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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25시]열살 생일 맞는 라디오 코리아

<김현일 중앙일보 논설주간>


라디오 코리아(R-KOREA)가 개국(開局) 10주년을 맞았다.

사실 다른 어느 조직체의 10주년이라면 스스로는 대견하고 흐뭇할 터이지만 남이 나서 뭐라 할 게 못된다. 요즘엔 열돌 쯤은 연륜 축에도 못끼니 말이다.

그런데 뉴욕.뉴저지 동포사회가 열살이 된 R-KOREA를 감회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여기에서 부쩍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가 보다. 척박한 이민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뿌리를 내린 뿌듯함을 R-KOREA의 열번째 돌이 되씹게 해주는 모양이다. 그리고 여기서 비롯한 일체감 탓인지 R-KOREA의 열돌 맞이에 진정 담긴 축하를 보내고 있다.

서울에서 온 코리안은 아니 뉴욕.뉴저지 동포라도 이곳에 온지 얼마 안되시는 분들은 이런 감동을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겨우 10주년인데…"라는 폄하나 던질 수도 있다.

맞다. 이는 뉴욕.뉴저지 실정에 어두운 사람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다. 서울-뉴욕을 직접 오가도 반나절이면 충분한 IT시대에 라디오를 운위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못해 괴상할 수도 있다.

게다가 거론하는 R-KOREA가 수십층짜리 맨하튼 사옥에 수억불대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 방송사도 아니다. 플러싱 공영주차장 옆 작은 건물 한층에 꾸민 스튜디오와 사무실이 전부다. 뉴욕.뉴저지의 대표적 한인 라디오 방송국이라지만 직원이래야 50명 미만이다. 사용중인 AM1660 채널 하나도 그나마 월30만달러를 내고 빌려 쓰고 있다.

"애걔걔"하며 가소롭다는 눈길로 보는 분들이 있을 게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진짜 철부지다. 그 정도의 R-KOREA가 뉴욕.뉴저지 동포사회를 선도하는 방송매체인 게 우리 코리안의 현실이며 숨길 수 없는 자화상이다. 내가 이 사회에서 대접받는 바로 그만큼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그러니 R-KOREA 오늘의 모습이 양에 안찬다면 가꾸고 키워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납득이 안간다면 한인 방송사를 일별해보자.

이국땅에서 한국어 방송을 한다는 것은 말그대로 우여곡절의 연속일 수 밖에 없었다. 채널을 확보 못한 코리안들에게 방송사업은 모험이었다. 고작 별도의 수신기를 장착해야 가능한 서브케리어는 발전의 장애였고 경영난을 가중시켰다.

미동부 최고(最古)의 라디오방송국은 필라델피아 김덕수 사장이 운영하는 중앙방송이다. 현재 필라중앙일보를 함께 경영하는 김사장이 1983년12월 서브케리어를 통해 한국어 방송을 시작한 이래 시카고 등지에도 방송사가 생겼으나 대개가 2년을 못버티고 무너졌다.

87년엔 엄호웅.엄호택 형제가 경영하는 뉴욕한국일보가 방송사업에 참여하면서 뉴욕엔 두개의 서브케리어 방송이 생겼다. 당시 라디오 가격은 150달러로 고가였으나 고국이 그리운 동포들의 호응은 대단했다.

그러나 한계는 뻔했고 89년 중앙방송은 뉴욕에서의 방송을 접었다. 또 1993년 AM방송시대가 열리면서 서브케리어에 의존하던 뉴욕한국일보의 방송도 사라졌다.

이렇듯 AM방송시대는 개막됐지만 혼돈의 연속이었다. 전문 방송인 부족과 자금난에 시달렸고 경영권 분쟁도 잇따랐다. 권영대 사장이 경영을 책임지면서 대충 정리됐지만 씁쓸한 기억들이 초창기 기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1997년2월 AM930kHz 시절의 방송사 이름은 AM KOREA. 지금의 R-KOREA 전신이다. 코네티컷 일부까지를 가청권으로 했다지만 들쑥날쑥이었다. 채널 소유주가 야구경기 중계방송을 한다고 시간을 뺏는 등 지금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 흔했다.

1998년2월 채널을 1480kHz로 이름을 라디오서울로 바꾸면서 24시간 종일방송시대가 열렸다. IMF로 고통받는 조국 돕기 캠페인 등 기념비적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2001년12월엔 AM740(WGSM)을 매입 한인이 소유한 최초의 라디오방송 기록도 세웠으나 1480kHz 임대권을 1년 먼저 반환하는 고통의 시기를 맞는다. 셋방설이 설움을 톡톡히 맛본 것이다.

대신 2002년3월 AM1430과 AM740 동시방송에 들어갔다. 1430은 1480과 같은 5Kw였고 740은 25Kw로서 로드아일랜드.매사추세츠까지를 가청권으로 하는 등 가청범위는 3배로 늘어났으나 한인밀집 지역 방송이 제대로 안됐다. 여기에 9.11 후유증으로 인한 불황과 고가의 전파료는 경영난을 심화시켰다. 1430방송시간을 오전7시에서 정오까지로만 하는 등의 악순환도 거듭됐다.

이같은 암흑기를 거친 2004년 2월4일 라디오서울은 뉴욕 라디오코리아로 이름을 바꾸면서 AM1660으로 다시 태어났다. 35개월만이다. 그러니까 AM1660 R-KOREA만의 나이만 따지면 열살은 커녕 두살에 불과하다.

동포사회 소식을 구석구석 전하고 애환을 함께하는 공중파 매체로서 우뚝 선 R-KOREA의 실상은 그렇다. 당당한 모습이 든든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한참 더 물을 주고 키워야 하는 아기에 불과하다.

R-KOREA나 케이블이 일반화되면서 점차 힘을 받는 TV 전통의 신문 등 모든 언론매체들을 특정인의 상업적 수단으로 치부할 게 아니다. 동포사회가 지켜야할 소중한 자산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성장한 R-KOREA의 생일을 동포들과 더불어 축하한다. 15일 생일축하 잔치가 전체의 화합을 다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김현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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