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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BBK 주가조작' 첫 공판서 혐의 모두 부인

김씨 '난 미국인, 이런 재판 이해 안돼' 검찰 '궤변으로 한국 사법체계 우롱'

“미국 사람으로서 어이가 없다. 미국에선 조사 과정에 문제가 드러나면 (재판 자체를) 기각시킨다.”

 14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424호 법정. 주가조작과 횡령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경준(42)씨의 첫 재판이 열렸다. 김씨는 이날 자신이 미국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검찰 수사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김씨는 넥타이를 매지 않은 양복 차림으로 법정 경위들에 이끌려 법정에 들어섰다. 한국 법정이 낯선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김씨는 방청석 맨 앞줄에 앉아 흐느끼는 어머니 김영애씨도 보지 못했다. 어머니 김씨는 재판 시작 30여 분 전부터 법정에 나와 아들을 기다렸다.

 ◆“검사들 회유·협박했다”=재판장인 형사합의25부 김동오 부장판사는 김씨의 이름을 물었다. 김씨는 “크리스토퍼 김이고 태어난 이름은 김경준”이라고 대답했다. 우리말이 다소 어눌한 김씨를 위해 법원은 통역을 준비했다. 하지만 김씨는 일부 한자어를 제외하고 대부분 스스로 답변했다.

 피고인 모두(冒頭) 진술 순서가 되자 김씨는 작심한 듯 미리 준비해 온 원고를 꺼내 들고 자신의 이력을 소개했다. 그러곤 “한국에 들어와 대한민국 검사들한테 실망했다”고 검찰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그는 “검사들은 조사 과정에서 ‘재판은 괜히 하는 거다. 어차피 판사는 검사가 시키는 대로 한다’며 끊임없이 회유하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 사건은 너무 정치화됐다”며 “증거의 신빙성에 따라 판단해 주길 바란다”고 재판부에 주문했다.

 김씨는 “나는 미국 사람이다. 미국인으로서 이런 일들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체포돼 와서 미국에서 방어 증거를 가져오지 못했는데 미국에 서신조차 보내지 못하게 한다”며 “변호사 해임설까지 흘려 변호인 선택권까지 제약했다”고 말했다. “검사들이 국민 세금을 낭비해 개인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혐의에 대해선 부인으로 일관했다.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서는 “회사 인수를 위해 장내에서 주식을 사들여 주가가 오른 것인데 이게 불법이면 대한민국에선 정상적인 인수합병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변호인 김정술 변호사는 “부하 직원에게 여권과 미국 법인의 법인설립인가서를 위조하라고 지시한 사실도 없다”며 문서 위조혐의도 부인했다.

 ◆격분한 검찰=검사들은 김씨가 모두진술을 하는 동안 격앙된 표정을 지었다. 검찰 관계자는 재판이 끝난 뒤 “김씨가 근거 없는 궤변을 끊임없이 늘어놓고 있다”며 “걸핏하면 미국 사법체계를 들먹이며 우리 사법체계를 우롱하고 있다”고 흥분했다.

 앞서 김기동 부부장검사는 재판장에게 발언 기회를 얻어 “서신 제한은 서울구치소장이 결정한 것”이라며 “변호인도 이를 잘 알고 있다”며 김경준씨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어 “김씨가 인수합병 이후에도 해외에 있는 페이퍼 컴퍼니 주식관리계좌를 이용해 고가에 주식을 매도한 뒤 이익을 챙긴 증거자료를 이미 확보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부부장검사는 “계좌추적을 통해 김씨와 김씨의 누나 에리카 김이 개설한 해외계좌로 횡령한 회사자금이 들어간 증거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에 제출한 이면계약서를 돌려주지 않는다는 김씨 주장에 대해서도 “이면계약서는 증거물로 압수된 것이어서 압수물 반환 절차를 밟으라고 오래전에 이미 얘기해 줬다”고 설명했다.

 이날 재판에는 김씨를 직접 조사했던 서울중앙지검 김기동 부부장 검사와 수사검사 4명이 모두 나왔다. 김씨 측에서는 박찬종 변호사와 이회창 캠프 법률지원단장을 지낸 김정술 변호사 등이 참석했다.

글=박성우 기자 , 삽화=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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