 확신에 찬 얘기도 하더라고 했다.

"입찰 전날 우리 집에서 밥을 먹었는데 우리 집사람이 오이지에다 김치랑 해서 드리니까 밥을 물에 말아 오이지하고 다 들어요. 그 당시에 환갑이 지났다고 그럽디다.

그러면서 밥 먹을 때 들은 얘기입니다만 자기는 인생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아버지 꿈을 꾼다고 말이죠. 내가 이번에도 입찰 보러 오면서 아버지 꿈을 꿨다고 그래서 반드시 된다 이겁니다. 내가 듣기엔 황당하죠. 그러면서 올라갔던 거예요.



대사관하고 발주처는 제다(Jidda)에 있고 주베일은 페르시아만 남쪽이고 은행은 리야드에 있으니까 한국으로 보면 부산에서 저 북쪽 신의주까지 가는 건데 동네 다니듯이 다니면서 지칠 줄 모르고 무조건 받아낼 수 있다고 말이죠."

물론 정 회장의 욕심에는 10억 달러라는 공사금액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건설인으로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것도 동기부여가 됐겠지만 주베일 산업항은 공사의 모든 업종이 망라된 종합공사였고 특히 산업항만 수주하면 그때까지 극소수 선진국 건설사들만 독점해 온 해양구조물의 시공기술을 손쉽게 획득할 수 있다는 계산이 무엇보다 강하게 정 회장을 끌어당겼을 것이다.

당연히 해양구조물 시공기술은 국내 건설사에는 꿈도 꿀 수 없던 분야였고 무한대 자산이라 할 만큼 시장성도 좋았다.

특히 공사기간 42개월이라는 대규모 산업시설 공사라는 것도 있지만 육상과 해상에서 펼쳐지는 토목부문 공사를 포함해 건축.전기.설비 부문과 함께 30만t 유조선 4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해상 탱커터미널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었다.

해상 탱커터미널을 건설하자면 구조물 제작에서부터 수송 하역 설치까지 완벽하게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총체적인 건설 백과사전을 마스터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규모 면에서도 그때까지 세계 건설시장에 나온 프로젝트 중에서는 단연 압도적으로 컸다. 숫자만으로는 시각적인 감이 잡히지 않겠지만 콘크리트 작업량만 2년동안 하루에 1500~2000㎥씩 타설해야 하니까 8t트럭 500대 분량이고 해상 철구조물이 10만t이나 설치되는 공사였다.

일반 적으로 굉장하다는 항만공사가 5000~2만t 정도의 철구조물이 들어간다. 그리고 주베일항에는 돌까지 400만㎥가 투입돼야 했다.

국내 최대 규모였던 부산항 건설 때도 34만㎥가 투입됐을 뿐이었다.

그러나 주베일 산업항 공사는 한 건설업체의 수주실적이나 기술습득 같은 목표에 포인트를 맞추기에는 차원이 다른 한국 정부 전체의 관심 사안이었다.

당시 한국 경제의 시대적 상황이 검은 황금이 폭발하듯 분출하는 중동에서 대형 공사로 시장을 확보하지 못하면 다른 건설시장은 희망이 없다는 판단이 정부 분위기를 압박했고 그런 만큼 주베일 항만공사 수주는 국운을 건 절실한 프로젝트였다는 것이 관계짜들의 공통된 기억이었다.

현대건설과 정 회장의 성취욕이나 노력만으로 성사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홍순길 건설관과 유양수 당시 사우디 대사의 회고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지만 주베일 산업항을 수주하기 위한 총력전은 민관이 따로 없었고 마치 생사를 건 전쟁을 치르듯 했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좌담회를 하면 그 당시 있었던 사람들이 다들 꿈같은 얘기다 어떤 사람들은 눈물도 흘리고 어떤 사람들은 참 기막힌 얘기여서 말도 다 하지 못할 겁니다.

그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도 있고 박 대통령의 해내야 되겠다는 그런 집념 또 하명을 받고 현지 대사가 뛰는 모습 물론 현대 직원들도 처절할 정도로 매달렸지만 그런 건 말로 다 못해요. 지나고 보면 나라가 운이 있었던 것 같다는 말밖에…."(홍순길)

당시 주 사우디 한국 대사는 유양수 전 장관이었다.

유 대사는 소장으로 예편했지만 월남전을 비롯해 한국이 외교적으로 곤경에 처할 때마다 현지 대사로 부임 명령을 받아 그의 외교 경력은 '구원투수'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화려하면서도 숱한 역경을 헤쳐낸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사우디에서도 그랬다고 했다.

"내가 부임한 것이 75년 9월 말인데 주베일 산업항 문제로 그 전까지 홍순길 건설관이 굉장히 애를 쓰고 있었어요. 사우디라는 나라가 그런(공사 관련) 문제에 대해 비밀이 없는 나라예요. 대형 공사가 나오면 와자라든가 장관이라든가 실무 공무원을 통해 누구나 다 아는 얘기가 돼요.

당시 우리 건설부 장관은 김재규씨였는데 부임하면서부터 박 대통령 지시사항이라면서 전문이 쏟아져 들어왔어요. 참 옛날 얘기지만 그때는 전문이 대사관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코트라로 옵니다. 그 나라가 재외공관을 홍해 연안 제다에만 두도록 해놔서 외교 사절이 모여 있는 곳인데도 통신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어요.

하여간 코트라를 통해 받아보면 모든 노력을 다해 현대건설이 공사에 참여할 수 있는 입찰자격을 획득하도록 적극 노력해라 이게 매일 왔어요."

- 전문 내용에 현대라는 말이 들어 있었습니까?

"그래요. 이미 현대도 발주처 정보를 입수하고 처음에는 입찰 자격부터 얻는 게 관건이니까 정 회장이 박 대통령한테 부탁을 드렸겠지요. 우리 정부도 꼭 수주를 해야만 한다는 게 당시엔 지상명령이었으니까.

그 당시 중동에 대한 관심은 월남전 이후 최대였고 사실 월남전이 끝나면서 이제는 중동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었으니까 대통령부터 대단한 관심을 가지셨지요.

그랬는데 내가 월남 대사를 끝으로 한국에 들어와서 잠시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까 대통령께서 빨리 사우디로 나가라고 말이야 나가서 보니까 그런 엄청난 프로젝트하고 전쟁을 하다시피 하고 있는 겁니다." 〈계속>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