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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신 기자 '나를 덮친 포터랜치 산불'…'너무 급해 몸만 나왔죠'

'지나가겠지' 방심하다 갑자스레 대피, 떠나는 주민들 발동동…집빼고 다 불타

삼킬듯이 타오르는 불길 눈앞을 가리는 가득한 연기. 시시각각 다가오는 화마의 공포…. 포터랜치를 뒤덮은 산불이 난 13일 생애 가장 절박했던 순간이었다.

두려움과 긴박감으로 보내야 했던 지난 12시간은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오전 10시: 컬럼버스데이 휴일이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여유있게 TV를 틀었다. TV에는 긴급뉴스라는 자막과 함께 불타는 포터랜치 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산쪽을 보니 이미 능선에는 검붉은 불길이 쏟아 오르고 주위는 연기로 가득했다.

소방 헬기들이 손에 잡힐 듯 낮게 날면서 불안한 엔진음을 쏟아내고 있었다.

▷오전 11시: 이 지역에 살면서 몇번 산불을 경험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집밖으로 나온 주민들도 예전의 산불 정도로만 생각하고 대피를 준비하지는 않았다.

이때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세스넌 길 위쪽의 게이티드 커뮤니티에 이미 강제 대피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우려는 서서히 공포로 바뀌어 갔다.

▷오후 1시: 경찰이 단지로 들어왔다. 확성기로 '강제 대피령'을 발동하면서 급히 떠날 것을 명령했다.

일부 주민들은 경찰을 도와 이웃집 문을 두드려 대피 소식을 알렸다. 세스넌 위쪽의 주택가에 이어 아래쪽으로 불길이 옮겨질 것을 우려해 긴급히 대피 명령을 내린 것이다.

▷오후 2시: 짐을 꾸려 단지를 빠져 나가는 차량들의 긴박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백미러로 보이는 불길은 언제라도 차를 태울 것만 같았다.

집을 날려 보낼 것 같은 강풍은 계속되고, 주민들의 얼굴빛 처럼 어두운 화염은 산위에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오후 4시: 포터랜치 주택가로 올라가는 길들을 경찰이 바이케이트를 세우고 통제하기 시작했다. 주민들도 출입이 차단돼 차를 돌려야 했다.

여기저기에 차를 세우고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셀폰으로 집에 전화를 거는 주민들이 보였다. 전화를 거는 순간에도 북쪽산에는 검은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오후 6시: 경찰이 통제선을 설치했지만 기자증을 제시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매운 연기와 먼지로 눈이 아팠다. 이미 세스넌 위쪽의 산은 순식간에 검은 폐허를 변했다.

미처 타지 못한 나무 토막들이 연기를 내면서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다. 집에 가까운 탬파길 북쪽으로 가로수들도 불에 타 앙상한 몸체만 남아있었다. 주택단지를 제외한 주변은 불에 모두 소실됐다.

불길의 기세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데도 타지 않고 남은 집들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오후 8시: 설마 이런 일이 닥칠 수 있을까. 대피령이 떨어졌을 때 집에서 데리고 나온 것은 강아지 뿐이었다. 우선 가족 모두 몸부터 피하고 보자라는 생각이었다.

뒤늦게야 그래도 보험증서 쯤은 챙겼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밤늦게 단지로 들어갔다.

이때 쯤이면 창문마다 불이 켜지고 저녁 식탁의 웃음소리가 들리던 단지는 유령의 마을 같았다.

집이 걱정돼 큰길을 피해 샛길로 왔던 주민들도 몇가지 물건을 챙긴 후 떠나고 단지는 다시 어둠에 잠겼다.

▷오후 10시: 대피한 주민들은 인근 미국 교회에 설치된 셸터나 친척·친지들의 집을 찾았다. 집 걱정으로 잠못 이루는 밤이었다.

친척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우리 집은 어떻게 됐을까. 이런저런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에서 뒤척이던 중 낮에 대피하다가 길에서 본 어린 아이가 떠올랐다.

엄마품에 안겨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을 쳐다보던 아이. 그 아이의 눈에 비쳐졌던 것은 바로 ‘공포’였다. 고통스런 어둠만큼이나 길고 긴 밤이 지나가고 있다.

포터랜치=김완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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