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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따라 출렁거린 '한·미관계 30년'

박정희-카터, 긴장…노무현-부시, 삐걱
전두환-레이건은 서로 오순도순 칭찬모드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삐거덕거렸던 부시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과는 주파수가 잘 맞았다. 실제로 이 대통령 집권 후 한.미 관계는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가 대선에서 당선됨에 따라 짧았던 '한.미 밀월시대'가 어떻게 변화할지 주목되고 있다. 과거 한.미 관계에서도 정상 간의 친밀도는 중요한 변수였다. 다음은 지난 30년 동안 한.미 정상 간 친소 관계가 양국 관계에 미쳤던 주요 사건의 파노라마다.

◇'견원지간' 박정희와 카터=두 사람의 관계는 반세기 한.미 동맹에서 가장 껄끄러웠다. 카터는 한국 내 인권 탄압이 시정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압박했다. 카터는 한국방문 당시 영빈관에 머물러 달라는 박 대통령의 초대를 무시하고 이례적으로 서울 용산 미8군 영내에 숙소를 정했다.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40여 분간 카터에게 주한미군 철수의 부당성을 '강의'했다.



화가 난 카터는 배석했던 국무장관에게 "이자가 2분 이내에 입을 닥치지 않으면 나가 버리겠다"는 메모를 건네기도 했다.

◇'찰떡궁합' 전두환과 레이건=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에게 미국의 지지는 취약한 정통성을 보장받는 지름길이었다.

다행히 '반공'이란 공동 이념이 한.미.일 삼각 동맹을 이끌었다.

전 대통령이 81년 미국을 방문하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그를 '위대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라고 칭송했다.

◇'냉탕온탕' 김영삼과 클린턴=처음에는 한.미 관계가 괜찮았지만 북한과 미국이 핵 협상을 하면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대북 포용정책을 주장했던 클린턴 행정부는 "핵을 가진 집단과는 대화할 수 없다"며 대북 강경 정책을 표방했던 김영삼 정부와 엇박자를 냈다.

이 때문에 김 대통령은 임기 말 외환위기 때 미국의 신속한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증의 8년' 김대중.노무현과 부시=김대중 대통령은 빌 클린턴 민주당 정부와는 밀월 관계였지만 후임인 부시 행정부와는 궁합이 맞지 않았다. 근본 원인은 북한을 보는 시각차였다. 햇볕정책과 '악의 축'이 대립했다.

부시와 노무현 대통령 관계는 더 삐걱거렸다. 이라크 파병으로 한 때 좋은 순간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끝내 북한관 차이로 인한 갈등을 극복하지 못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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