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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의 현대건설 60년 영욕-26] '공기 꼭 맞춘다' 청와대에 큰소리

D-데이 이틀전 당재터널 공사 간신히 끝내…현장에서만 77명 순직

단양에서 옥천까지는 무려 190여km에 이른다. 특정인을 치켜세우는 것이 아니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니까 포장된 길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비포장 190여km를 달려 단양에서 공사현장까지 육로수송을 하도록 했다는 것은 국가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조강시멘트로 효과는 나타났습니까?

"12시간 만에 발파하고 진척이 빨라진 거지요. 나 역시 조마조마했던 건 사실이지만 낙반사고 한 번 없이 해낸 겁니다. 조강을 치지 않았으면 절대 공기 내에 할 수도 없었고 개통식을 연기해야만 했을 겁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 터널이 안전하게 유지되고 있지만 그때 금전적인 손해는 계산도 못해 봤어요.

하여간 그렇게 힘들고 주판까지 엎어놓고 하고 있는데 계속 건설부에서는 초조하니까 감사실장 보내고 기획실장 보내고 건설국장 보내고 전부 내려 보내서 묻는 거예요.



그 당시에 김용석씨라고 도로국장이 있었는데 찾아왔어요. '어떻게 되는 거냐 각하 스케줄 때문에 죽을 노릇이다.' 공무원들은 개통보다 솔직히 자기 목이 더 걱정이지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안전하게 끝낸다. 끝내는데 6월 30일을 D-데이로 해서 다른 공사 구간보다 단 하루라도 먼저 끝낸다. 그러니 예정 공기 안에 끝난다고 보고해라.'

그랬더니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정말이냐는 거지요. 근데 내가 어째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느냐 기업주가 주판을 엎어놓고 한다고 할 땐 안 될 게 없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6월 28일 새벽 1시에 끝냈으니까요. 그러니까 3일을 앞당긴 겁니다. 그래가지고 개통식이 7월 7일인데 6일 저녁에 보니까 대구에서 왜간 구간은 그때까지도 일이 덜 끝나가지고 기름 방망이 들고 야간작업 한다고 난리를 치고 있어요 하하하."

-훗날이지만 정 회장께서도 사실은 초조했고 며칠씩 밤을 새웠다고 하던데 그럴 땐 중역들도 전부 같이 현장을 지킵니까?

"어휴…. 누구 눈치 봐서 일하는 게 아니었어요. 정말 사명감을 가지고 명을 걸고 했다는 게 맞습니다. 경부고속도로? 즐겁게 타고 달리지만 그냥 태어난 게 아니에요. 정 회장님뿐입니까? 김영주 회장님은 아예 십장처럼 악을 쓰시면서 다그치고 그랬지요. 완전히 전쟁이었고 계급장이 다 날아갔다고 그랬을 정도로 일손을 보탰습니다.

명예회장님은 스케줄이 워낙 빡빡한 분이니까 서울 가시는 날이 있는데 그런 날도 '내가 안 보이면 이놈들이 요령 피운다'고 밤늦게까지 계시다가 올라가세요.

이건 에피소드지만 하루는 비가 왔어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우의 입고 장화 신고 다닙니다. 명예회장님은 우의를 드려도 안 입을 분이고. 그날은 서울에서 운동화를 신고 오셨는데 그 엄청난 비에 운동화가 젖어 계속 터덕거리고 다니시는 겁니다.

그러니 보기에도 안 됐잖아요? 그래서 운전수 시켜 대전 나가면 시장이 있을 테니 하나 사오라고 했어요. 발이 어찌나 큰지 최소 12문 반 이상은 돼야 합니다. 근데 대전에서 11문 반짜리는 있는데 12문 반짜리는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내내 돌아다니다가 결국 못 사고 그냥 왔어요. 그러니 어떡해요. 하루 종일 젖은 운동화 신고 다니시다가 나중에 올라가실 때 보니까 차 안에서 신발도 벗어 던지고 양말도 벗어 던지고 맨발로 타고 가시더라고요. 그 정도로 온몸으로 했습니다."

물론 현대건설만 전사적으로 매달린 건 아닐 것이다. 옥천에 세워진 위령탑에는 순직한 삼환기업 공구 소장 이름이 올라 있다.

그 공구 소장은 밤 10시가 넘어서 작업을 끝내고 서울에 갔다가 다음날 눈이 내리자 다시 현장으로 급히 내려오다 수원~오산 사이의 중앙분리대에서 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눈이 오면 사실상 현장은 작업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눈이 쌓이니까 가 봐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황급히 오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양 회장도 그 소장을 알고 있었다.

"참 안타까웠고 인명은 재천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았어요. 해가 떠오르고 낮에만 내려왔어도 불행을 면했을지 모르는데 눈이 오니까 일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현장 걱정이 돼서 내려오는 거예요. 정말 사명감이 아니면 그럴 수가 없는 거지요."

모두가 명을 걸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만 77명이 순직했다. 그만큼 거대한 역사(役事)였고 몸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물론 경부고속도로를 내용적으로 봤을 때 국제시방서 규정에 맞는 완벽한 공사였던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는 시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규정대로라면 표층을 2.5cm 중간층을 5cm로 해서 7.5cm 두께의 아스팔트 포장층을 형성하고 기층을 15cm로 해야 했지만 정부의 재정 문제로 아스팔트콘크리트 기층을 7cm 정도로 덮었으니까 국제규격에 미달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개통 후 3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경부고속도로는 건설비보다 보수 유지비가 더 들어간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도 공사현장을 수시로 방문하고 독려하지 않았습니까?

"아이구 죽는 줄 알았습니다. 시공하는 도중에 박 대통령이 직접 지프를 타고 경호원도 없이 현장에 여러 번 다녀가셨는데 한번은 덤프트럭 때문에 식은땀을 흘렸어요. 현장에서는 내가 소장이지만 소장 차건 중역 차건 따질 것 없이 현장 작업차가 최우선입니다. 작업차가 오면 다 피해 줘요. 그렇게 작업차를 최우선으로 해야 공사가 빠릅니다.

그래서 작업차들은 막 달려요. 근데 대통령이 지프로 오셨다 이겁니다. 기사들이 그게 현장 차인지 뭔지 압니까? 대통령 차가 올라오는데 흙을 잔뜩 싣고 막 달려오던 덤프가 빨리 비키라고 빵빵 울려대면서 손가락질에 욕까지 막 하네? 아이구…. 숨이 콱 막히데요. 정말 식은땀이 흐릅디다."〈계속>

이호/객원기자·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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