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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죽은 의사'가 보낸 편지

김완신 문화부장

몸이 불편해 치료를 받아오던 병원의 미국인 의사로부터 편지가 왔다. 정확이 말하면 의사가 아니라 의사 가족들이 보낸 편지였다.

병원을 자주 다녔지만 편지를 받기는 처음이다. 더욱이 환자와 전혀 관계가 없는 의사 가족들에게서 편지를 받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병원에서 온 편지라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열어 보았다.

편지 서두는 이렇게 시작됐다.



"환자분께 이런 편지를 드리게 된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당신을 치료하던 의사가 얼마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가족의 한사람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우리에게 큰 슬픔이기는 하지만 의사의 부재가 당신의 치료에 지장을 줄까 염려돼 이 편지를 보냅니다."

편지 첫부분을 읽는 순간 의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키가 휜칠하고 나이가 많은 노의사였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그는 기억에 남는 의사 중의 한명이었다. 환자들을 항상 웃음으로 대하고 바쁜 진료시간에도 1시간 넘게 성의를 다해 상담을 하고 치료에 임했던 의사였다.

그의 병원에 가면 진료를 받는 시간만큼은 마치 의사와 스태프들이 오로지 환자를 위해 근무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별도의 방에 마련된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면 병원 스태프들이 그 방을 찾아온다. 결코 환자의 이름를 불러 진료실로 오도록 하는 일은 없었다.

보험서류나 진료비 등의 사무적인 절차를 거쳐야 할 때는 반드시 병원 직원이 환자가 있는 대기실로 찾아와 보험카드나 서류 등을 가져갔다가 되돌려 주었다. 또한 의사는 예약된 시간에 정확하게 대기실로 환자를 직접 찾아와 진료실로 데리고 갔다.

그 의사와의 예약은 주로 병원측에서 연락해 날짜를 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참을 기다려도 전화가 오지 않아 얼마쯤은 실망하고 있었는데 편지를 받은 것이다. 의사가 생을 달리한 것도 모르고 예약전화가 오지 않는다며 내심 불만을 가졌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가족이 보낸 편지에는 고인의 환자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고인은 환자를 끝까지 치료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남은 우리 가족들은 고인이 못다한 치료를 대신해서 해줄 전문의를 찾아봤지만 쉽지가 않았습니다. 당신의 주치의와 상의해 새로 신경외과 의사를 정하십시요."

이메일과 전화의 홍수 속에 최근 편지를 받아본 기억은 거의 없다. 그런데 오랜만에 받은 편지가 '죽은 의사'로 부터 온 것이었다. 죽은 사람은 편지를 쓸 수 없기 때문에 가족들이 보낸 것이겠지만 분명 생의 마지막을 눈앞에 둔 의사는 세상을 떠나면서 환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라는 말을 남겼을 것이다.

자기 스스로도 질병과 싸우면서도 의사의 본분에 충실했고 환자들에게 세심한 정성을 아끼지 않았던 그의 열정에 머리가 숙여진다.

가족들은 편지 마지막에 "우리 가족들은 그가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 의사로서의 사명을 잊지 않았고 환자를 쾌유를 위해 최선을 다했음 잘 알고 있다"며 "그는 환자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했었다"라고 적어 놓았다. 그리고는 거듭 의사의 죽음으로 인해 불편을 겪고 있는 환자에 대한 송구스러운 마음을 전했다.

죽은 의사의 편지 하나가 살아있는 사람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전하고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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