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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의 현대건설 60년 영욕-29] 정주영-정인영 '형제의 싸움'

형은 '주베일 공사' 강행, 동생은 결사반대…형제간 눈치보느라 직원들만 죽을 맛

현대건설이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친 태풍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필리핀 해역을 거쳐 걸프만까지 1억 달러가 넘는 대형 재킷들을 19번이나 바지선으로 운반하는 대모험을 시도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하나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그만큼 주 공사인 주베일의 산업항 신항 건설이 규모에서나 내용면에서 대형 재킷들을 바지선으로 운반했다는 전무후무한 뉴스까지 덮을 정도로 엄청났던 것이다.

77년 3월의 사우디아라비아 '라스 알가르' 항만과 77년 6월의 쿠웨이트 '슈아이바' 항만 규모 면에서 다소 작긴 하지만 78년 1월의 '두바이 발전소' 수주까지 중동지역의 대형 공사를 연거푸 따내게 되는 것도 현대건설이 세계적인 선진 건설사들을 제치고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수주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75년 중동에 진출한 이후 79년까지 현대건설이라는 하나의 회사가 무려 51억6400만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었던 것도 성공적인 주베일 산업항 수주로 기업의 브랜드를 높이지 못했다면 살벌하기까지 하다는 중동 시장에서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음은 고(故) 정주영 회장의 회고.

"주베일이 사우디 동부 쪽 유전지대 아니에요? 거기에 산업항을 건설하겠다고 한 거는 주베일 지역에서 나오는 원유 수송하고 그 지역 산업시설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원유 수송 때문만이 아니고 갖가지 산업을 발전시켜야겠다는 주베일의 야심이 담겨 있는 거라서 단순히 항만 공사로만 생각할 게 아니다 그거지. 거대한 산업도시를 건설하는 셈이에요.

그래가지고 사우디 항만청에서 발주를 했거든? 그게 입찰은 76년 2월에 했는데 우리가 발주를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건 불과 7개월 전이었단 말이야. 75년 7월께 알았으니까.

그러니 생각해 봐요 세계적인 공사라고 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7개월 정도밖에 안 남은 시간을 가지고 덤벼들었으니 얼마나 정신없이 뛰어다녔겠어. 뛰어다니기만 해서 되는 일이라면 막 달리지 하하항."

-시간적으로 촉박했다는 것 외에도 어려움이 많았다는 말씀입니까?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 당시 우리 건설이라는 건 그런 엄청난 항만공사를 해 본 적도 없지만 끼어들 자격조차도 안 된 거예요. 현대가 그때 바레인에서 아랍수리조선소를 건설하고 사우디에서 해군기지 확장공사도 하고 있었지만 우리까지도 산업항 공사에는 아예 입찰 초청 대상에 끼지도 못했던 거지. 그럴 정도로 인지도나 평가가 낮았던 거야.

그뿐 아니고 어떡하든 초청을 받는다 해도 막상 입찰하려면 보증이 또 있어야 해요. 근데 대한민국 정부가 보증을 한다고 해도 안 된다고 했어. 대한민국도 믿지 못한다고 했으니까 나머진 말할 것도 없잖아요.

하나에서 열까지 안 된다는 것뿐이고 전부 우리 힘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길이 없으니까 정말 힘들었어요. 내가 해외공사를 한없이 했는데 주베일 공사만큼 사력을 다하고 애를 먹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공사 자체 때문이 아니고. 저걸(산업항) 먹긴 먹어야 되겠는데 처음에는 도무지 뚫을 구멍이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야.

그런데 결국 우리가 수주했거든? 참 엄청난 도전을 한 거야 하하항. 그걸 모르고 회사 안에서는 사장부터 될 일이 아니라고 어떡하든 일심동체가 돼서 덤벼들어도 시원찮을 텐데 자꾸 회사 망한다는 소리만 하고. 그땐 전부 그러지 않았어? 시원찮은 것들이 말이야."

정주영 회장은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비록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그때 일이 잊히지 않는지 불편했던 심정을 몇 번씩 되풀이했다. 사실 그 당시 사장은 정인영 전 한라그룹 회장이었지만 그는 공사 규모에서나 경험과 공법에서나 현대건설이 도전을 하는 그 자체가 회사의 사망 선고라면서 끝까지 반대했다.

실제로 76년 그 시점의 현대건설이 산업항을 수주하려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만큼 덤핑이 불가피하고 결과적으로는 회사 문을 닫게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 보니 정작 사우디로 날아가 정보를 입수하고 수주활동을 했던 전갑원 전 부사장이나 김광명 전 사장 같은 중역들은 정주영 회장과 정인영 사장 사이에 끼여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여간 갈등하고 고생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솔직히 정주영 회장님하고 정인영 회장님(당시 사장)이 산업항 입찰 문제를 놓고 매일 회의하고 전략 짜고 지금 생각하면 TF팀인데 입찰 초청을 받으려고 사무실까지 만들어놓고 정신없이 덤벼들었는데 그때부터 두 양반은 이미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수주를 해야 한다는 건 정주영 회장님이고 하면 안 된다는 게 정인영 회장님이었으니까 사이가 좋을 리 없죠.

회장님이 회의를 주재하실 땐 정 사장님이 침묵하고 정 사장님이 회의하면 '현대 망하는 거 보려고 그래?' 이러면서 짜증내시고. 그런데 사실은 수주를 하고 나서도 열 명한테 물어보면 아홉 명은 현대건설 망한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정인영 사장님도 아주 잘못 본 시각은 아니었지요.

하여간 발주정보를 듣고 현장답사를 갔는데 그때 김광명 이사(후 현대건설 사장)하고 같이 갔어요. 나는 바레인 수리조선소를 따고서 진급이 상당히 빨랐어요. 그때 내가 상무였을 겁니다. 좌우간 사우디에 나가 있는데 정인영 사장께서 부르시는 겁니다. 나는 수첩에 메모를 하니까 지금 얘기 그대로예요. 당장 귀국하라는 거지요."(전갑원)

-정인영 회장이 직접 호출한 겁니까?

"그분이 그때 사장님이지만 실질적으로 명예회장님 못지않게 회사에서는 카리스마도 있고 거의 모든 걸 결정하셨던 분 아닙니까. 그러니 일단 귀국을 해야죠. 귀국보고를 하니까 참 무섭게 쳐다봐요. '네가 회사 망쳐 놓으려고 그 짓 하고 있어?' 긴 말씀도 없어요.

그래서 자료를 쭈욱 펼쳐 놓고 설명을 드렸지요. 이 산업항만 따내면 35% 수익은 충분히 된다고 말이죠. '네가 뭘 근거로 해서 그런 장담을 하는 거야. 네가 언제 사우디에 가서 일을 해 봤어? 입찰이고 뭐고 당장 집어치우고 정리해서 들어와!' 반대가 굉장히 심했어요.

그렇지만 명예회장님 명령으로 나가 있는데 어떻게 빈손으로 들어옵니까. 일단 알겠습니다 해 놓고는 다시 출국해서 그땐 싼 데만 골라 다녔으니까 삼류호텔에 있는데 텔렉스가 계속 들어와요. 정인영 사장님 명의로 몇 장씩 날아드는 거지요. 절대 입찰하지 말고 돌아오라고 말이지. 근데 정주영 회장님은 입찰 붙어서 따낼 때까지 돌아오지 말라고 그러시고."(전갑원)〈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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