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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과기부 장관, '황우석 사태는 전문가 아닌 정부가 나선 탓'

화요 인터뷰 - 서정욱 전 과학기술부 장관

-지난해에는 그야말로 과학계가 다사다난했다. 우선 황우석 교수 사태가 일어나게 된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나.

"전문가가 아닌 한 시민으로서 말하겠다. 세상만사 삼라만상에는 진실(眞實)과 허위(虛僞)가 공존하게 마련이다. 우리의 과학기술이 '위(僞)'에 의해 '허(虛)'를 찔린 사건이라고 본다. 처음부터 대학이나 연구소의 전문가 집단에 기획관리를 맡겼더라면 이처럼 '위'가 '허'를 찌르지 못했을 것이다. 정부가 전면에 나섰기 때문에 '위'를 감지하고도 전문가들이 말을 하지 못했다. 정부에 도전하는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오류를 바로잡으려는 자정능력은 지식인 특유의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무시하고 관리들이 전면에 나서다 보니 무리수가 생긴 것이다."

-현 정부 들어 청와대에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 신설되고 과학기술부 장관이 부총리로 격상되는 등 여러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이렇게 바뀐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정부 지원에 '묻지마' 사태가 벌어졌다.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을 잘했어야 했다. 오케스트라는 지휘자나 구성원 모두가 전문가들이다. 같은 악보를 보며 역할 분담을 통해 화음이 이뤄진다. 구성원 각자의 기능과 역할은 다르지만 지휘자의 통솔을 통해 하나의 예술이 창조된다. 물론 피나는 연습을 필수로 한다. 과학연구도 이렇게 하는 것이다."



-연구개발에 관련된 정부 관리들을 전문가로 채워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공무원을 전문가로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급한 것은 국가 연구 프로젝트를 관리할 과학기술자를 확보하는 일이다. 공무원은 조직의 경직성 때문에 능력 개발에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한번 결정하면 사업계획에 오류가 있어도 집행해야 하고 잦은 인사이동 때문에 전문성도 제고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반면 대학과 기업의 연구책임자는 계획에 차질이 생기거나 더 좋은 방안이 있으면 유연하게 보완 수정할 수 있다. 과거에 우리가 개발도상국이었을 때는 정부 관리가 대학과 기업의 인력보다 정보 및 관리 능력 면에서 우월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과학기술이 고도화하면 할수록 과학기술 연구 프로젝트는 전문가 집단에 맡겨야 한다. 우리의 현실에서 '전문가 집단을 믿을 수 있나'라는 반문도 나오겠지만 그들을 믿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발하고 실행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책무다."

-CDMA 이동전화 개발사업은 정부가 기획하고 관리해서 잘된 경우다. 정부가 나서 성공한 사례가 아닌가.

"그 사업은 내 인생의 6년을 바쳐 겨우 마무리한 사업이다. 잘되고 있는 사업을 내게 맡겼겠는가. 관리들은 사업을 맡긴 연구소의 실적보고를 매주 받는 등 일이 잘되는 듯했지만 갈수록 미심쩍어 결국 TDX사업을 책임진 내게 또 맡아달라고 했다. TDX사업 실적에 대해 거짓말로 보고한 경우도 있었다. 미지에 도전하는 연구개발에서 매주 실적보고를 하자니 책임자는 현장에 없고 연구실무자만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결과다."

-이른바 융합의 시대다. 그런데 우리 정부기구는 과학을 놓고 보건복지부.과학기술부.정보통신부 등으로 찢어져 있다.

