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찾아서-조어산수도
김영희<미술평론가>
특히 1795년에 그린 <총석정도(叢石亭圖)> 와 1796년에 그린 병진년 화첩 중의
<조어산수도(釣魚山水圖)> 를 보면 실경(實景)을 그리는 그의 솜씨가 맑고 새로우면서도 원숙한 경지에 올라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조어산수도> 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곡선적인 필법에 의한 따뜻한 서정성이 물씬 풍기는 그림이다.
산속 개울가에 앉아 자연의 일부로 동화된 듯 조용히 낚시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한 사람이 삿갓 쓴 사람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무엇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데 그들 사이에 오가는 친밀한 감정이 화면 전체에서 느껴진다.
먹의 농담 표현이나 색채에 미묘한 변화가 있다.
또 화면 전체의 공간 구성에도 사물의 다양한 형태와 배치에 의한 섬세한 변화의 미와 안정감이 있다.
그림 우측 귀퉁이에 작게 그려진 낚시질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특히 따뜻한 정이 느껴진다.
김홍도는 40대 초반 왕명(王命)을 받고 금강산 일대를 사생한 이후 화법을 일신하게 된다.
40대 후반에 이르러 김홍도는 특유의 완숙한 화풍을 구사하게 된다.
이 시기의 그림들은 대부분 일상생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풍속, 인물, 화조의 소재를 산수 배경 속에 그려내는 ‘사경산수(寫景山水)’의 경지를 보여준다.
병진년 화첩 중의 한 폭인 <조어산수도> 도 그러한 ‘사경산수’의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절벽에서 아무렇게나 휘어져 자라난 잡목(雜木)의 묘사법은 단원 특유의 것으로, 같은 화첩에 있는 <소림명월도(疎林明月圖)> 에도 나타난다.
이 그림을 보고 한가로이 친구와 시원한 탁 트인 계곡에 밀짚모자를 쓰고 담소를 나누며 낚시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단원의 그림은 상상만으로도 후대에 즐거움을 주고 있다.
김홍도의 호는 단원(檀園)ㆍ단구(丹邱)ㆍ서호(西湖)ㆍ고면거사(高眠居士)ㆍ첩취옹(輒醉翁) 등이다.
강세황(姜世晃)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됐다.
산수화ㆍ인물화ㆍ신선화ㆍ불화ㆍ풍속화에 모두 능했다.
특히 산수화와 풍속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산수화는 사실(寫實)묘사와 조국애가 어울려서 조국 강산의 아름다움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으로 당시의 신윤복(申潤福)ㆍ이인문(李寅文)ㆍ김석신(金碩臣)ㆍ김득신(金得臣) 같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풍속화는 서민사회의 생활정서와 농(農)ㆍ상(商)ㆍ공(工) 등의 생활정서를 주제로 하여 그들의 생활모습을 익살스럽고 구수한 필치로 그린, 일종의 사회풍자를 곁들인 작품들이다.
작품에는 <신선도병풍(神仙圖屛風)> <쌍치도(雙雉圖)> <풍속화첩(風俗畵帖: 서당도ㆍ씨름도ㆍ무악도 등)>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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