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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철의 송계한담도

옛 화가들은 소나무 자체보다는 어떤 관념의 상징으로 소나무를 그렸다.
소나무를 절조나 지조 등 유교적 윤리규범이나 장생(長生)사상과 관련된 장수(長壽)의 상징물로 봤다.

그러나 김수철(金秀哲, 조선 말기의 화가지만 출생과 사망 연도가 밝혀지지 않음)의 <송계한담도(宋溪閑談圖)> 에 나타난 소나무는 자연 그대로의 소나무 모습이다.
이 그림은 종이에 담채(淡彩) 형식으로 그려졌으며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송계한담도> 는 근경의 바위와 시냇가에 서 있는 몇 그루 안되는 소나무, 그리고 소나무 밑에서 한담을 즐기고 있는 선비들의 모습을 주제로 그리고 있다.

 이 그림의 소나무는 추사 김정희가 <세한도(歲寒圖)> 에서 절의나 지조의 상징물로 그린 소나무에서 볼 수 있는 관습적인 정체성(停滯性)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자유분방한 필선을 구사해 묘사된 소나무들은 참신한 회화적 멋이 깃들어 있다.
소나무 아래에서 서거나 앉은 자세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다섯 선비들의 모습은 보는 사람에게 ‘인간’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흐르는 물과 같고, 소나무와도 같다.

사람도 소나무와 냇물과 같이 풍경의 일부가 되어 있다.
옛 화가들의 자연회귀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그림이다.
소나무 아래서 한담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그린 <송계한담도> 은 자연과 인간이 일체된 세계를 그린 것이며, 세속을 떠나 자연에 회귀한 은자(隱者)들의 세계를 그린 것이다.

 마음을 같이 하는 벗들이 모여 소나무 숲이나 계곡 등 자연 속에서 풍류를 즐기는 풍속은 조선시대 문인과 선비들 사이에서 흔히 있었던 일이다.
그들은 송림(松林) 사이를 스치는 솔바람 소리를 악보도 없고 곡조도 없는 무현금(無絃琴) 소리로 삼고, 세속의 일을 잊어버리고 화두(話頭)같은 한담으로 소일하는 것을 참다운 낙으로 여겼다.

소나무와 관계되는 말 중에는 문학적인 여운을 가진 단어들이 많다.
예를 들어 송간(松間)-솔 밭 사이, 송성(松聲)-소나무에서 이는 바람소리, 송영(松影)-솔 그림자, 송풍(松風)-솔바람, 송하(松下)-소나무 아래, 송단(松壇)-소나무가 서 있는 낮은 언덕 등이 그것이다.
이 단어들은 주로 탈속과 풍류의 의미를 담은 말로 쓰이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송계한담도> 는 바로 이런 단어들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다.

김수철의 자는 사익(士益)이며 호는 북산(北山)이다.
산수·화훼를 잘 그렸으며, 필치는 거칠고 간략하나 점과 선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그는 담채를 써서 특이한 화풍을 보였다.

남긴 작품으로는 <계산적적도(溪山寂寂圖)> <산사만종도(山寺晩鐘圖)> <강산매림도(江山梅林圖)> <설경산수도(雪景山水圖)> <매우행인도(梅雨行人圖)> 등이 있다.

김영희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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