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는 창가]캐나다인이 되는 길
심현섭, 수필가
밴쿠버에 처음 와서 느낀 첫인상이 어떠했느냐는 일상적인 질문으로 말문을 열었다.
자연환경이 좋고, 도시가 한적해서 평화롭게 보인다는 상투적인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는 바로 “왜 한국인들은 자기네들끼리 몰려 살면서 일요일이면 한인교회에 나가고, 한국슈퍼에 가서 쇼핑하고, 한국식당에서 밥 먹고, 한국 사람들끼리만 어울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유대인이나 중국인들이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자기네들끼리 공고히 단결하고 자기네들 색깔을 가지고 자신의 문화에 자부심을 갖는 것을 부러워하고 칭찬하던 것과는 상당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젊은이가 이곳에 와서 산다면 어떻게 살겠는가?“하고 반문해 보았다.
주저 않고 그는 말했다.
“저라면 서양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가서 살고, 서양 교회에 나가고, 서양 사람의 직장에서 근무하며 친구들도 서양 친구들을 많이 사귀면서 빵을 먹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한국사람, 한국인 사회, 한국적인 것과는 떨어져서 살아가야 여기 온 보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한국 사람이나 한국사회와 떨어지면 자연히 서양 사람과 가까워 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그 생각의 저변에는 캐나다는 서양 사람의 나라라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 젊은 친구는 「서양」이라는 말을 상당히 여러 번 했다.
서양은 동양이라는 말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주로 유럽 제국과 미국 및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를 포함하고 있다.
19세기 말 근대화의 물결이 몰아쳐올 때 조선 땅에서는 서양이라는 말이 호기심과 두려움, 그리고 선망의 대상으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큰 바다를 건너서 온 물건은 박래품(舶來品)이라 하여 주로 서양에서 온 것인데 다 희한하고 좋은 물건으로 간주되었다.
선교사들에 의한 기독교의 전래와 함께 서양은 과학적이고 선진적이며 강한 나라로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나라라고 여기는 반면 고래로 조선이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던 풍습이나 문화는 모두 야만적이고 무가치하며 미신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제쳐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가 젊은이에게 다시 물었다.
“서양 사람들만 사는 동네로 갔다면 앞집 뒷집 옆집이 모두 서양 사람이 살아야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서양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들을 말하나? 혹시 영국사람, 프랑스사람, 독일사람 등 유럽 사람들을 말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캐나다가 모두 이런 나라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거지. 밴쿠버만 하더라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만나는 사람들 중에 중국인과 인도인, 이란인들이 상당수라는 것이라네.
설령 그런 동네에서 열심히 이웃과 사귀면서 살았다고 하세. 이웃집에 초대를 받아서 가더라도 우리가 캐나다적인 별다른 분위기를 감지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네. 왜냐하면 캐나다적인 문화의 정형화된 모습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세.
또한 이웃 사람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했을 때,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한국인이 가지고 있을 한국적인 분위기이지 결코 캐나다적인 것을 이 집에서 느끼려 하지는 않을 것이네. 도리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물에 물 탄 듯한 정체불명의 생활양식을 보았다면 아마 대단히 실망하지 않겠는가?“
살던 땅을 떠나서 남의 나라에 와서 사는 사람은 그 사회에 적응하여 ‘동화될 것인가, 또는 자기 정체성만을 고집할 것인가.’하는 두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 경우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고 여길 때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이다.
한국인 사회를 벗어나서 한국적인 것을 멀리하면 저절로 서양 사람이 되고 자동적으로 캐나다인다워지느냐 하는 것이다.
영국적인 요소, 프랑스적인 요소, 그 외 많은 나라들의 요소들이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어우러져 오늘날의 캐나다를 이루고 있다.
한국인이 한국적인 요소를 완전히 포기하고 도대체 어느 나라 것을 쫓아가겠다는 것인가. 캐나다적인 것들은 바로 많은 나라 것들이 모여서 되어있는 것인데 말이다.
그 모여 있는 정원에 우리도 우리 꽃을 들고 가서 한 곳에 심고 가꾸어야 한다.
음식만 하더라도 밴쿠버는 세계의 모든 나라 음식이 모여 있다.
한국인이 한국음식을 먹는 것을 탓하고 어느 나라 음식만을 먹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처음부터 성립이 안 된다.
아마 밴쿠버에서 어느 한국인이 밥만 먹고, 다른 나라음식은 전연 안 먹는다는 사람은 찾을 수 없으리라 본다.
새는 두 날개로 날고, 수레는 두 바퀴가 있어야 굴러간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뜻은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을 공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이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캐나다인이 되어야 캐나다인다워진다는 뜻이다.
다문화사회라는 것은 크든 작든 제가 가진 촛불을 들고 커다란 한 덩어리의 빛을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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