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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의 현대건설 60년 영욕-17] '모두 피해, 잘못하면 개죽음이야'

한국 근로자들 현지인과 합세해 폭동…'금고 지킨 이명박' 정회장 눈에 각인

한 시절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떠오른 이명박 전 회장에 대해 국민은 현대건설이 국민적인 우상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명박'이 현대건설을 국민기업으로 만들어낸 광고 모델인 셈이었다고도 했다.

현대건설 때문에 이명박이 유명해졌는지 이명박 때문에 현대건설이 유명해졌는지 저울질은 해보지 않았지만 그만큼 이명박과 현대건설이 동일시 된 것은 사실이었다.

일반 국민이 끊임없이 가졌던 궁금증의 하나는 이 회장이 승진할 때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고속승진을 하는가'라는 의문이었다.

필자도 그것을 물었다. 그럴 때면 이 회장의 대답은 늘 하나였다. "그건 나한테 물을 게 아니라 사주인 정주영 회장한테 물어봐야지 뭐 허허헝"이었다.

현대건설에 몸을 담고 있는 중역들조차 이 회장에 대해 '대단한 사람이지…'까지만 답을 하고 그 이상은 궁색한 추측으로 마감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다 보니 태국에서 금고를 지킨 것이 결정적으로 정 회장의 눈에 각인됐고 '스타 이명박'으로 키워진 계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도 많이 했다.

여기에 대해서도 이 회장은 "금고를 지켰다고 진급이 빨랐으면 그 후에 덩치 좋은 친구들은 서로 맡으려고 했겠네" 하면서 웃었다. 결국 고속승진에 대한 궁금증은 다음 기회에 소개할 수밖에 없겠다.

지난 회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른바 금고 사건은 태국 고속도로 공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현대건설의 대표적인 대형 사건이었고 금고가 털렸으면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난동 괴한들에게 현대건설이 무너졌다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만신창이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금고 사건은 현대건설을 지켰고 직원들의 자존심을 굳건히 했다. 금고 사건을 집중적으로 들었다.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끝까지 현대 간판을 내리지 않고 양질의 고속도로를 완성했습니다만 그런 과정에서 금고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셨다면서요.

"그게 배경이 좀 있는 건데 어찌 생각하면 첫 해외공사다 보니까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 거야.

무슨 얘기냐 하면 그때는 현대건설이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고 직원 중에 나갔다 온 경험자도 없고 그랬잖아요.

고급간부도 해외를 잘 못 나갔을 때니까. 해외파견 신입사원도 공채를 해서 뽑았지만 현장에서 일할 근로자들도 모집을 했다고요. 지금은 다 근로자라고 하지만 노무자를 모집했는데 그게 결국은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배경이 됐다고 보는 거예요.

해외에 나갈 근로자를 뽑는다고 하니까 그때 당시에는 요즘 같이 컴퓨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전과기록이 제대로 보관돼 있지도 않고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뭐 깡패 주먹 쓰는 친구들 심지어 돈 떼어먹고 숨어 지내던 사람까지 구름처럼 몰려들어도 가려낼 재주가 없는 거야. 그랬을 거 아니야.

그래도 그중에 골라서 한 200명을 데리고 나갔어요. 물론 우수한 사람이 많았겠지만 적지 않은 숫자가 섞여서 나갔다고. 그 친구들이 일을 하다가 어느 날 현지인들하고 합세해 난동이 일어난 거예요."

-한국에서 데리고 나간 노무자들이 태국 현지인들을 규합해 난동을 부렸다는 겁니까?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쓸 현지 인부들도 우리가 수백 명 채용했는데 고약한 친구들이 그들을 규합한 거지.

그중에는 말이 현지인이지 누가 괴한인지 누가 공산 게릴라인지 구별이 안 된다고요.

하여간 불만이 쌓였어. 아까도 얘기했지만 밀림지대고 늪이고 얼마나 악조건이었겠어요. 열악했다는 건 나도 동의한다고.

요즘으로 말하면 근로조건이 뭐 말이 아니지. 새벽부터 일하고 밤 새워서 이동하기도 하는데 숙소도 불편하고 하니까 여러 가지로 불만이 쌓였을 거라는 건 말을 안 해도 알지.

나도 그때 사실은 잠을 부족하게 잤다고. 그럴 수밖에 없어요. 첫 해외공사라는 부담감도 있는데다 신입사원이고 했으니까 내가 부지런해서라기보다 말단사원이라 모든 일을 다 해야 되는 거잖아. 자고 싶은 잠 다 자고 무슨 일을 해요.

정말 참 요즘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고 아득한 옛날이지. 밤12시 넘어야 겨우 눈을 붙이고 그것도 사무실에서 그대로 자고 새벽에 나와서 또 일하고 말이야. 그런데다가 남태평양 지역이 얼마나 더워요 여름에 한참 더울 때는 40도가 넘잖아요.

그랬어도 신입사원이 근무하는 사무실은 에어컨조차 없었다고. 그래도 아무 불평도 후회도 없었고 아주 보람을 느끼면서 일했다고.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좀 다르지."

-직원하고 일반 노무자들하고는 정신 자세부터 좀 달랐겠지요.

"바로 그런 건데 이 사람들이 또 주먹을 쓰다가 태국까지 왔으니까 나름대로 참아왔겠지만 사회에서 놀던 버릇이 있을 거 아니야. '내가 왕년에는 이러이러했는데' 하면서 말이지 허허헝.

하여간 하루는 이 친구들이 현지인하고 계획적으로 술을 마셨다고. 그 더운데 엄청나게 마시는 거야. 저녁이라고 해도 지열이 있으니까 덥다고요.

그런데도 계속 마시니까 그때부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 거야. 그 당시 정주영 회장을 빼면 상주하면서 지휘한 사람 중에 상무가 최고 책임자고 중역이 한 다섯 명 있었어요.

그건 현대건설로 봐서 어마어마한 조직이 나와 있는 거라고. 그럴 정도로 고속도로에 집중했어요.

더구나 상무는 정 회장님 매부 되는 김영주 상무야. 지금은 연세가 많을 텐데 '왕 상무'라고. 그래가지고 우리는 감히 그 양반 앞에서는 얼굴도 못 들고 했던 그런 위치였다고.

근데 이놈들이 술을 다 마시더니 몰려오는 거야. 그러고는 행패를 부리는데 아주 그냥 굉장한 광경이 벌어졌다고요.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군인이 뭐 거기에 있을 이유도 없고 난장판이야. 아예 총 칼을 막 들고 설치니까 말이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정신없이 전부 피신을 했다고.

중역들이 나보고도 피하라고 소리치고 말이야. 까딱 잘못하면 그대로 죽는 거거든. 정말 개죽음을 당한다는 말이 거기서는 실감나더라고."〈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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