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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외로운 '이름'

김완신 편집위원

한국 전통혼례식에는 나무로 만든 새 모양의 조각품이 사용된다. 많은 사람들이 나무로 만든 새를 부부 금실을 상징하는 원앙으로 생각하지만 자세히 보면 기러기다.

전통혼례에는 '전안례'라는 절차가 있다. 신랑측에서 신부측에 목각 기러기를 드리는 예를 말한다. 왜 하필이면 기러기일까. 기러기에는 3가지 덕목이 있다고 한다.

첫째 기러기는 평생 일부일처제를 지키며 짝이 죽어도 다른 상대를 찾지 않는다. 둘째 무리지어 가는 기러기는 앞줄의 기러기가 선창을 하면 뒷줄의 기러기가 화답하는 예의가 있다. 셋째 기러기는 지나간 곳에 흔적을 남긴다. 부부의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들도 훌륭한 삶의 행보를 남기라는 뜻이다.

이 3가지 덕목 중에서도 부부애의 상징이라는 점이 기러기가 혼례식에 등장한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지난 17일 한국에서 부인과 자녀를 조기유학으로 미국에 보낸 '기러기 아빠'가 사망한 소식이 전해졌다. 어렵게 학비를 보내며 혼자 살았던 50대 남성은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특히 더 가슴이 아픈 것은 주위에 찾는 사람이 없어 사망한지 5일이 지나서야 직장 동료에 의해 발견됐다고 한다.

조기유학이 만든 비극이다. 조기유학이 뭐고 영어가 뭐길래 가족을 타국에 떠나 보내고 외롭게 죽음을 맞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21세기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필수인 영어를 배우려고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오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머니의 손을 잡고 또는 혼자서 어린 학생들이 낯선 땅 미국으로 오고 있다.

조기 유학을 온 학생들은 그들이 성인이 됐을 때 어린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어떤 학생은 어려서 배운 영어가 성인이 되어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할 것이다. 국제화 시대의 언어인 영어를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었다고 당당히 답할 것이다.

반면 다른 학생은 타국에서 영어 공부를 위해 어린시절 희생해야만 했던 것들이 너무 컸다고 후회할 수도 있다.

조기유학의 효율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다. 학자에 따라서 조기 외국어 습득의 필요성을 강조해 유학을 권장하기도 하고 다른 편에서는 어린시절 화목한 가정에서 느끼는 정서적인 안정감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조기유학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부모들은 아직 판단능력이 없는 어린 아이들을 왜 조기유학을 보내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먼 훗날 부모의 결정이 옳을 수도 있지만 옳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기유학은 아이의 손에 영어라는 막강한 '무기'를 쥐어 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바다를 원했던 아이를 구비구비 산길을 헤매게 한 어리석은 결정일 수도 있다.

조기유학을 결정하기 전에는 부모의 따뜻한 품을 벗어나 어린 시절의 수년간을 희생할 만큼 영어배우기가 의미있는 것인지 생각하고 자녀의 적성을 고려해 보는 노력도 필요하다. 후에 영어가 사회적 성공의 열쇠가 됐다 하더라도 부모와 함께 했던 따뜻하고 편안한 기억이 자신에게는 없었다는 것을 자녀들이 후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기유학의 열풍은 당분간 식을 것 같지 않다. 조기유학 열풍이 계속되는한 부부애와 가정화목의 상징이었던 '기러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아빠의 이름으로 한동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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