"그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최근 정부 조직 1부22성청을 1부12성청으로 줄이면서 과기청과 문부성을 문부과학성으로 통합하기도 했다. 128개 관방 및 국을 96개로 1200개의 과를 1000개로 줄였다. 행정개혁은 숫자놀음에 불과하다고 헐뜯는 소리도 들린다. 오죽하면 그런 고육지책을 썼는지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한국 과학계가 세계적으로 실력과 신뢰성 면에서 재신임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10년 쌓은 탑이 하루에 무너진다고 한다. 우리 과학계는 절차탁마를 통해 환골탈태해야 한다. 앞으로 생명에 관련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그 대상이 인간인지 동물인지에 따라 적용되는 윤리 및 국제관례를 숙지하고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정부는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투명한 지원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우리 과학계에는 제대로 된 '게임의 법칙'이 없었다. 중앙선도 없고 표지판이나 신호등이 없는 고속도로를 질주해 온 셈이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몇 사람의 실수로 한국 과학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지만 회생불능이 될 만큼 우리의 과학기술 총역량은 취약하지 않다. 대학 특히 사립대가 많이 발전했고 기업에도 좋은 연구소가 늘었다. 이 깊은 상처를 아물게 하고 환부의 응어리를 제거해 재발하지 않도록 응급 치료를 하고 예방책을 내놓아야 한다."

-학연과 지연에 따른 줄서기 등 과학계의 고질적인 병폐도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 병폐는 선진국에도 있다. 이와 함께 우려되는 병폐는 연구비를 골고루 나눠쓰자는 병폐다. 과학기술을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개개인의 기량은 우수하지만 국제적인 감각의 감독이 없다는 점이다. 히딩크 감독은 학연과 지연에 얽매이지 않고 선수를 선발 하나의 우수한 팀을 만들었다. 1990년대 초 방사성 가속기 건설을 위해 포항공대에 과기부가 예산을 배정한 일이 있다. 고도의 신뢰성을 요구하는 연구시설은 포철과 같은 경영능력이 뒷받침되는 대학이라야 하기 때문이었다. 대학이 연구에 탁월하려면 연구실무자의 학문적 우월성은 물론 연구개발 책임자의 관리능력과 대학의 연구지원제도 등 환경이 정비돼야 한다."

-황 교수 사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희망은 여전히 과학기술에서 찾아야 한다고들 입을 모은다.

"48년 우리나라는 달구지 경제의 나라였다.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가 없으면 굶게 마련이었다. 당시 미 군정 차관은 한국의 미래를 비관했다.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국가의 산업을 일으킬 만한 인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높은 교육열로 과학기술을 발전시켰고 차세대 성장동력 또한 과학기술에서 찾으려 한다. 그러나 최근의 불상사로 과학기술에 대한 회의론이 싹틀까 우려된다. 지금 과학기술계는 자정능력을 발휘하며 새로운 '룰'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하는데 서로 상처만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정부나 국민의 과학기술에 대한 열정이 식어서는 안 된다. 과학 만능 풍조도 문제지만 윤리를 위장한 반(反) 과학 풍조 또한 경계해야 한다. 뼈를 깎는 노력 없이는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수 없다. 대학과 연구소마다 선진국의 연구관리 시스템을 본받아 우리 실정에 맞도록 보완해야 한다. 황 교수 사태는 분명히 불행한 일이지만 쉽게 흥분했다 쉽게 망각하는 우리의 병폐를 바로잡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서정욱 전 과학기술부 장관은

고희를 넘긴 나이(72세)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 이사장과 전자무역추진위원회 위원장 전자거래협회 회장 산업기술발전심의회 위원장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걸어온 이력 또한 화려하다. 국방과학연구소장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 SK텔레콤 사장 과학기술부 장관 등을 지냈다. 서 전 장관은 '전(全)전자 교환기(TDX)의 대부'로 불린다. 국방과학연구소장에서 한국통신 TDX 개발단장에 임명된 서 전 장관은 1986년 3월 TDX-1의 첫 상용 서비스에 성공 이후 '1가구 1 전화 시대'를 열었다. 그의 추진력은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의 세계 첫 상용화에서 빛을 발휘했다. 그는 이동통신 기술개발 사업관리단을 구성한 지 2년6개월 만인 96년 1월 세계 어디서도 검증받지 않은 CDMA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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