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량 한식…'외국의 맛'을 넣어라 '오트 퀴진'을 향한 한식요리의 변신
한국음식-세계화, 돼지갈비·닭날개찜·젓갈로 노린내 없애
말린 전복과 횡성 한우로 만든 떡볶음.
주로 대형 레스토랑과 호텔에서 선보이는 오트 퀴진은 다양한 요리를 조금씩 여러 코스로 내놓는다. 모든 과정을 섬세하게 준비하고, 최대한 다채롭게 표현한다. 한마디로 음식에 과학과 예술, 그리고 스타일이 절정의 화합을 이루는 경지다.
그렇다면 이 낯선 세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한식 오트 퀴진을 선보일 수 있느냐의 기로에 서 있어서다. 만일 그럴 수 있다면 한식은 중국이나 일본 음식, 인도나 태국 음식의 위상을 능가할 가능성이 높다.
오트 퀴진에 도전하고 있는 한식, 그 감칠맛 나는 현장을 찾았다.
◇'한식 오트 퀴진은 우리의 자존심'
한식 오트 퀴진을 위해 찾은 곳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가온.
광주요 그룹 조태권(60) 회장이 우리 식문화의 세계화를 내걸고 세운 한정식집이다.
이들은 지난해 미국 나파밸리에서 현지 미식가들에게 그들 입맛에 맞춘 한식을 선보여 극찬을 받았다.
최근에는 이 집 홍계탕(홍삼+오골계)을 맛본 아랍에미리트(UAE) 왕족 12명이 그릇째 비행기로 주문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가온팀이 새로 선보인 요리는 전복 떡볶음 쇠고기 떡볶음 새우젓 돼지갈비 새우젓 닭날개찜 머랭(프랑스식 계란과자) 새우연근전. 시판하지는 않는다.
고운 갈색의 조선간장에 어우러진 전복과 횡성 한우는 떡의 연한 표면을 물들여 반짝반짝 빛이 났다.
짠내가 없는 새우젓은 닭날개와 돼지갈비의 노린내를 깔끔하게 없애주었다. 머랭으로 부풀려진 새우연근전은 찔러보고 싶은 폭삭한 느낌이다.
전복의 씹히는 느낌도 독특하다. 말렸다 불리는 과정에만 4일이 걸렸다고 한다. 불리는 과정에서 생강 마늘 등을 첨가했다.
쇠고기는 횡성 한우를 전반적인 밑간에 쓰이는 조선 간장은 조리장들이 직접 담갔다.
하지만 간은 우리나라 사람들로서는 다소 싱겁게 느낄 정도였다. 동행한 경희대 최수근(56.조리과학과) 교수는 "우리 음식이 세계화 되려면 맛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외국인들 입맛을 기준으로 했다는 뜻이다.
이같은 새로운 스타일의 한식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외국인 입맛에 맞춘 한식은 정통 한식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에대해 가온 김희진(40) 총주방장(광주요그룹 외식사업부 이사)은 "부대찌개를 한식으로 인정하는 데 꼭 40년이 걸렸다"며 "세계인의 입맛에 맞추거나 한국 재료가 아닌 것으로 만든 한식은 한식이 아니라 퓨전이라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음식전문가들은 "오트 쿠튀르의 존재 유무에 따라 패션 선진국이 갈리듯 세계적으로 음식 문화를 자부하자면 오트 퀴진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재료·조리법 훌륭해도
비법 공유 안돼 아쉬움'
▶ 한식 세계화 걸림돌
세계미식문화연구원 송희라(41) 원장은 얼마 전 외국인 손님과 서울의 이름 난 불고기집을 찾았다. 그런데 그 외국인이 반찬으로 나온 겉절이에 반했다. 샐러드 드레싱으로 쓰겠다며 겉절이 양념을 사고 싶다는 질문에 종업원은 이렇게 답했다.
“며느리도 모르는 비법이 담겨 있어서 팔지 않습니다.”
송 원장은 이 에피소드야말로 한국 음식 세계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내포한 것이라고 본다. “훌륭한 재료와 조리법이 있지만, 비법을 공유하지 않는다. 심지어 내 것만 정통이라고 하고 남의 방식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외국 전문가들도 한식 재료와 조리법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우리 궁중 음식의 뿌리가 오트 퀴진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는 전문가도 있다.
신라·리츠칼튼 호텔 총주방장을 역임한 스위스인 롤랜드 힌니(64·부산정보대 호텔조리과 교수)는 “오트 퀴진의 뿌리가 프랑스 궁중 음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은 훌륭한 오트 퀴진의 전통을 이미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진귀한 재료를 수많은 인력이 정성껏 조리해 바쳤던 우리 궁중 음식이야말로 말 그대로 오트 퀴진이었다는 얘기다.
전형적인 프랑스식 오트 퀴진은 요리 코스가 최소 15개에 달한다. 식당 역시 사전 예약을 통해 하루 40명 정도의 손님만 받는다. 이를 만드는 요리사는 100여명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가격은 1인분에 우리 돈으로 30만원(300달러)이상. 실제 우리 궁중 요리와 흡사한 면이 많다.
그렇다면 훌륭한 전통을 가진 한식은 어떻게 해야 세계적인 오트 퀴진으로 변신할 수 있을까. W호텔 총주방장 키아란 히키는 “과감하게 변화를 시도하라”고 조언한다.
“프랑스에서도 오트 퀴진은 정통 가정식이 아니다. 보여주고 감상하는 작품이다. 한국인들은 스타일리시한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왜 한식은 그렇질 못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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