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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례 기자가 체험한 정토회 '깨달음의장'] 나를 버린 순간 얼굴엔 미소가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쿠야마밸리에 있는 정토수련원에선 제300차 깨달음의 장이 열렸다. '깨달음의 장'은 주관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사물을 '정말 있는 그대로' 잘 살펴보게 함으로써 단박에 법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수행 프로그램이다. 법의 이치를 깨달아 어떤 상황에서도 괴로움이나 분노 미움 등 자신의 감정이나 고집에 끄달리지 않고 늘 평화롭고 자유로운 마음상태에 머물게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불교 수행공동체인 정토회가 주관하지만 종교적 색채를 배제해 목사나 수녀 등 타종교인들도 많이 참여한다.



참가자는 모두 13명이었다. 엄마나 딸의 권유로 혹은 아내나 남편의 권유로 아니면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뒤 너무나 변한 친구의 모습을 보며 "도대체 그게 뭔데"하는 궁금증에 먼 길을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큰 방에 넓은 원을 그리며 동그랗게 둘러 앉았다. 깨달음을 향한 4박5일간의 여행을 안내할 유수스님과 그를 도와줄 돕는이가 수련방으로 들어섰다. 모두들 반은 긴장되고 반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안내자의 입을 향했다.

"유재원씨"

"예"

"당신은 누굽니까?"

"유재원입니다."

"유재원이란 이름이 당신입니까?"

"아닙니다. 유재원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입니다."

"유재원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면 다 당신입니까?"

"아닙니다. 유재원이란 이름으로 이 몸을 빌어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유재원씨"

"예"

"유재원이란 이름으로 이 몸을 빌어 살고 있다고 말하는 당신은 누굽니까?"

"접니다."

"유재원씨"

"예"

"저라고 말할 때 그 저가 누굽니까?"

"바로 접니다. 저"

"유재원씨"

"예"

"당신 누구요?"

깨달음을 향한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누구의 아내다 누구의 엄마다 여기 이렇게 앉아 있는 이 몸이라고 답해도 소용이 없었다. 빛에서 온 영혼이라고 해도 모든 욕망의 근원이라고 해도 나는 나라고 우기다 모른다고 머리를 휘저어도 "당신 누구요?" "왜 그게 당신이냐?"는 안내자의 질문은 부메랑같이 되돌아왔다.

자기라고 믿고 고집했던 것들을 가차없이 떨궈내게 하는 안내자의 물음에 13명 남녀의 얼굴은 짜증 분노 답답함 그리고 지겨움으로 서서히 일그러져 갔다.

몇시나 됐을까? 자정을 훨씬 넘겼을 시간 참가자들은 더 이상 '나만의 나' '이게 나'라고 고집할 것을 내놓지 못했다. "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나만의 나는 있다"며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렸지만 마음 속에선 "도대체 나는 누구란 말인가" 스스로를 향한 서늘한 질문이 또아리를 풀며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다음날은 더 힘겨운 씨름을 벌여야했다. "제 돈을 빌려간 뒤 일부러 파산을 하고 돈을 갚지 않는데 어떻게 화가 안납니까?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자기는 다른 사업 차려서 잘 살고 있으면서 우리는 그 돈 때문에 집까지 넘어가고 조그만 아파트로 이사해야 했어요. 와이프가 그 때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아십니까."

"그런데 왜 화가 납니까?" 안내자의 목소리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언제나 감정이 실리지 않은 한결같은 톤이었다.

"갚아야할 돈을 안갚잖아요."

"그 사람이 돈을 갚지 않을 경우 다른 누군가가 100억을 준다고 했다면 그 사람이 돈을 갚지 않는 것 때문에 화가 나겠습니까?"

"그렇지는 않지요."

"그런데 왜 화가 났습니까?"

"그 돈이 없어서 집이 넘어갔는데 어떻게 화를 안내요."

"그러면 화를 내서 돈을 받았습니까?"

"못받았지요."

"그런데 왜 화를 냈습니까?"

엄마 아빠가 폭력적으로 싸웠던 어린시절 상처 때문에 괴로웠던 신아무개씨 사귀는 남자마다 헤어지는 아픔을 겪어야했던 김아무개씨 고집센 부인 때문에 이혼을 생각했던 안아무개씨 자신을 괴롭힌 시어머니가 너무도 미웠던 이아무개씨…. 각자의 슬픔과 분노 미움과 괴로움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며 안내자와 하루종일 사투를 벌였던 이들은 어느새 "내 생각이 옳다"는 한 생각에 사로 잡혀 스스로 화내고 괴로워하며 슬퍼했던 옛모습을 되돌아보며 멋적은 웃음을 지었다. "내가 그때 왜 화를 냈을까."

물론 "이건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끝내 귀를 막고 마음을 닫고 안내자를 외면하거나 "무슨 답이 듣고 싶은거냐. 모른다는데 왜 자꾸 사람을 괴롭히냐"며 화를 내고 진저리를 치는 참가자도 있었다.

1명씩 돌아가며 진행되는 안내자와의 일대일 문답을 들으면서 "저사람은 어쩜 저렇게 남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을까" "조금만 돌려 생각하면 자기가 옳지않다는 걸 곧 알게 될텐데" "저게 저렇게 고집부릴 일이 아닌데"…그러나 안타깝게 때론 한심하게 바라봤던 그들의 모습이 바로 나 자신의 어리석은 모습임을 알아차리는데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3일째는 최후의 결전일이었다. 서로의 존재를 걸고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이는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졌다. 손에 들고 있는 패는 물론 바닥에 깔려있는 패 마음속에 그려놓았던 패까지 모두 내주고 말았다. 이제는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만히 눈을 떴을 때 우리 모두는 웃고 있었다. 그것도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너무도 활짝 웃음 짓고 있었다.

"마음만 열면 우주만물의 이치를 깨닫는게 이리도 쉬운 일이었구나." 수련원 문을 나서는 발걸음은 참으로 홀가분했다. "집에 돌아가면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 마음에 평안이 깃들게 해야지."

[취재후기]


정토수련원은 수련내용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기사화하지 말아줄 것을 부탁했다.

참가자가 수련방법을 미리 알 경우 효과가 반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체험을 통해 깨달음이란 책을 읽고 얘기를 들어서 깨칠 수 있는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직접 맛을 봐야 알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됐다. 소금이 짜다는 걸 알기 위해 수천 페이지의 책을 읽고 유명한 사람의 얘기를 듣느니 한번 소금맛을 보면 단박에 그 맛이 짠 것을 아는 것처럼. 하지만 프로그램의 70% 이상은 기사화하지 않았다.

이제는 나의 도반이 된 13명의 참여자들은 서로를 전혀 모른채 함께 여행을 시작했었다.

그리고 며칠전 한 도반으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나는 우주"라고 빡빡 우기던 도반이다. "힘들었지만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어요. 안내자님이 우리 손에 쥐어주신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를 잘 이용해서 자유롭고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살게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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