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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시각][잠망경] 우리집 옆집 도둑괭이가

〈서량/ 시인.정신과 의사>



영어 슬랭에 고양이가 자주 나온다. 우리말 속어에는 '여우'가 더러 등장하지만 고양이는 별로 언급되지 않는다. 간단하게 대충 물만 찍어 바르는 세수를 '고양이 세수'라고 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다'라는 뜻으로 'There's more than one way to skin a cat (고양이 껍질을 벗기는 방법이 하나 둘이 아니다)'는 속어가 있다. 양키들이 예상 외로 시치미를 뚝 따고 쓰는 표현인데 그 때마다 말하는 사람의 안색을 잘 살펴보면 고양이의 야들야들한 살갗을 벗기는 따위의 피비린내 나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고양이가 들어가는 영어 속담을 조사해 보자. 'Curiosity killed the cat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였다.)' 즉 호기심이 너무 지나치면 좋지 않다는 말. 서양미신에서 고양이는 아홉 번을 죽었다 다시 살아난다. 그다지도 생명이 끈질긴 고양이를 죽이는 호기심이란 얼마나 독하고 해로운 습성인지 당신은 등골이 오싹해지지 않는가.

촌스러운 영어로 'There's not enough room to swing a cat' 이라는 말이 있다. 어느 집이나 장소가 게딱지 만 하다는 뜻. 이 말이 매우 다이나믹(dynamic)한 분위기를 풍기는 점에 주목해 주기 바란다. 장소가 비좁다는 표현을 꼭 고양이를 흔들어 댈 만한 공간이 없다고 하는 사고방식은 어디에서 유래했는가. 시골 양키들이 예전에 가끔씩 고양이 꼬리를 잡고 헬리콥터 프로펠러처럼 휘둘렀다는 말인가.

문법이 좀 이상하지만 고양이가 들어가는 희한한 슬랭이 또 하나 있다. 'Cat got your tongue? (고양이가 혀를 깨물었니?)' 이것은 상대가 말문이 막혔을 적에 '왜 말을 못해?' 하며 비꼬는 속어다.

아무래도 양키들의 고양이는 살벌하기만 하다. 위에 열거한 말들을 하나하나 마음 속 스크린에 슬로모션 동영상으로 떠올려 보라. 갖가지 방법으로 고양이의 맨살을 벗기는 장면을…호기심 때문에 깩! 하고 죽는 고양이를… 시골 넓은 집에서 양키들이 원반던지기 선수처럼 고양이를 빙빙 휘돌리다가 공중으로 내팽개치는 광경을… 그리고 사람의 혀를 유혈이 낭자하게 물어뜯는 고양이를… 세상에 세상에 이런 공포영화가 어디에 또 있을까.

내 어릴 적 6.25 직후에 동네 예닐곱 살 되는 여자애들이 고무줄을 하며 부르던 노래가 생각난다. 소위 '고양이 세수'가 끝내고 그 당시 그토록 우리들의 눈길을 끌던 양공주 스타일로 불여우처럼 곱게 화장한 고양이를 노래한 노래가.

「우리집 옆집 도둑괭이가/ 연지 곤지 바르고 눈썹 그리고/ 연지가 없어서 사러 갈 적에/ 한강 다리를 건너 갈 적에/ 사람이 많으니 얼른 감춰라」

영어 슬랭으로 'alley cat'는 골목고양이가 아니라 '창녀'라는 뜻이고 'pussy'는 새끼고양이가 아니라 여성의 '성기'를 뜻한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 노래는 어딘지 쌍스럽다는 느낌이 완연하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이 노래가 실린 사이트가 여럿 있는데 그 중 어떤 곳에는 '연지가 없어서 사러 갈 적에'를 '속옷이 없어서 사러 갈 적에'로 올려놓아 눈길을 끈다.

당시에 이 노래를 들으면서 도대체 도둑괭이에게 뭘 감추라는 얘기인가 하는 호기심으로 내 비록 고양이는 아니지만 거의 죽었다 깨어났음을 차제에 고백한다. 이 동요의 작사자는 도둑괭이에게 무엇을 감추라고 지시했던가. 그것은 연지인가? 속옷을 살 돈? 립스틱 짙게 바른 얼굴? 속옷이 없는 속살?

도둑괭이가 도둑질을 무난하게 하기 위해서는 얼굴이 예뻐야 한다. 험상궂은 안면이라면 금방 들통이 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도둑이 아무리 자기의 흑심(黑心)을 연지 곤지로 위장한다 해도 저 숱한 서울 사람들 앞에서는 스스로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법… 그래서 우리의 사랑스러운 도둑괭이는 사람이 많은 한강 다리를 건널 때 기필코 자기의 속마음을 감춰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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