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금융 위기 집중해부-상] 누구 책임인가···IB의 탐욕에 거품 터졌다
그린스펀 초저금리 정책이 발단 제공…과도한 융자로 큰 집 산 국민도 '공범'
그 후유증은 무자비하게 다가온다. 집값과 주가가 폭락하고, 금융회사들이 망하고, 직장이 사라지고, 모아뒀던 돈이 없어진다. 버블이란 누군가가 나쁜 의도로 만들어 내는 게 아니다.
경제주체들이 제각각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행동하다 보면 어느 새 커지는 법이다. 경기를 띄우려 금리를 낮추고 돈 풀고, 넘치는 돈으로 마구 대출해 주고, 버는 것보다 많이 빌려 많이 쓰고, 그래도 집값·주식값은 계속 올라 호주머니가 두툼해진 것 같고…. 이렇게 흥청망청 가다가 뻥 터지는 게 버블이다.
경제주체들의 ‘범의(犯意) 없는 범죄’라고나 할까. 뒤늦게 날아든 청구서를 메워야 할 미국 국민에겐 고생길이 열렸다. 과연 누구의 책임이 무거울까.
◇앨런 그린스펀=‘마에스트로(거장)’로 칭송받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 장기간의 저금리 정책으로 버블의 발단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1987년부터 네 번이나 FRB 의장을 연임하면서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발휘했던 그지만 지금은 비판의 목소리를 듣는 처지다.
특히 그의 저금리 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그는 2003년 6월 연방기금금리를 연 1%로 낮췄다. 게다가 이런 유례 없는 초저금리를 1년 동안이나 유지했다. 저축하면 바보가 되고, 대출받아 집이나 주식을 사야 하는 상황을 만든 셈이다.
그 결과 시중엔 돈이 넘쳤고 이게 주택시장으로 흘러들어가 버블을 일으켰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실제 미국의 집값은 그린스펀의 초저금리 정책 이후 2006년 정점에 이를 때까지 가속도가 붙었다.
이를 근거로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최근 “그린스펀이 주택가격 거품을 방치한 것은 운전하다 졸았던 정도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다른 방향을 본 것”이라고 주장했다.
◇투자은행 CEO=부실을 내고도 거액을 챙긴 투자은행(IB)의 최고경영자(CEO)들도 주요 용의선상에 올랐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의 회장을 지낸 잭 웰치는 이번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IB를 지목했다.
실적에 따라 연봉과 보너스를 받는 이들은 고위험·고수익 상품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다 회사를 거덜냈다. 파산 신청을 한 리먼브러더스의 리처드 펄드 CEO는 지난해 말 보너스를 현금으로 1375만 달러나 받았다.
JP모건으로 넘어간 베어스턴스의 제임스 케인 전 CEO가 받은 성과급 보너스도 4000만달러에 이른다. 직원들도 돈잔치를 했다. 지난해 월가의 5대 IB가 생존해 있을 때 직원들에게 지급한 보너스는 사상 최고치인 250억달러였다.
그러면서도 위험 관리는 제대로 하지 않았다. 단기 실적에 급급해 멀리 보지 못한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로 넘어간 메릴린치의 전 CEO 스탠리 오닐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관련된 파생금융상품 투자의 위험을 경고한 임원들을 해고하기도 했다.
세금으로 이들을 지원하려는 미국 정부의 계획에 반대하는 여론도 이 때문에 더욱 강해지고 있다. 미국 언론들도 이 같은 여론을 소개하며 부실 금융사들의 주주·경영진의 책임을 물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보도했다.
◇크리스토퍼 콕스=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감독 소홀로 걸렸다. 27일 뉴욕타임스와 월스릿저널에 따르면 SEC의 데이비드 코츠 감사관은 전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베어스턴스가 쓰러지기 직전 SEC가 실시한 감독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SEC가 베어스턴스가 몰락하기까지 수많은 위험신호를 놓쳤을 뿐만 아니라 리스크를 억제하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SEC가 베어스턴스의 감독에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보고서는 또 거래와 시장을 감독하는 SEC의 부서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고, 감독 대상 금융사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필요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이와 관련, 크리스토퍼 콕스 SEC 위원장은 투자은행들의 자율규제엔 근본적 결함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SEC의 감독 부실에 대한 내부 비판은 이번 금융위기와 맞물려 SEC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고 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톰, 샘, 스미스…=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쓰다 제때 갚지 못한 미국의 서민 채무자들은 버블 붕괴의 방아쇠를 당긴 셈이다. 저금리의 단맛에 빠져 과도한 대출을 받아 비싼 집을 장만한 게 죄라면 죄다.
금리가 올라 빚을 못 갚는 사람이 많아지면 부실 대출이 섞여 들어간 파생금융상품의 신용등급이 깎인다.
여기에 투자한 금융사들은 등급 하락에 따른 평가손실을 장부에 반영해야 한다. 이는 다시 금융사들의 신용등급을 깎아내려 손실이 손실을 부르는 악순환으로 빠져든다.
남윤호·김원배 기자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