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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감사절에 생각한다

한영국/소설가

고등학교 때 들었던 어느 노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일본에서 공부를 하셨던 그분은 다른 나라로 유학을 떠나게 될지도 모르는 우리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일본사람들이 마늘냄새가 난다고 한국 사람을 비하하는 것을 보고 그 선생님은 귀국하는 날까지 마늘을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비난받을 부분을 최대한 줄이고, 인정을 받아야 할 부분에 전력을 다 해 크레딧을 얻는 전략을 쓰신 것입니다.

그분은 일본 국민을 제치고 최고의 학생으로 유학생활을 마무리하셨습니다. 그 때 그 상황 속에서, 개인이기보다는 대한민국 국민임을 우선순위로 놓고 사신 것입니다.

대학 때 한 스승도 자신의 유학 경험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몸이 아파도 누워서 아플 수가 없었다. 전쟁 후 어려운 한국 상황, 그리고 그 와중에 어렵게 보내주는 학비가 마음에 걸려서 열이 펄펄 끓는 중에도 책상 앞에 앉아서 앓았다고 합니다.

오늘은 60년대 영국으로 전문의 훈련을 떠나셨던 분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흔치 않은 귀한 기회여서 이것저것 배울 욕심에 너무도 마음이 바빴다고 합니다. 런던으로 가면서 홍콩과 레바논과 이탈리아를 두루두루 거치며 그 낯선 나라들의 풍물을 마음에 담았고, 훈련 기간중에도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프랑스 문화원까지 다니셨답니다.

생활비를 절약하느라고 기숙사의 식사가 제공되지 않는 주말에는 햄버거(2차 세계대전 후 서방에서는 독일 말을 꺼려해 햄버거라 하지 않고 ‘윔피바’라고 불렀다고 합니다)만으로 연명, 미국에 와서도 한동안은 햄버거를 먹지 못했다고 하십니다.

생떽쥐베리는 인간사가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드라마고, 다른 하나는 무관심입니다. 위의 분들은 유학이라는 개인적 성취를 이루면서도 그것을 드라마로 파악하셨습니다.

유학의 기회를 갖지 못한 고국의 많은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살았으니 말입니다. 시련은 책임감이라는 미덕을 강화시켜 줄 수도 있다는 증거입니다.

요즘 미국에 와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많이 달라져 있는 것 같습니다. 고국이 어떤 면에선 이곳의 우리보다 더 잘 살고 있어 굳이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되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우리들 삶의 양상이 무관심 쪽으로 돌아섰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유학이라는 단기체류가 아니라 산 교육의 현장에 살고 있으면서도 언어도, 다른 나라 사람들의 삶도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450년 전을 생각해 봅니다. 이상하게 생긴 사람들이 은근슬쩍 자기 땅으로 몰려와서 터 잡고 사는 걸 보는 것도 인간의 본성상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침입자들은 집을 짓고 농사를 짓는다고 부산을 떨어댑니다. 거기다 사냥을 한다고 쓰는 이상하고 요란한 기계는 위협적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보니 그들도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잠잘 곳이 필요한 인간입니다. 그런데 농사짓는 데도 영 서툴고 사냥솜씨도 형편없으며, 아이들은 그 사이 병들고 굶주려 죽어갑니다. 아무리 낯선 인종이라 해도 그러한 인간의 고통 앞에 무관심할 수 없었던 인디언들은 그 침입자들에게 옥수수 씨도 나누어 주고 사냥도 도와줍니다.

말이라고는 단 한 마디도 안 통하는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고 단어 하나씩을 발음해가며 서로를 배워 갑니다. 헨렌 켈러 저리가라 하는 노력과 인내, 그리고 배려가 필요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일차적으로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인간에 대한 감사예절입니다.

인간사를 무관심이 아니라 한편의 드라마로 파악하라는 얘기일 겁니다. 인간 마음의 흐름이 내 개인에서 끝나는 것이 무관심이라면, 그 흐름이 내게로부터 타인에게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 드라마적인 삶일 것입니다.

고국이라는 짊이 가벼워졌다고 해서 등짐을 아예 벗어도 되는 건 아닐 겁니다. 인간이 등짐을 아예 벗어도 되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인디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새로운 짐을 져야 할 단계일 뿐입니다.

그것이 그동안 흑인들이 져왔던 민권운동의 짐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우리들이 그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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