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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3주년 맞는 서대문 형무소 동지 박태철·김신순 부부

'고개드는 독도 침탈 야욕 정신 바짝 차리고 막아야'…1944년 항일 잡지로 함께 옥고 치른 후 결혼

"서대문 형무소에서 함께 옥고를 치르고 나와 이듬해 결혼했어요. 그때 남편은 29살이었고 나는 21살이었지요."

브롱스에 사는 박태철(90).김신순(82)씨 부부. 겉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이들 부부의 인연은 일제 강점기 침울한 시대에 맺어져 지금까지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다. 매년 광복절을 맞이하는 이들 부부의 감회는 남다르다.

박씨는 지난 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서훈받은 애국지사다. 아내 김씨도 일경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지만 당시 기록을 찾을 수 없어 독립지사로 인정받지 못했다.

대구 출신인 박씨는 대구 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가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기계기술양성소에 먼저 들어갔다. 그러나 현지에서 한국 학생들이 일본인들로부터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데 분개한 박씨는 귀국 후 인천에 있던 조선기계제작소(朝鮮機械製作所)에 취업해서 본격적인 민족의식 고취 운동을 시작했다.



그때가 1942년. 박씨는 이곳에서 아내 김씨를 처음 만났다. 조선기계제작소는 당시 일제가 잠수함과 석유시추 장비 등을 만들던 군수 공장이었다. 박씨는 이곳에서 엔지니어로 아내 김씨는 사무직원으로 일했다.

"남편은 공장의 한국인 직원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악기도 연주하고 시도 쓰며 민족의식 고취운동을 이끌었죠. 하모니카와 기타 연주를 잘했지요. 감시가 심하던 시절이라 시를 쓸때는 조국을 '그대' '나의 님'으로 표현하곤 했지요."

정부 자료에 따르면 박씨는 당시 동료직원 임창빈.이도열.노명일씨와 함께 한글로 문학작품집을 냈다. 민족의식이 강한 작품을 게재한 '목양'이라는 잡지였다. 박씨는 44년 6월 '목양 2호'를 제작하기 위해 원고를 모아 등사하다가 동료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아내 김씨도 집으로 들이닥친 경찰에 체포돼 영문도 모른 채 경찰에 압송됐다.

나중에 알고보니 함께 근무하던 한국인 직원중 한명을 통해 이들의 모임이 경찰의 귀에 들어간 것이었다.

남편 박씨는 "1년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발에 동상이 걸리는 등 고생을 했다"며 "그러나 건강한 체질이라 큰 문제는 없었다"고 말했다. 아내 김씨는 기소 유예로 형무소에 들어간 지 4개월만에 풀려났다. 박씨는 90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지금도 건강하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종교생활에 열심이다. 이들 부부는 지난 2000년 먼저 미국에 온 자녀의 초청으로 이민길에 올랐다.

최근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데 대해 아내 김씨는 "나쁜놈들"이라며 "우리 국민들은 물론이고 특히 정치인들이 정신 바짝 차려야 하고 국력을 더 키워야 한다"고 분개했다.

남편 박씨는 "요즘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잇따라 나오는 것만 봐도 대한민국 국민의 우수성을 알 수 있다"면서 "젊은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세계 어디에 살건 대한민국을 알리는데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준용 기자 jyah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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