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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의 현대건설 60년 영욕-22] '1분1초가 아까워 소변 바지에 지려'

개통일자 맞추려 강행군…모두 쓰러지기 직전

68년 8월 19일 착공할 때만 해도 옥천구간을 제외한 대전공구는 대림산업 아주토건 삼부토건이 시공에 참여했지만 2년도 안 돼 현대가 달라붙은 당재터널을 보고는 아예 그들 3사는 녹다운 되다시피 하고 육군 1202건설공병단까지 동원됐지만 난공사를 당해 낼 재간이 없었던 셈이다.

현대도 숙명이다 하고 덤볐지만 현장 기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소장까지 퍽퍽 나가떨어질 정도였다는 것이 김영주 당시 부사장의 회고였다.

"그때 이한림 장관이 명령을 내려가지고 대한민국의 건설국장이라는 국장은 다 모였습니다.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각도에 있는 국장들 건설업체 이사급들 전부 다 모였어요. 그만큼 개통일자를 맞추려니까 피가 마르고 다급했고 어려운 공사였다는 얘기지요.

하여간 한 달 정도 남았는데 우리 직원 중에 성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시피 했어요. 말단은 말할 것도 없고 소장이 맥을 못 춰요. 원체 피로가 겹치니까. 말단들도 다 대학 출신이고 최고학부 나온 귀한 자식들인데 그냥 쓰러져요.



도저히 안 돼서 목욕탕에 집어넣고 몸 좀 풀라고 하니까 첨에는 옷을 못 벗어요. 창피하다고. '이 자식들아 다 똑같아!' 소리를 지르니까 옷을 벗는데 보니 차마 눈뜨고는 못 보겠어.

옷 색깔하고 몸뚱이 색깔이 땀으로 더러워져서 악취까지 풍기고 똑같아. 발가락이 다 붙었어요. 신을 벗을 새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땀이 나도 작업화를 벗을 새가 없으니까 발가락 사이가 다 붙은 거예요."

-그렇게나 상황이 다급했군요.

"당재터널 공사가 그랬어요. 물론 다른 구간도 여유는 다 없었고 건설쟁이들 생활이 그때는 그럴 정도였어요. 콘크리트 쏟아 붓고 단 1초가 아까웠으니까. 운전수가 소변을 못 보고 바지에 싸고 그랬어요. 공구소장이 퍽퍽 나자빠졌다면 말 다한 거 아닙니까.

워낙 죽게 생겨서 대전에 사람을 보내가지고 의사를 데려오고 주사를 맞으라니까 나 혼자만 어떻게 맞느냐고 소장이 도망가요. 그걸 호통 쳐서 링겔(링거)을 맞히는데 사무실에서는 못 맞겠다고 그래요.

구석방에 집어넣고 주사를 꽂으니까 1분도 안 돼서 쓰러져 잡디다. 원체 피로해서 그랬겠지만 구석방에서 맞겠다는 것도 이유가 있었어요. 명색이 소장이고 이사인데 몸을 봤더니 때가 더덕더덕 붙었어. 먼지가 꽉 차 있는 터널 속에서 24시간 왔다 갔다 했으니 오죽했겠어요?"

당시만 해도 박 대통령의 최대 치적으로 추진된 프로젝트였고 일부에서는 차기 선거를 앞둔 선거용 공사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2차 5개년 계획의 성공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정치성을 떠나 고속도로 건설은 사실상 경제의 생명선이라는 데 이견을 달 수가 없었다.

세계적인 경제 분석 전문 기관들도 같은 견해였고 66년에 경제기획원이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에 한국의 교통조사를 의뢰했을 때 IBRD 조사단이 내한해 조사한 조사보고서(66년 6월)를 보면 '물동량에 비해 도로의 시설용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현대적 도로 개발 없이는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정주영 회장은 정치적 논쟁에 휘말릴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공사는 막판까지 왔고 현대건설의 조직을 확대하면서까지 고속도로 공사에 모든 것을 쏟아 넣는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68년 말 주주총회에서 이미 조직 확대를 선언하고 69년 1월부로 자신이 회장으로 정인영 부사장을 사장으로 이춘림을 건축담당 부사장 정순영을 관리담당 부사장 김영주를 중기담당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대대적으로 조직개편을 단행했고 김준식과 이명박을 비롯한 새로운 이사 승진은 준공식을 앞둔 70년 4월에 단행하는 것이다.

물론 이 시점에서 정 회장은 특별한 안목을 보이기도 했다.

고속도로 공사가 시작되고 인천항 증설과 각 지역의 댐 공사 등이 계속되고 도로포장과 건설경기 활성화가 예견되자 70년 1월 단양시멘트를 현대시멘트주식회사로 분리해 독립시키고 정순영 부사장을 사장으로 만들어 내보내는 것이다.

시멘트 생산량이 수요에 비해 불필요할 정도로 많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도 오히려 증산해야 한다고 그렇게 했다.

결과는 갈수록 시멘트 수요가 늘었고 심할 때는 웃돈을 주고도 구입하지 못할 만큼 절대량이 부족해 결국 정부의 당초 예측이 빗나간 셈이 됐다.

당재터널도 시멘트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면 예정된 공기를 맞추지 못했을 거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였다.

또 하나가 중장비기계공장의 대대적인 증설이었다.

이것이 훗날 현대중공업의 중장비 제작과 연결되기도 하지만 정 회장은 원효로에 있던 중기공장을 서빙고로 확장해 옮기고 그때부터 새로운 장비들을 대거 도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때 장비 도입이 바로 이명박 이사의 역할이었다.

태국 현장에서 막 돌아왔을 때는 과장이었지만 쾌속승진을 하면서 불과 몇 달 사이에 부장을 거쳐 이사로 만들어 놓고는 현대건설 자산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입해 장비를 구입하라고 특명을 내린 것이다.

이명박 전 회장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너무 엄청난 일을 맡으니까 오히려 웃음이 나더라고 했다.

"어마어마한 거야. 최신 장비를 그 당시 현대건설만 500만 달러어치를 수입했으니까 현대건설 총 자산이 500만 달러가 안 될 때라는 걸 생각해 보세요. 그 장비가 얼마나 되겠는지.

그걸 내가 맡아가지고 수입을 해서 경부고속도로 공사 현장 사방에 깔아놓는 건데 그때는 잠도 못 자는 거고 그걸 나보고 하라니까 기가 콱 차고 웃음이 나더라고요 그냥 허허헝. 그럴 거 아니에요. 그게 한두 푼짜리도 아니고 최신식인데. 그런데다가 만의 하나 잘못 구입된 장비가 고속도로 현장에 투입돼서 말썽이라도 생겨 보세요 그 후에 닥칠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요. 식은땀이 나는 거지.

그전에는 장비라는 게 미8군에서 불하 받은 걸 썼는데 소위 말하면 최신 유압식이라는 거. 그러니 명령을 받았으니까 하긴 하는데 기가 막히는 거지요."

-그 엄청난 일을 다른 중역도 많이 있고 장비기술자들도 있었을 텐데 왜 회장님한테 맡겼을까요?

"그건 정주영 회장한테 물어봐야지 뭐 정 회장 만나거든 한번 물어봐 허허헝."〈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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