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의 현대건설 60년 영욕-21] '날짜 못 맞추면 회사 문 닫을줄 알아!'
'박 대통령 스케줄 절대 못 바꾼다' 건설장관 엄포…13번이나 무너진 당재터널
당시만 해도 국가적 물류 인프라 공사라고는 했지만 건국 후 최대의 고속도로 개통식이 될 것인 만큼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것이었고 청와대로부터 확정일자를 받게 되면 하늘이 두 쪽 나도 변경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김영주 회장의 얘기다.
"문제는 경부고속도로 전체를 수원공구 천안공구 영천공구 등 7개 구간으로 나눠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건설업체 16개가 덤벼들었는데 맨 마지막 언양공구는 어느 업체라고 할 건 없지만 결국 중간에 나자빠지다시피 해서 현대건설이 마무리를 짓느라고 고생했어요.
그보다 더 절박했던 곳이 대전공구 중에 옥천구간에 있는 당재터널이 제일 난코스였단 말이죠. 거기만 뚫으면 경부고속도로는 다 끝났다고 할 정도로 힘들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어요.
근데 대전공구가 얼마나 힘들었느냐 한마디로 전체 공구 중에 제일 길고 경부고속도로에 대형 다리(長大橋)가 전부 32개인데 그중 최고 높고 긴 장대교 6개가 대전공구에 들어 있어요.
장대교 전체 길이를 합치면 8km가 조금 넘는데 우리가 건설한 다리 길이만 1480m예요. 그러니까 현대가 공사비는 km당 똑같이 받으면서 완전히 대박이 아니라 피박을 썼다고 했을 정도예요. 다들 그렇게 말했다고요. 전체 토공량(土工量)을 100으로 볼 때 37%를 우리 현대가 해야 했다면 말 다한 거 아닙니까?
그러니 중장비들을 거의 집결시키고 인력도 대부분 옥천에 투입할 정도로 전부가 매달린 겁니다. 그럴 정도로 난코스고 현장 조건이 안 좋아요."
-대전공구가 영천공구보다 더 길었습니까?
"더 길지요. 영천공구에 비해 1㎞ 정도 더 깁니다. 좌우간 청원군 옥산면에서 옥천군 청성면까지 74.4km가 대전공구인데 거길 지역 연고가 있는 동아건설에 안 맡기고 현대에 맡긴 이유를 나중에 보니까 알겠어.
최고로 험준한 지역이고 우리처럼 태국 같은 열악한 조건에서 고속도로 공사를 해 보지 않은 동아건설 가지고는 어림없는 구간이에요. 풍부한 경험도 중요했지만 잘라내야 하는 바위 덩어리만 해도 보고를 받아 보니까 254만㎡가 넘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중에 상하행선을 합쳐 1120m나 되는 문제의 당재터널이 이게 또 짝짝이 터널입니다. 상행선과 하행선의 터널 길이가 달라요. 터널이 휘어 있는데 60m나 차이가 납니다. 상행선 터널이 더 긴 겁니다.
터널 길이가 다르면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 터널을 빠져나오면 바로 강이니까 연결되는 대교가 또 '장애 다리'가 돼요. 한쪽은 길고 한쪽은 짧고. 그런데다가 터널이 길면 길수록 돌출 악재가 많이 나타나게 마련인데 터널의 항문 쪽에 배수가 잘 안 돼요. 그럼 물이 고인다는 얘기죠.
하여간 악조건이라는 악조건은 다 갖췄고 그런 중에서도 제일 이상한 것이 대부분 터널공사를 해 보면 연한 암석에서 점차 강한 암석이 나타나거든요?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에 6개 터널이 있지만 5개 터널은 전부 연암에서 강암으로 이어져요. 당재터널만 잡석층이 나와요.
그러니까 암반의 맥이 편마암에서부터 가지각색의 암반 맥이 형성돼 있더라 그거죠. 그러니 뚫어 놓으면 무너져 내리고 뚫다가도 무너져 내리고 좌우간 뚫는 도중에 13번이나 낙반사고가 발생했으니 말이지요."
-전혀 모르고 공사에 들어갔다는 말씀 아닙니까.
"60년대에 뭘로 암반 측정을 합니까. 그런 장비나 기술이 있어요? 그때 전체 공구소장을 당시 이사였던 양봉웅 회장(전 고려산업개발 회장)이 맡았고 건설사무소장을 지영만 소장이 맡았나 그랬는데 전부 예정했던 공기 안에는 어림없겠다는 겁니다.
그 당시 국내에서 터널만큼은 자타가 인정했고 따를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유명했던 이가 공영토건에 있던 이문옥씨예요. 그이도 와서 보고는 완공 예정일로 잡은 게 6월30일인데 그때까지는 턱도 없고 12월이나 돼야 가능하겠다는 겁니다.
아주 빨리 몰아대도 9월 전에는 어림없다는 거지요. 국내 최고의 터널 전문가라는 사람이 그렇게 얘기를 하니 죽을 노릇 아닙니까? 개통일자는 이미 7월 7일로 잡아놨는데 말이요.
그건 대통령이 참석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잡은 것도 아니고 청와대와 건설부가 협의해서 잡는데 한 번 결정해 놓으면 바꿀 수가 없는 걸로 돼 있단 말이죠."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는 천재지변이 아닌 한 변경이 있을 수 없겠지요. 권위도 권위지만 시간을 쪼개서 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그게 사람을 잡는 일이에요. 감히 대통령 스케줄을 건설업자가 바꾼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우리도 그걸 안단 말이죠. 그러니까 그때 건설부장관이 이한림 장관인데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를 받았을 것 아닙니까?
이문옥이라는 사람도 이 장관이 가 보라고 해서 왔었거든. 얼굴이 상기돼가지고 언성이 높아지는데 이 장관이 뭐라고 했는지 압니까?
'당신들 분명히 각오해. 일정 변경은 절대 있을 수가 없어. 정주영 회장도 가능하다고 해서 잡았는데 단 하루라도 개통식 날짜가 늦어지면 각하 모시고 하늘에서 헬기로 준공식을 할 거야. 그럼 어떻게 되는 줄 알지? 너희 회사 문 닫아야 돼!'
명예회장님이 언제 가능하다고 했어요? 자기네들이 잡아 놓고. 그렇지만 막 공갈을 치고 그러니 명예회장님인들 아무리 배짱 좋고 유들유들해도 개통을 늦출 수가 있어요? 굉장히 당황했지요.
그래가지고 아예 공사현장에서 살다시피 하셨어요. 그렇게 되니까 나한테 만사 제치고 상행선 맡으라고 말이야. 하행선은 지 소장인가 이 소장인가 맡고. 그때부터 전쟁입니다."
14개 국내 기술용역업체가 실시설계를 16개 건설업체와 3개 군 공병단이 참여하고 기술지원은 미국 디루케인 인터내셔널이 했지만 1차 서울~수원 구간 완공에 이어 최종 대전~대구 구간만 완성되면 완전 개통인데 완공 한 달여를 남기고 '당재 귀신'한테 발목이 잡혔다는 것이다.〈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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