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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불패' 깨지나···불황 안전지대에 빨간불 '깜빡' 불가리·오메가 등 주가 하락

명품시계 리슈몽 주가 하룻새 4.8% 하락도…대중화 전략 수정할듯

'명품업계는 불패'라는 신화가 깨지는가. 고유가와 신용경색 경기침체로 전 세계가 신음하는 가운데 그동안 불황에도 '면역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온 명품업계마저 타격을 받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게 이탈리아 명품업체 불가리다. 불가리는 보석은 물론 시계.핸드백.향수.액세서리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와 휴양지 발리 등 럭셔리 호텔.리조트 분야까지 진출했다.

그런데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 대단한 명품회사의 주식이 로마 증시에서 하루아침에 8.5%나 떨어졌다. 지난 8월4일의 일이다. 그 사흘 전에 있었던 CEO의 발언 때문이다.

이 회사의 프란체스코 프라파니 CEO는 지난 8월1일 "올해 매출과 이익이 당초 목표로 잡았던 8~12%의 성장을 이루기 힘든 상황"이라며 "달러와 엔화 약세를 감안해도 8~10% 정도의 실적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엄살로도 볼 수 있는 CEO의 발언 하나가 왜 이렇게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온 것일까. 이는 명품업계는 불황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다. 명품업계에서는 그동안 엄살이라도 이런 경고성 발언은 없었던 것이다.

FT에 따르면 프랑스 은행 소시에테 제네랄의 애널리스트들은 "프라파니 대표의 우려는 명품업계에서 나온 첫 경고"라며 "이 업계에서 이런 일이 더 많이 터져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스위스의 명품 시계업체들의 주가도 이날 함께 하락했다. 카르티에 피아제 예거-르쿨트르 브랜드를 보유한 세계적인 명품 시계업체 리슈몽의 주가는 하루만에 4.8%가 떨어졌다. LVMH와 PPR에 이어 세계 3위의 명품 그룹인 리슈몽은 스위스 증시에선 시가총액 8위의 대기업이다.

브레게.오메가 브랜드를 보유한 스와치 그룹도 이날 2.6%가 하락했다.

사실 올해 들어 명품업체의 주가는 꾸준히 하락세를 보여왔다. 세계 1위의 명품 그룹인 LVMH는 1월 이후 주가가 15%나 빠졌다. LVMH가 어떤 그룹인가. 하나하나가 세계적 브랜드인 60여 개의 자회사를 두고 있는 명품업계 선두 기업이 아닌가.

패션 브랜드 구치와 로웨를 보유하고 디오르와 루이뷔통의 핸드백을 판매하는 회사다. 직원이 7만2000명에 이르는 이 그룹은 지난해 매출이 260억 달러에 육박했다. 그런 회사의 주가가 이 정도로 빠진 것은 어두운 뉴스가 아닐 수 없다.

리슈몽의 주가 또한 1월 이후 11%가 빠졌다. 1위와 3위 기업의 주가가 이 정도로 빠졌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것도 불패 신화를 자랑하던 명품업계에서 말이다. 영국 업체 버버리의 주가는 1월 이후 24%까지 떨어졌다.

HSBC의 명품업체 담당 애널리스트인 안투안 벨주는 이와 관련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서 명품업계만 홀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비관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세계적인 불황임을 감안하면 명품업계의 매출이 생각보다는 덜 떨어졌다는 것이다.

일본을 제외하곤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의 매출이 증가한 데다 미국의 구매력도 상당히 탄탄했기 때문이다. LVMH는 올해 상반기 매출이 약세를 보였던 달러와 엔화 환율을 감안하면 12% 증가했으며 매출이익은 9% 늘었다고 7월 말 발표했다.

세계 최대 보석 업체이기도 한 리슈몽은 2분기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13% 늘었다. 가죽제품 메이커인 에르메스 인터내셔널과 세계 2위의 명품 그룹인 PPR 그리고 스와치도 최근 매출 실적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나 유럽의 위축된 경기가 명품시장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지만 최근 갑부들이 크게 늘고 있는 러시아.중국.인도 등 신흥시장에서 매출이 늘어 이를 상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중국 면세품 집단의 리강 사장은 "2007년 중국의 명품 소비가 80억 달러에 이르렀다"며 "중국은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명품 소비국"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명품 소비는 연 평균 20%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와 인도의 부자들도 오래전부터 명품 사냥에 나서고 있다. 오일달러로 흥청대는 중동 산유국에서 스포츠카를 포함한 고급 명품을 자가용 제트기로 나르는 갑부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실적을 공식 발표하지 않은 명품 업체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명품업계가 전반적으로 불황으로 인한 타격을 덜 받았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게 FT의 지적이다.

시티그룹의 명품업계 분석 담당인 토마스 쇼베는 "전반적으로 볼 때 명품업계는 매출 실적이 좋으며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아직 실적을 내놓은 업체가 별로 없어 전망을 보다 분명히 하려면 발표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명품업계의 항공모함 격인 LVMH의 실적이 상당히 괜찮다는 점을 미뤄 볼 때 일단은 안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의 상당수는 불가리의 문제는 그 회사 자체의 것일 뿐 명품업체 전반의 상황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FT는 "상당한 부자들은 전 세계적인 경기 순환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어중간한 부자들이라면 그들이 차고 있는 값비싼 허리띠를 조금 더 졸라매고 명품을 조금 덜 살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경기 불황으로 명품 소비층이 분화하고 있다는 소리다.

명품은 원래 극소수의 부호들만 사용하던 극상의 상품이었다. 불황에도 소비에 별 변화가 없는 계층이다.

하지만 관련 그룹들은 엄청난 광고와 마케팅 비용을 들여 이를 대중화해 왔다. 그 결과 소비층이 크게 넓어졌다. 그러나 세계적인 불황으로 이러한 마케팅 전략에 어느 정도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앞으로 명품업계의 VVIP 마케팅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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