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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까지 다스리는 '할머니 손맛'

나눔선교회 주방 봉사 수잔 손씨
하루 50인분 점심·저녁 요리 봉사로 3년

12일 오전 11시 30분. 마약·알콜 중독 재활 사역을 하고 있는 나눔선교회 2층 주방은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손길로 분주하다. 오늘은 처음으로 여학생들도 식사 준비에 나섰다. 메뉴는 스파게티와 샐러드. 몇년째 50여명의 점심과 저녁을 준비해온 수잔 손(80) 할머니는 펄펄 끓는 통에서 국수를 꺼내 벽에 던진다. “더 끓여야 돼. 벽에 붙어야 제대로 익은 거야.”

“잘 던지시는데요.” 말을 붙이니 자신있게 한 말씀 하신다. “예전에 농구선수도 했어.”

“여기서 밥 해 준 게 얼마나 됐어요.” “3년 4개월째야.” 손 할머니는 하루 하루 손꼽기나 했던 것처럼 생각하는 기색도 없이 적어놓기라도 한 것처럼 곧바로 대답이 나왔다.

손 할머니는 당시 미국생활 23년차였다. 4시 30분이면 새벽 기도에 가기 위해 일어나 새벽기도에 가던 어느 날. 새벽 4시 30분 새벽 기도에 갈 준비를 하면서 켜놓은 새벽 선교방송에서 나눔선교회 한영호 목사의 간증과 대화가 흘러나왔다. “무엇이 제일 힘드십니까?” “애들 음식이 큰 문제입니다.”

한 목사는 본 적도 없었고 마약은 있는 줄도 몰랐다. 손 할머니는 7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밥 해 주려 이곳을 찾았다.

“17년전 식도암 수술을 받았어. 7개월 정도 살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산 걸 보니 이걸 하라고 하느님이 오래 살게 해줬나 싶었지.”

하지만 막상 와 보니 만만치 않았다. 지금까지 봉사하겠다는 이들이 잘 해야 1주일 버티고 끝이었기 때문이었다. 연로한 분이 버티시겠느냐는 뜻이었을 게다. 다시 생각하고 왔다. “충분히 기도하고 다시 왔다. 하느님이 주신 사명감으로 왔다. 기분에 흔들린 것이 아니니까 맞겨 보라”고 했다.

한 달이 지났다. 누군가 물었다.

“아직도 오십니까?”

섭섭했다. “오지 말라는 얘기냐. 내가 부담되냐.”

“아니, 한 달 씩 오는 분이 없어서…”

밥 해 본 사람은 안다. 메뉴 정하고 만들고…. 점심과 저녁, 하루 두 끼 50인분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해대는 게 얼마나 힘들지. 그것도 여든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그걸 3년 넘게 해왔다.

“이렇게 많은 사람 밥 짓는 것 처음이었지. 그래도 요리에 취미가 있고 집에 사람들 부르는 걸 좋아했으니까.”

손 할머니는 직접 만드는 것도 좋아 지금까지 김치와 고추장, 된장도 직접 담궜다. 한 번도 사먹은 적이 없다.

“처음 오니까 참…. 자취하듯 알아서 해먹는데 햄이나 햄버거 이런 걸 먹는 거야. 사람이 먹는 대로 간다고 설탕 같은 거 든 거로 마약중독 고칠 수 있겠어. 난 조미료 안 써. 양파, 마늘, 버섯 넣고 천연 조미료 만들어. 처음엔 아이들이 안먹어. 이게 왜 좋은 건지 설명을 했지. 서서히 입맛을 바꿨어. 이젠 맛있다고 잘 먹어.”

할머니 식단은 두부와 된장, 채소 위주로 짠다. 고기는 될수록 적게 준다. 점심 때 쓴 스파게티 소스도 세 박스나 되는 토마토 껍질을 벗기며 직접 만든 것이다. 직접 만들다 보니 식비는 절반으로 줄었다.

기도도 했다. ‘마약 만드는 양귀비를 내보냈으면 치료될 음식도 주세요.’ 손 할머니는 아이들 치료에 음식이 한 몫 했다고 단단이 믿는다.

이곳에서 치료를 마친 데이비드 김 전도사는 할머니의 음식을 한 마디로 ‘맛있는 건강식’이라고 말한다. “조미료 안쓰시고요. 고기도 별로 안써요. 비지찌개 같은 거요. 처음엔 싫었는데 이젠 맛있어요. 그리고 절약하세요. 음식 남기는 거 굉장히 싫어하세요.”

손 할머니도 처음엔 그랬다. 아이들 눈빛이나 행위가 정상이 아닌 것 같고 못 있을 데가 아닌가 싶었다. 그럴 땐 기도하면 넘겼다. 남편도 잘 이해해 줬고 자식들도 협조해 줬다.

“노인네가 자존심이 있어서. 지금까지도 자식들한테 손 안벌리고 살았어. 대신 내가 하는 일에 반대 안해.”

지금은 애들이 다 잘 생기고 좋다. 너무 힘들어 하는 아이들은 집에 데리고 가기도 하면서 힘을 북돋아 준다. 아이들이 치료하고 나갈 때도, 나가서 결혼해서 잘 살고 잘 되서 인사 오면 그게 보람이고 기쁜이다.

그래도 나이는 못속인다고. 부엌에만 들어서면 자신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지고 힘이 솟지만 집에 가면 힘이 들어 탁 주저 앉는다.

매일 오전 10시 30분이면 나와 점심 만들어 먹이고 오후 3시 30분까지 저녁 준비 다 해놓는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체력이 허락하면 5년을 채우고 싶어. 1년 7개월 남았는데. 이젠 집에 앉아 있으면 머리 속으로 메뉴가 척척 돌아가는데….”

그러면서 손 할머니는 이 곳 걱정이다. “사역하는 목사님들이 불쌍하지.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어려움이 너무 많아.”

안유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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