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 나의 꿈] '미향식품' 으로 되돌아온 신순덕씨···'밑반찬 할머니 다시 왔소'
'삶을 잃어버린 느낌'…여든 나이에 복귀
같은 주인, 같은 자리다. 헌데 상호명이 바뀌었다. 미향식품 케이터링.
신순덕 할머니의 나이는 올해로 여든. 노령이다. 하지만 마음은 36년전 상록수식품을 시작할 때와 같다. 대신 37년째 같이 해온 상록수를 털어버리고 미향식품과 새출발한다.
신순덕 할머니는 1972년 올림픽과 크렌셔 인근에 문을 열었다. 상록수는 한인 대형마켓이 없던 시절 각종 김치와 밑반찬 된장과 고추장 등을 선보이며 반찬가게 미니마켓으로 한인들의 식탁을 지켜왔다.
하지만 대형마켓들이 늘어나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불경기까지 닥치면서 비즈니스가 더욱 어려워졌다. 여러 사정으로 결국 지난 7월 상록수식품을 닫았다.
미국에 오자마자 3개월만에 상록수를 오픈하고 일주일내내 새벽부터 김치를 담그고 장을 뜨고 반찬을 만드느라 고단한 몸을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쉬는게 쉬는게 아니었다. 괜히 마음이 초조해졌다. 집에 있는게 오히려 고욕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상록수가 자식이고 남편이었구나.'
신 할머니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상록수 의지할 데를 잃은 것이다.
'안되겠다 다시 열자' 결심하고 나니 마음이 급해졌다. 상록수 김치와 된장을 사기 위해 멀리서부터 찾아오고 할머니의 손맛에 믿음을 보내준 단골을 하루라도 빨리 다시 만나야겠다 싶었다.
다행히 건물주와도 이야기가 잘 돼 같은 자리에서 김치와 반찬을 만들고 손님을 맞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전으로 돌아갔다.
사실 자식들은 신 할머니를 말려왔었다. 집에서 편히 쉬시라고. 여행 다니시며 여생을 즐기시라고.
이번에 다시 오픈하니 자식들은 걱정이 크다. 딸은 속상해 어머니와 말도 안할 정도.
그래도 신순덕 할머니의 얼굴엔 생기가 돈다. 하던 일을 놓으면 뭐하나 싶다.
신순덕 할머니는 정신대 소집을 피해 16살에 결혼한 후 44세에 미국땅을 밟기 전까지 한국에서 포목상을 했다. 가정에서 해먹었지 직접 담근 김치와 장을 판 적은 없었다. 딸네 집에 왔다가 타운에 반찬가게가 없는 것을 알고 덜컥 상록수를 냈던 것이다.
그동안 몰려드는 손님으로 밥도 못먹고 화장실도 못가는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오래된 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뇌출혈로 대수술을 받았을 때 아수라장이 된 타운에서 혼자 문을 열고 한인들에게 당장 필요한 음식이며 물을 팔던 4.29폭동 등 수많은 고비를 넘겼다.
요즘도 힘들다.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신순덕 할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5시30분부터 10여명의 종업원들과 김치와 밑반찬을 만들기 시작한다.
여전히 형편이 어려운 손님들에게는 김치 한통 반찬 한팩을 집어주는 따뜻한 마음씨를 잊지 않는다. 돈이 모자란 손님에게는 '됐다'하고 보내는 할머니의 풍성한 마음도 그대로다.
신 할머니가 어쩌다 안보이면 걱정하고 미향식품으로 다시 문을 연 후에는 "김치 반찬 다시 먹게 해줘서 고맙다"며 자기 일처럼 반가워하는 가족같고 친구같은 고객 신 할머니 손맛 하나 보고 리버사이드며 팜스프링에서 타운까지 찾아와 10병씩 사가는 고객이 있는 한 신순덕 할머니는 김치를 담그고 반찬을 만들 것이다.
"내 분수를 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 행복을 포기할 수 없어요.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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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 기자 jhle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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