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익는 마당]남자가 쉽게 쓸 수 없는 여자만의 이야기
김영란(수필가)
여자라는 증거요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보증에 관한 이야기지만, 여자끼리도 내놓고 말하기 거북살스럽다.
월경과 폐경, 그것을 천연스레 떠든 것도 부족해 올해 최고 단편소설로 황순원 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있다.
27년간 사건현장에서 세상을 향해 칼을 휘두르던 신문기자였던 김훈은, 온 몸을 움직이는 자전거여행을 즐겼고 문단에 얼굴을 내민 것은 50이 돼서다.
늦은 나이에 문사(文士)의 칼로 무사(武士) 이순신을 그린‘칼의 노래’는, 노무현 대통령이 감명 깊게 읽었다 해서 더욱 인기가 있었지만, 실로 그 책은 새로운 충격이었다.
형용사와 비유는 최대한 삼가고, 단문으로 ‘김훈 필체’를 탄생시키며 독자들을 열광시켰다.
험난한 시대를 칼로 헤쳐나간 먼 역사 속 이순신 장군을, 고뇌하며 생각하는 한 인간으로 불러내어 ‘불멸의 이순신’열풍을 일으켰다.
생명은 소리라는 믿음으로 가야금을 만든 역사의 인물 우륵을 그린 ‘현의 노래’, 그리고 죽음과 소멸의 화장(火葬)과, 아름다움과 소생의 화장(化粧)을 통해 두 여자를 사랑하는 중년 남성의 심리를 표현한‘화장’은 짧은 집필경력이지만 화려한 수상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칼의 노래’의 원제목은 좀 과하다 싶은 ‘광화문 그 사내’였다는데, ‘언니의 폐경’또한 남자 작가의 제목치곤 좀 과하기는 하다.
여성을 지나치게 미화나 폄하한다는 여류 작가들의 지적을 들어 온 57세 ‘男의 눈’에 비친 55세 언니는 또 어떤 모습인지, 동생의 눈을 빌려본다.
한강이 바라다 보이는 포구, 강과 바다가 뒤섞이는 아파트의 강이 마주보이는 곳에 두 자매는 각자 살고 있다.
회사 전무를 남편으로 둔 동생은 남편의 옷에 묻은 긴 머리칼로 남편의 여자를 짐작한다.
빠져나간 허허로운 세월의 빈자리, 혈연의 상처를 줄이자는 배려를 한 남편은, 시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딸이 미국 유학을 떠나자 이혼을 요구한다.
2년 전 비행기 추락 사고로 남편을 잃은 언니는, 그즈음부터 불규칙한 폐경의 기미를 보였다.
보험과 상여금 등으로 나온 20억원의 많은 부분을 언니의 시집이 챙겨가고 부의금마저 모두 챙겨간다.
아버지를 묻고 내려오다 돈 문제로 싸운 아들은 부의금의 반을 찾아 자신이 갖는다.
남편과 별거 중 서류 때문에 들른 회사에서, 동생은 남편 회사 동기이며 명퇴 직전인 무기력한 남자를 만난다.
손엔 검버섯이 피고 한 다리로 웅크리고 선 새처럼 볼품 없고 멸종위기를 느끼게 하는 그가 어색하고 불쌍하다.
인연도 우연도 아닌‘하는 수없이’ 그에게 연민을 느낀 동생은 그와 사랑을 하게 된다.
동생에게 남자가 있는 것을 짐작한 언니는 앙고라 세타는 입지 말라고 한다.
사소하고 하찮은 것에 짓눌린 언니의 폐경은 느리고도 오래 계속된다.
언니에게만 유효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과 똑같은 수다스러워진 말은 거의 하나마나하다.
노을이나 바람처럼 종잡을 수 없이 먼 언니의 말에 동생은 늘 대꾸할 수가 없다.
한강의 밀물과 썰물의 물살 흐름의 변화는 인간관계의 변화와 그들의 삶과 대비된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여자는 어떻게 나이 들어가는가… 여자의 폐경에 관한 말은 무수히 쏟아진다.
바삭거리고 헛헛한 갱년기의 호르몬 변화는 자연의 이치지만, 기억력은 감퇴하고 느는 것은 체중과 주름과 자식들에 대한 허무감이다.
남자가 쉽게 쓸 수 없는 여자만의 이야기에 승부를 걸며,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소설임을 보여준 작가의 시도가 놀랍다.
올해 특별히 각 대학에서 추천을 받아 젊은 피도 녹아 있는 수상 작품집에는, 400편 중 최종심사까지 갔던 대단한 아홉 작품도 실려 있다.
그동안 글을 쓰며 이가 8개나 빠졌다는 작가의 고통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하지만 한 편에 5,000만원짜리(?) 단편소설은 어떻게 다른지 관심은 가져 볼만하다.
소멸과 생성을 암시하는 밀물과 썰물의 교차가 자매의 내면 풍경과 연관된다는 문학성을 인정받았고, 한국 문학사에 50대 여성의 몸의 변화와 내면을 가장 설득력 있게 묘사하고 본격적으로 다룬 첫 작품이라는 평도 받았다.
소설 끝 무렵 “왜 월경이 불경과 같은 경(經)자를 쓰느냐?”고 동생은 언니에게 묻는다.
불경스레 여겼던지 대답 않는 언니 대신, 소설 밖 작가에게 물어본다.
“경(經)은 모든 것의 근본이고, 인간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피를 버려야만 생산할 수 있다.
폐경은 소멸을 준비하라는 몸의 신호다.
”줄곧 몸 이야기를 해 온 작가의 화두는, 인간은 모두 아름답다는 것이다.
아직도 원고지에 연필로 쓰는 아날로그 작가, 한국문단에 쏟아진 벼락같은 축복으로 불리며 우리시대 최고의 문장가라 불리는 문사가 휘두르는 칼을 한 번 맞아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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