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한인들의 정계 도전사···연방하원 김창준씨 '3선 역임' 금자탑
92년 4명 무더기 출마, 정치력 본격화…미셸 박씨 가주한인 최고위 공직 올라
〈표 참조>
1990년 LA동부 다이아몬드바 시의원에 당선됐던 김창준(공화)씨는 여세를 몰아 92년 11월 연방하원 신설 지역구인 41지구 선거에서 압승 연방하원 역사상 최초의 한인이자 아시아계 이민 1세 출신 첫 의원이라는 화려한 기록을 남겼다. 41지구는 LA동부와 샌버나디노 외에 OC지역 일부를 포함하는 공화당 강세지역 선거구였다.
이후 94년과 96년 선거에서도 승리 탄탄대로를 걷던 김 전의원은 불법 선거자금 공방이라는 '암초'에 걸려 98년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패배해 4선에 실패했다.
2000년에는 OC일부가 포함된 42지구로 지역구를 옮겨 재기를 노렸으나 공화당 예선에서 상대 후보에 큰 표 차로 뒤져 고배를 마셨다.
92년 선거에서는 정호영씨와 줄리 사씨가 각각 가든그로브와 풀러턴 시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한인 정치력 파워를 과시했다. 그러나 당시 25세 약관이었던 로버트 현씨는 스탠턴 시의회 선거에서 차점으로 낙선 아쉬움을 남겼다.
11대 OC한인회장을 지냈던 올드타이머 정호영씨는 2명을 뽑는 시의원 선거에서 다른 11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최고 득표로 승리 제2의 한인타운이 위치한 가든그로브 사상 최초의 한인 정치인이 됐다.
96년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정씨는 부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주하원 입성을 노렸지만 98년 68지구 공화당 예비선거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해 꿈이 좌절되고 말았다.
부산에서 출생한 화교 3세 줄리 사씨는 1992년과 96년 선거에서 연속으로 당선돼 시장으로 일한 1년 반을 포함 8년간 풀러턴 시의원으로 봉사했다.
그는 그러나 치노힐스에 주택을 소유하고 있던 탓에 주민 자격여부 시비가 일자 2000년 출마를 포기하고 정치에서 손을 뗐다.
1998년 선거에서는 희비가 엇갈렸다. 해사를 졸업한 해군 중령출신의 탐 오씨가 정호영씨의 뒤를 이어 가든그로브 시의원직에 도전 6명과 경합했으나 아깝게 실패했다.
반면 피츠버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오랫동안 교육계에 종사했던 최석호씨는 어바인통합교육구 교육위원에 무난히 당선돼 OC 남부지역에 한인 정치력 신장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그는 2002년 선거에서 교육위원에 재선됐으며 2004년 시의원 선거에 출마 2위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지난해에는 주하원 71지구 도전을 선언했으나 여러가지 여건상 주하원의 꿈을 접고 이번 11월 선거에서 시의원 재선을 겨냥하고 있다.
퍼시픽벨 홍보 디렉터로 오래 근무했던 박동우씨는 2002년 가든그로브 시의원직에 도전했지만 1800여표 차이로 낙선했다. 2007년에는 박동우씨와 지헌영씨가 재닛 우엔 시의원의 카운티 수퍼바이저 당선으로 공석이 된 가든그로브 시의원직을 보궐선거없이 승계할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으나 스티브 존스에 밀려 좌절됐다.
2004년 어바인 시의원 선거에서는 강석희씨가 최석호씨와 함께 한인 선거사상 최초로 동일 지역구 '동반 당선'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한미민주당협회 회장을 역임했던 강씨는 공화당 소속 최씨에 이어 3위로 당선 2년 임기의 시의원직을 꿰찼다.
강씨는 2006년 선거에서도 시의원 재선에 성공했으며 올해 선거에서는 직선 시장직에 도전하고 있다.
같은 해 미셸 박씨가 OC 대부분 지역을 포함하는 조세형평위원 3지구 선거에서 56.7%의 득표율을 기록 가주 한인으로는 최고위 공직에 올랐다.
정재준 OC한인회장은 "OC 한인들의 정계 도전은 LA에 비해 전혀 뒤질 것이 없지만 베트남계 커뮤니티에 비해선 아직 저조한 편"이라며 "11월 선거에서 4명의 한인 후보들을 모두 당선시켜 한인사회의 정치적인 힘을 과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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