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2008] 여자 태권도 금메달 황경선, 늘어난 인대·부러진 뼈…세계가 놀란 투혼
4년전 올림픽 동메달 한 풀어
왼쪽 무릎 인대는 늘어나 매트에 발을 디디기도 힘들었다. 오른 발등의 뼈는 으스러졌다.
그가 기댈 곳은 진통제와 강한 정신력뿐이었다. 더욱이 결승 상대는 카린 세리게리(캐나다)로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강호였다.
1라운드에서 몸통 공격을 허용해 먼저 1점을 빼앗겼다. 그러나 2라운드에서 왼발 돌려차기로 승부의 균형을 맞춘 뒤 3라운드에서 회심의 왼발 뒤차기로 2-1의 역전승을 거두고 정상에 올랐다. 4년 전 동메달의 한을 풀어버린 감동의 드라마였다.
1회전에서 아랍에미리트(UAE)의 공주 알 막툼을 시원한 얼굴 공격으로 제압한 황경선은 8강전에서 상대 선수와 부딪혀 왼무릎 부상을 당했다. 왼발을 절룩거리면서도 4강에서 글라디스 에팡(프랑스)을 서든데스까지 가는 접전 끝에 1-0으로 누르고 결승에 오르는 투혼을 발휘했다.
그는 우승을 확정한 뒤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그동안 자신을 무겁게 누르고 있던 고통과 부담을 씻어내는 카타르시스였다. 4년 전에도 그는 눈물을 흘렸다. 2004년 올림픽에서 그는 첫 경기에서 패배한 뒤 패자 부활전에서 힘겹게 동메달을 목에 걸고 서럽게 울었다.
아테네의 눈물이 패배자의 쓰라린 좌절과 아픔이었다면 베이징의 눈물은 승리자의 환호다. 아버지 황도구(48)씨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푼 기쁨이 녹아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옷 수선 가게를 운영하는 황씨는 딸을 볼 때마다 미안함이 앞선다.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 때문에 뒷바라지를 충분히 해주지 못해서다.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그는 잘 안다. 그는 서울체고 3학년 때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 최종전에서 세계선수권 2연패의 주인공인 김연지를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첫 고교생 대표가 되면서 금메달 0순위로 꼽혔다. 모든 방송국이 그의 경기가 벌어지는 날 집으로 몰려왔다.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손님'들에 황씨는 얼떨떨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딸이 1회전에서 패배하자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썰물처럼 빠져나갔다.황씨는 "간다"는 인사도 없이 훌쩍 떠나버린 사람들에게 야속함과 매정함을 느꼈다.
아테네에서 쓸쓸히 돌아온 그는 이 같은 사실을 몰랐다. 태권도가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만 굴뚝 같았다. 그는 어느 날 아버지가 술을 마시면서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엿들었다. 딸의 패배보다 야속한 인심에 대한 아버지의 탄식이었다. 순간 그의 가슴 한구석에서 불덩이가 솟구쳤다. 못난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끊었던 술과 담배를 하는 모습이 슬프게 느껴졌다.
나약한 마음을 먹었던 그는 "여기서 쓰러지면 나는 영원히 불효를 하게 된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경기 후 그는 "통증이 심했지만 무릎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싸우겠다는 각오로 결승에 나섰다. 부상이 없었다면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베이징=김현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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