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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의 현대건설 60년 영욕-20] 'km당 1억원, 지금은 생각도 못해'

이춘림 전 회장도 성장기의 인적자산과 그들의 경험이 사실상 현대건설의 총체적인 자산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현대가 공사한 것은 주로 미8군 공사하고 미 제5공군 공사였는데 그런 공사를 통해 새로운 장비도 투입하고 그러면서 기술자들은 영어를 하게 되고 관리자는 관리능력이 늘고 그랬던 게 사실이지요.

내가 요전에 어떤 분을 만났더니 '정주영 회장은 행운아다' 그렇게 전제하고 얘기를 하던데 사업하는 사람이 운 없이 돼요? 그러나 국제화된 인력이 없었던들 그 엄청난 공사들을 소화하지 못했을 겁니다. 태국 공사도 마찬가지고.

그 전에는 국제 시방서를 해석하려면 영문과 나온 사람들을 시켜서 이렇게(15cm정도) 두꺼운 걸 며칠씩 걸려 밤새도록 번역했어요.



그런데 영문과 출신들이 번역해도 무슨 얘긴지 몰라요. 기술자가 번역한 게 아니니까. 전부 기술용어고 전문용어투성인데 그걸 봐야 무슨 얘긴지 아나.

그러니까 기술자들이 다시 하나하나 사전을 찾아가면서 그걸 공부하기 시작한 겁니다. 바로 거기서 국제화된 인력들이 배출되는 거예요. 전에 있던 사람 가지고는 도면부터 해석이 안 되니까 말이지.

가령 오산.수원.군산.대구 비행장 탄약고 여러 가지 PLO 시스템 등의 공사를 할 때마다 회사 안에 '외국공사부'라고 있었지만 거기선 자금 신청하는 일만 하고 기술자들이 전부 영어를 하면서 공사를 진행했던 겁니다.

그랬으니까 65년에 태국 월남 괌 그렇게 동시다발적으로 공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이고 자꾸 해외공사를 넘볼 수 있었던 거지요. 그걸 인적자원 외에 다른 뭘로 설명할 겁니까."

어쨌든 태국에서의 경험은 곧바로 한국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 고속도로를 건설한다고 할 때는 견적을 또 '짜게' 냈다.

태국에서 그만큼 비싼 수업료를 내고 견적이란 이런 거다 하는 걸 배우고 터득했으면 충분히 이익이 나게 견적을 뽑아 제출해야 했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물론 박 대통령의 집념과 당시의 국가 재정 형편 때문에 최저가로 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문제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서도 건설 업계에서 엉뚱하게 욕을 먹기도 했다.

현대건설의 견적가 때문에 참여했던 다른 건설업체들이 숱하게 도산했다는 것이다. 김영주 한국프랜지 명예회장은 당시 얘기를 하면서 오히려 웃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는 얘기였다.

"하하하 쓰러진 회사가 하나 둘이 아니었으니까요. 우리가 일답게 한 게 고속도로공사고 태국에서 배운 걸로 박 대통령이 고속도로를 해야 된다고 했을 때 제대로 써먹었는데 그게 또 우리로서는 욕 바가지를 얻어먹은 공사가 됐으니 말이지요 하하.

일을 해 보면 실력이 있거나 많이 아는 사람이 고생하게 돼 있다는 말이 딱 맞아. 바로 경부고속 할 때 그랬단 말이오. 그게 68년 2월에 착공을 해 70년 7월에 완공해가지고 세계 고속도로 건설사상 가장 빠른 공기에 완공했다는 기록을 세운 거지만 그걸 맡을 당시에는 공개입찰이 아니고 지금으로 보면 수의계약입니다.

그러니까 박 대통령이 우리한테 고속도로를 좀 만들어라 할 때 이미 건설비가 km당 1억원이다 하는 게 대충 책정이 됐거든요.

그렇게 되니까 공구를 쪼개서 들어온 다른 건설업자들은 현대가 1억원에 하기로 했다는데 얼마나 요구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 수지가 맞지 않아서 죽어나고 공기를 맞출 수 없어서 죽어나고 그래가지고 우리한테 욕을 얼마나 퍼부어대는지 말이야 하하하.

결국 나중에는 현대가 다 맡게 되고 그때부터는 우리가 또 죽을 고생을 하는 겁니다."

-고속도로를 km당 1억원에 공사했다는 건 두 번 다시 나올 수 없는 견적이 됐겠지요?

"아마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불가능할 겁니다. 모르지 북한에서는 인력을 전부 동원해 인건비를 하나도 안 들이면 가능할지. 그렇지만 거긴 장비나 기술이 없어 국제규격으로는 어림없을 겁니다.

그게 처음에는 328km로 설계했다가 인터체인지가 들어가고 코스가 조금 변경되고 논과 논 사이를 지나 다닐 수 있게 농지 터널을 만들어주고 교량이 생기고 하면서 나중에 보니 428km가 됐던 것 아닙니까?

그걸 429억원에 했으니까 km당 1억원인데 하여간 그걸 만들자고 했던 건 그 당시 박 대통령하고 서독을 방문했던 김용태 전 장관이 제안했다고 그래요. 다음 선거에도 써먹자고 말이지.

입이 있는 사람은 다 반대했어도 밀고 가는데 그것도 처음에 건설부에서 낸 견적은 km당 7억원입니다.

박 대통령 생각으로는 꿈에서도 불가능한 돈이지요. 그 다음에 육군 공병단에서 건설부보다는 적게 써내야 미움을 안 받는다 생각하고 km당 5억원을 제시했어요.

어째서 2억씩이나 차이가 나느냐 알아보니 설계능력이 없어서 설계만 해 준다면 그렇다 그거지. 혼났지 대통령한테 하하하.

설계 능력도 없는 놈들이 견적은 어떻게 냈느냐고 말이야. 그래가지고 박 대통령이 태국 고속도로 했다는 걸 기억하시고 명예회장님을 부른 거예요. 그때 권기태 부사장이 같이 들어갔어."

경부고속도로 공사비가 중요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알려진 대로 총 길이 428km 중 교량 281개소 터널 6개소 공기 2년 5개월 등은 숫자적 의미를 뛰어넘지는 못한다.

장비 기술 경험 여러 가지 열악한 여건에서 많은 건설 역군이 희생됐고 그런 가운데서도 정 회장과 현대건설이 산업의 동맥이라고 불리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희생에 가까운 열정과 집념을 보였던 것이 오히려 이 시점에서는 더 중요하게 부각되어야겠다는 것이다.

-지금 같으면 상상하기가 어렵겠지만 공사 도중에 희생자가 많았잖습니까. 회장(김영주)님께서 당시 총감독을 맡으셨는데 사고가 났을 때 현장 분위기라든가 인식들이 어땠습니까.

"송장하고 같이 잠을 자야 됩니다. 내가 그때 상무였는데 그 무렵만 해도 계산적이거나 이기적이라는 건 참 없었다고 할 수 있고 모두가 건설역군이라는 긍지로 울면서도 극복했어요.

사람이 죽었는데 시신을 옆에 놓고 같이 술 먹고 자고 그랬습니다. 요즘이라면 그게 상상이 됩니까? 당장 공사 중단하고 사고 조사반이 달려오고 유가족들이 팔촌까지 달려와 난리가 나겠지요.

참 순수하고 열정으로 극복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고 그래서 나중에 희생자들을 기리는 충혼비를 세워주고 그랬지요. 근데 제일 난코스고 희생자가 많았던 곳이 당제터널입니다." 〈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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